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0일

얼마 전 레이건 미 전 대통령이 십 년 넘게 앓고 있던 알츠하이머병으로 세상을 마감하셨다. 80년대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었고, 정치란 우리와 따로 분류된 특정 어른들만의 사업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건 뉴스에서 잠시 보이는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의 모습에서 부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첫인상이라는 것은 원래 쉽사리 잊히지 않는 것이어서, 대학에 들어가서도 교내 도서관에서 전공 서적을 찾아 헤매는 틈틈이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 지나간 화보들을 뒤적여 보고는 했었다. 그 후 시간이 또 흘렀고, 결혼하고 나서는 모처럼 주어진 휴식이라 생각하고 집 근처 도서관과 서점을 드나들며 평소에 읽고 싶었던 다양한 장르의 책을 빌려다 읽었다. 때로는 5-6시간씩 서점에 머물며 유유히 책을 읽고 나오기도 했다. 

"I love You, Ronnie"라는 책을 접한 것은 내가 늘 가던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였고, 겉표지에 있는 젊은 시절의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의 다정한 사진을 보고는 무조건 빌려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레이건 대통령이 1950년에서 1990년에 걸쳐 낸시 여사에게 보낸 편지와 메모 등이 주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때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스톰과 나누다가, 갑자기 레이건 대통령의 정치관으로 화두가 번져 그날 몹시 흥분하여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던 것도 잊을 수 없다. 

레이건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후, 이제는 화사함이란 찾아볼 수 없이 여위고 쓸쓸함이 영혼마저 삼켜 버린 듯한 초췌한 모습의 낸시 여사를 텔레비전 화면과 신문에서 보았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 미디어에서는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할리우드 영화의 한 편 인 듯 다투어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읽은 짧은 낸시 여사의 인터뷰 기사도 CNBC 웹사이트에서였다. 몇 년 전에 한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올려놓은 기사였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부분은 낸시 여사의 결혼관에 대한 솔직하고도 설득력 있는 대답이다.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우리의 결혼 생활이 어떻게 오랫동안 변함없이 행복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말하죠. 결혼이란 늘 50:50 일수는 없는 거라고. 로니가 (레이건 대통령을 부르는 낸시 여사의 애칭) 알츠하이머가 걸리기 이전까지 저에게 50:50 이 아닌 더 넘치는 사랑으로 아끼고 보살펴 주었다면, 지금 몇 년째 저마저도 알아보지 못하는 로니 곁을 지키면서 이제는 제가 로니에게 100의 사랑을 보여줘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계산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50:50 만이 남녀평등과 가사분담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내가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80%  90% 헌신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언젠가 내가 100%의 사랑을 그로부터 필요로 할 때 부담스럽거나 계면쩍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끔 스톰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난 지난번 읽은 이 기사를 자연스레 떠올리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