2004년 7월 13일

우리 집 식탁 꽃병에 빨간 장미와 보랏빛 들꽃과 함께 백합이 여섯 송이 있는데 지금 그중에서 네 송이는 활짝 핀 채 함박웃음을 짓고 있고, 남은 두 송이는 아직도 얼굴을 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 꽃다발은 스톰이 칠월칠석 기념으로 선물해 준 거다. (참고로 본래 칠월칠석은 음력이다. 고로 올해는 8월 22일이 되지만, 스톰식의 달력 계산법에 의하면 양력 7월 7일이면 그날도 칠월칠석이란다.)

에니웨이, 근데 칠월 칠석에 웬 꽃다발? 거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작년까지는 우리도 밸런타인데이를 나름대로 축하해 주면서 보냈었는데, 올해 2월 밸런타인데이를 며칠 앞두고 갑자기 스톰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물론 이때쯤 되면 밸런타인데이가 무슨 2월의 크리스마스라도 되는 듯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밸런타인데이 선물, 꽃, 카드, 이벤트 선전이 한 창일 때다. 가끔은 이런 과다한 선전이 순수한 사랑의 표현 방법을 너무 밀어붙이기식으로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의무화하는 건 아닌지 하고 씁쓸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역시 밸런타인데이는 왠지 우리의 마음을 핑크빛으로 물들게 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근데 이 아름다운 날을 코앞에 두고 스톰이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스톰: "근데... 왜 우리는 맨날 외국 애들이 하는 거 다 따라서 축하하고, 흥분하고, 선물 사주고, 분위기 내고 그래야 해? 밸런타인데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할 날이 없어? 난 요즘 통 이해가 안 가더라. 그냥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 그런 식의 기념일 같아서 좀 그래. 그대 생각은 어때?"

레인소나타: "이대 생각은 어떠냐고? 그럼 먼저 대안을 말해봐! 어떤 날이면 한국인 고유의 밸런타인데이가 되는 건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스톰이 대답했다.

스톰: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우리 올해부터 칠월칠석을 우리들의 밸런타인데이로 정하자!"

너무도 우렁차게 중요한 성명서라도 발표하듯 말하는 스톰을 보니, "푸하하하하..." 웃음이 마구 터져 나왔다. 그래서 올해부터 우리 부부는 2월 14일에는 평소처럼 지내고, 칠월 칠석에 서로에 대한 사랑의 표시를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마음에 드는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