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5일

새벽 6시가 좀 넘어서 잠이 깨었다. 밖을 보니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 파격적으로 랄라가 늦잠을 자준다면 하는 깜찍한 기대를 품고, 일단 커피부터 한 잔 준비했다. 

랄라가 규칙적으로 낮잠을 자게 되면서, 그 틈을 내어서 중학교 때부터 읽어왔던 두꺼운 시집 하나를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읽을 때는 한 손에 분홍색 색연필을 들고, 내 마음에 와닿는 작품을 표시해 나갔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연두색 색연필을 들고, 이미 선정해 놓은 시 중에서 가장 여운이 남는 행을 밑줄 그으며 읽었다. 사실 이 작업은 내가 랄라와 함께 아름다운 시를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거다. 

우리 랄라는 갓난아기때부터 스톰과 내가 잠들기 전에 주고받는 말소리를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 수다를 떨다 보면 랄라는 이내 잠들었는데, 그때 랄라의 새근새근 잠자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런 랄라를 위해서 이쁜 목소리는 아니지만, 엄마의 사랑을 담아 시 낭송 테이프를 꼭 선물에 주고 싶었다.

먼 훗날 랄라에게도 사춘기가 오고 사랑이 오고 이별을 아파하는 날도 오겠지. 랄라가 홀로서기를 연습하는 그날이 오면, 어느새 성숙한 숙녀로 자란 랄라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을 스톰과 나를 그려본다. 앞으로도 항상 아름다운 글을 가까이해서 랄라가 힘들고 외로워할 때 힘이 퐁퐁 솟아나도록 지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언젠가 랄라와 함께 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시를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