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9일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에필로그' 에 보면 그녀가 결혼할 당시 친정엄마의 심정과 본인의 숨겨진 엄마에 대한 사랑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그녀는 엄마에게 있어서 자신(딸)의 결혼이라는 것은 "생살을 찢어 내는 의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제 그냥저냥 단념할 수도 있으련만, 생살을 찢어 내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을 거라고까지 했다. 엄마에게 나는 당신의 생살이었다.

당신의 사위를 위해서는 와이셔츠 한 장 준비해 주지 않은 엄마의 태도에 대해 작가는 엄마의 딸에 대한 절절한 애증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였고, 아무런 예물 하나 들고 가지 못한 데서 봐야 하는 눈치와 그런데도 기죽지 않으려는 노력 모든 것이 "엄마의 신성한 선물"이라고 했다.

결혼한 지 3년 반이 지났다. 박완서 씨와 마찬가지로 나도 고명딸이다. 딴에는 딸 하나 가진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해 보았으나 엄마의 깊은 마음을 깨닫기에 나는 너무 이기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지금 내가 비로소 딸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리 엄마의 그 쓸쓸하고 허탈해 보였던 3년 전의 표정이 가슴을 할퀸다.

나는 박완서 작가처럼 결혼을 앞두고 들떠있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생살이 찢겨나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였고, 그냥 앞만 바라보고, 꿈을 꾸며, 결혼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에 몸과 마음을 모두 도둑맞았던 것 같다. 말 그대로 당신의 뼈와 살을 나누어 나를 있게 해준 엄마가 나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대해서는 부끄럽게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사위에 대한 냉랭한 태도마저도 "엄마의 신성한 선물"이라며 그 어느 것도 희석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작가의 엄마를 향한 깊은 애정이 자꾸만 내 가슴을 짓눌러 밤새워 뒤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