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 자연과 전통에 창조성까지 겸비된 일본 도자기 전시장에 들어선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첫인상이 상큼했다. 싸늘한 기온의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흙으로 빚어서 뜨거운 용광로를 거쳐서 나온 도자기들이 주는 따스함에 안겼다.

몽고메리 미술관에서 열리는 일본 현대 도자기 전시회는 추위를 잊게 하는 독특한 행사다.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자연과 어울려서 오감을 일깨우는 작품들은 기를 가진 묘한 존재들이라 대면하는 즉시 감각으로 마주섰다. 천천히 여러 모습의 전시품 겉과 속을 둘러보며 감탄하다가 앨라배마주립대학 교수 크리스 그린맨 (Chris Greenman)을 만났다. 전시 설명 (Gallery Talk)을 들으러 온 몇 사람과 그를 따라 전시장을 천천히 돌며 안내를 받았다.

1982년 대학원에서 공부하다가 우연히 점토를 만지게 된 인연으로 도예에 빠져서 공부했다는 그는 그때 일본 자기를 공부하고 온 도예 전문가 교수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 도예를 알기 위해서 일본의 모든 것을 공부했고 직접 일본의 도예 공방에 가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고 왔다. 2000년을 이어온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구워내는 여러 지역의 도예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업 자세를 배웠던 체험은 그를 반 일본화 시켰다. 그가 자손대대로 가풍을 이어받아 15대째 도예를 굽는 도예 가족을 소개하는 음성에는 경이가 묻어났다.  

그린맨 교수는 일본 도예의 바탕인 삶의 근본 자세를 설명하고 전통 공방들이 가진 독특한 기법의 차이를 소개하며 그가 만든 사케 잔들과 찻잔을 돌렸다. 앨라배마 점토에 일본식 기운을 불어넣어 구운 용기들은 손안에 편안하게 잡혔다. 어쩐지 질감이나 촉감이 낯설지 않았다. 그가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로 일본인 특유의 감각을 불어넣어서 생활용기에서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도자기를 소개하자 낯익은 동양인 이웃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수줍게 다가와 가볍게 인사한 것은 싹싹한 일본인의 자세다. 하지만 내면에 숨긴 독특한 성격이 찬찬히 앞과 뒤를 돌아보는 사이 조금씩 돋보였다. 자연과 환경에 겸손하게 적응하며 더러는 연약하고 더러는 극적인 대담함을 보여줬다. 그동안 도예 전시를 많이 봤지만 이번에 만난 작품들은 달랐다. 나를 홀렸다.

장난기를 숨기고 정교하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도예 작품이 돋보였던 이유는 함께 전시된 사진이다. 작품과 맞물린 분위기의 자연 정경을 찍은 사진이 실재감을 보태고 보는 사람의 눈높이를 맞춰줬다. 도자기의 얼굴을 보며 토기에 담긴 정기를 만나니 자유롭고 즉흥적인 흥을 준다. 게이샤의 부채를 상상시킨 절묘한 디자인과 반달 디자인 접시의 중앙에 흐르던 물이나 눈이 녹아 흐르는 강물을 연상시킨 접시들과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던 폭포수를 구워낸 꽃병에는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특히 화산이나 파도의 물결이 멈춘 큰 접시나 지진에 가라앉아 무너 휘어진 지반을 나타낸 육중한 구조물, 층층이 쌓인 지반이 강렬한 대지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작품 등 위압감을 준 자기들은 조각품의 DNA를 가졌다. 그리고 얼핏 접다만 병풍을 연상시키는 넓은 지면의 청자는 피부 아래로 흐르는 가느다란 핏줄기를 보인 기발한 착상이다.

도공의 집념이 창조한 자기는 대지의 천성을 인내로 감수한 목격자이며 동시에 철철 솟아나는 감정을 품고 인간의 아름다움을 은근히 과시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흉내낸 사람의 아름다운 스토리다. 사케 잔의 오묘한 디자인이나 의미도 대단하지만 전통 기법에 과감하게 현대식 의미를 부여한 대형 작품은 도공의 탄탄한 훈련이 가능하게 했다. 상상을 초월한 세계로 도전한 장인들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들이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만지작거리는 흙에 오감을 주입해서 빚은 토기에 유약을 적절하게 가미해서 가마의 온도를 조절하는 동안 느끼고, 생각하며 가진 깨달음을 나도 체험하고 싶다. 무엇보다 한가지에 집중해서 경지에 오른 도공들과 대대로 한 우물을 파며 전통을 지키는 가족들이 질투나게 부럽다.

이번 도예전은 흙과 물에 불을 사용해서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든 도예가들이 합창한 황홀한 코러스다. 집에서 가까운 미술관을 방문해서 도예전을 봤는데 어쩐지 먼 일본을 여행한 착각이 들게 했다. 미술관을 나서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멋진 겨울 나들이 했음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