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손가락의 미학

 

도대체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알 수 없지만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에 탈이 생겼다.

똑바로 힘주어 펴도 아프고, 마디를 꺾어도 아프고, 언저리 뼈마디를 눌러도 아프고,

아무튼 두루두루 골고루 아프다.

 

처음에는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 정도야 제깐 게 뭐 대수겠어? 했다. 정말로 우습게 봤다.

그래도 양심에 전혀 찔릴 게 없는 것이,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가 내 평생에

무슨 그렇게 큰 도움이 되었을까 한다고 내 얼굴을 향해

두 번째 손가락 날 세우고 덤벼들 사람이 있을 것도 아니고.

꽤 요란한 콧방귀와 함께 그렇게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의 품평은

 ‘무가치’로 허무한 결말을 보았고 내 일상은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콧방귀 뀌고 말 일이 아니었다.

좀 힘주어 닫은 게 분명한 된장 통 뚜껑을 열려다 나도 모르게 ‘악!’비명을 올리고 말았다.

통 뚜껑 여는데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가 이렇게 엄청난 조력자로 기여했음을 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에 힘을 주지 않으면 당췌 통 뚜껑의 맞물림을 풀어낼 수가 없었다.

딸아이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가 멀쩡해도

어른 손아귀에 다 먹히지 않는 된장 통을 열기에 그 아이의 손은 아직 미력했다.

나는 몸통을 잡고 아이는 뚜껑을 잡았다.

 

하나, 둘, 셋....똑같이 힘을 주기로 한 그 시점에서 나는 또 ‘악!’하고 비명을 올려야 했다.

몸통 잡고 힘주는 데도 역시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는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저녁 반찬으로 된장찌개는 포기하고 고추장 찌개로 메뉴 전환을 시도했다.

다행히 고추장 통의 뚜껑은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의 힘을 빌리지 않고 열 수 있었다.

웃배로 묘하게 통을 지지하고 왼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오른 손은 아예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깟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 하나 고장났다는,

시시껍절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이상하게 오기가 발동했다.

네 없이도 잘 사는 모습을 보이고 말리라!

 

남의 말 귓등으로 흘려듣기 좋아하는 친구 하나는 심드렁하니 “병원에 가봐.” 내뱉고 말지만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 때문에 병원에 간다는 건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에게는 너무 분에 넘치는 호사질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기로 한 날부터 후회를 해야 했다. 3일에 한 번은 꼭 해주기로 내 피부와

약속을 한 저녁 세안 후 마사지부터 그랬다.

마사지를 하려고 손가락 끝에 호호바 오일과 크림을 묻히는 순간, 정말 별스레 깨달은 게 있다.

마사지 크림을 제일 많이 먹는 곳이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구나..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가 마사지 크림을 제일 많이 먹는 이유가 있었다.

얼굴 마사지는 그러고보니...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가 다 했다!

 

얼굴 마사지를 둘째 손가락으로 하는 사람이 있나?

얼굴 마사지를 넷째 손가락으로 하는 사람이 있나?

얼굴 마사지를 다섯 째 손가락으로 하는 사람이 있나?

얼굴 마사지를 엄지 손가락으로 하는 사람이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운데 손가락 외의 손가락으로 일일이 실연을 해 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엄지 손가락은 꼴도 웃겼지만-용용 죽겠지도 아니고-마사지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째 몰랐을까?

내가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로만 마사지를 해 왔다는 사실을?

 

얼굴에게 꼭 해주마고 약속한 마사지니 죽어도 그 짓만은 못하겠다는 남편을 10분 정도

설득해서 마사지를 받긴 했으나 마사지 받는 내내 이런 생각만 했다.

남편도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로만 마사지를 하는구나..

 

컴퓨터 작업을 할 때도 정말 자존심 상하게 ‘그깟’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의 가치를 절실히 느껴야 했다. 모음 ‘ㅏ’를 찍을 때, ‘,’를 찍을 때 일부러 다른 손가락을 동원하려 기를 쓰고 의식하지만 매번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가 알아서 먼저 움직였다.

이걸, 충성스럽다고 해야 하나, 오지랖이 태평양이라고 해야 하나, 내게 맞짱 뜬다고 해야 하나...혼란스러웠다.

 

그깟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의 ‘무가치함’을 증명해 보이려 버틴 일주일. 오늘로 8일째를 맞는다. 그리고 내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에는 교정과 보호를 겸한 특수 장치가 붙어있다.

그렇다. 병원을 다녀온 것이다. 인대가 늘어났단다. 이유는 모른다. 그 장치를 끼워주는 의사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있었다.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가 아프다고 병원 오는 사람도 있나요?”

 

도대체 나는 뭘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내 우문에 대한 의사의 현답.

 

“어디가 불편하면 병원에 와야죠. 뭐든 방치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내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는 43년 만에 호사스러운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 인생, 아니 ‘指生’을 통틀어 이리도 화려한 호사는 없었다. 아무런 힘도 가하지 않고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는...

구부릴 수도 없어 뻐쩡하니 가운데 손가락을 펴고서 밥을 먹으면서 드디어 나는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에게 실로 대단한 ‘가치’를 부여해준다.

 

네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가기가 함들구나.

 

그러면서 문득,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 하나 불편해도 이리 일상이 고단한데..

누가 봐도 가치가 분명한 몸 어디가 불편한 사람들의 고단함은 어떠할까..

가뜩이나 국 없이 떠 넣은 밥 때문에 마른 목이 뻑뻑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해 보는데

‘그깟’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 하나 정도

불편하게 만들어 주신 게 고작인 신의 은총에 다시금 감사한다면...

이거야말로 오지랖 태평양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가운데 손가락 끝마디는 정말로 아름답다.

 

*단,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용도로 세워 보일 때만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