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심청, 억순이, 백설공주, 똑순이, 그리고 무엇보다 배고푸고 괴롭고 슬퍼도 나는 안울어... 캔디, 캔디.. 5년전 달랑 300불 들고 혼자 미국에 와, 막일에서부터 시작, 접시닦이, 호스티스, 짐 나르기, 식당 종업원, 댄서... 불법으로 일하면서 욕도 무진장 얻어 먹고, 도둑질도 하고... 그렇게 그렇게 이를 악다물고 일해 지금은 NYU 석사를 따고, 레스토랑 경영 전문가, 식당 웨이츄레스 전문가, 짐 나르기 전문가, 밥 안먹구 일 막하기 전문가, 온몸 상처투성이인 인간 상처 디스플레이, 꼴같지 않게 무용가, 안무가, 공연예술 행정가, 공연기획 전문가가 되어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공연기획사 Dancing in the Streets, Inc.에서 무용공연 코디네이터로서 일하고 있는 뉴욕 특파원 이주현, 인사드립니다. 꾸벅. 총수님이 기사보내기 앞서 자신의 스토리부터 시작하는게 좋겠다고 하셔서 5년전 정말 빈손으로 처음 뉴욕에 와,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몇회 나눠서 할까 해요. 잼없어도 잼있다고 격려해주세요. 꾸벅..

우선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게 메일 주셨던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한국을 떠나온 이후 이렇게 많은 분들의 격려를 받기는 처음이다. 힘이 막 솟고 생활에 바뀔 정도로 활력이 된다. 정말 정말 감사드린다. 꾸벅.

2. 졸업하기 전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항상 스케줄대로 청소를 하러 갔었고,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밤에는 밤일을 나가는 아주머니들의 아이들 둘을 돌봐 주는 일을 거의 일년반 이상을 했다. 처음으로 내가 본 아기는 우리 학교 선생님이 입양을 해서 키우고 있던 아이삭"이라는 3개월 짜리 갓난아기였다.

조안나(Joanna)라는 선생님은 항상 공연 때문에 아기를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했었고 돈을 잘 버는 조안나선생님의 남편덕분으로 나는 아이삭을 봐준 보수를 꽤 후하게 받았었다. 물론 캐쉬로. 오후 5시부터 밤 11시, 선생님이 돌아오실 때가지 아기를 봐주고 받은 보수는 $50불이었다.

아기가 아주 갓난아기일 경우에는 아기 보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기가 깨어 있을 때면 항상 안아서 울지 않게 달래 줘야했기에 몇 시간이 지나면 팔의 근육이 다 마비되곤 했다.

배 고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아기가 우유를 주어도 안먹고 달래도 계속 울기만 할 때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결코 울지 않으리라 맹세했던 나도 덩달아 같이 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혼자 강한척 하며 속으로 쌓아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한참 울다보면 아기는 벌써 울음을 멈추고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을때가 많았다.

이렇게 어린아기를 보고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완전히 파김치되어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부잣집의 아기를 봐 줄 때는 주인집 아저씨가 항상 집까지 바래다 줘서 좋았다. 항상 어디든 걸어다녔던 나는 그런 좋은 차를 타고 집으로 갈때면 매일 걸어 다니는 똑 같은 길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보이는지 항상 기분이 이상했다. 그럴때면 있는 사람들과 내가 사는 세상은 참 다르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저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정도에도 말이다...

아기의 연령이 3-5세 정도인 경우가 갓난아기 보단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고 편했다. 아기들과 우선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에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 소통이 자유롭게 되는 아기들과 함께 놀때면 나는 미국 아기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미국엄마들이 하는 동요나 아기들의 언어, 예를 들자면 "peek-a-boo 삐까부" (한국말로 하자면 까꿍 정도.. 여기서 미국 사람들이 손을 얼굴로 가린 다음 가린 손을 활짝 열고서 얼굴을 내보이며 하는 소리임) 등을 알 리가 없던 나는 미국 아가에게 미국어 대신 한국말 "엄마", "아빠", "도리도리 짝짜꿍"을 가르쳐 주었다.

그럴 경우 미국아기들은 내가 하는 말 그대로를 꼬박꼬박 따라했었고, 엄마가 오면 Mommy 가 아닌 "엄마"를 외치는 아이를 보고 엄마들은 대부분 박장대소를 했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장난이 아주 심한 아기들을 볼 때는 우선 저녁을 일찍 먹인 후, 금방 지칠 수 있는 게임만 골라서 함께 열심히 뛰어놀곤 했다. "알랜, 착하지, 우리 오늘 침대 누가 누가 높이 뛰나 내기할까? 우리 여기서 저기까지 누가 누가 빨리 뛰나 해보자" 하며 금방 지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기진맥진하게 만들면 곧 9시, 이때 "Hey, Alan, It's time to go bed now..." 이 한마디면 아기보기가 끝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20대초반의 한국 처녀는 이제 점점 권모술수를 맘대로 구사하는 아기보기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아기재우기 작전이 성공하고 난후 소파에 깊숙히 앉아 쉴때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었다. 특히 먹을 것이 잔뜩 쌓여있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맘대로 꺼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남의 집 아이를 본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신경쓰이는 일이다. 혹 이글을 읽고 베이비시터로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맘먹은 분들이 있다면 각오 단단히 하시기 바란다.

제일 힘든 경우는 엄마가 집에 없을 때 아기가 아플때다. 물론 항상 긴급 연락처를 남겨놓긴 하지만, 연결이 잘 안될 때는 안절부절.. 그 초조, 불안감은 필설로 다하기 힘들다.

한번은 부모가 나간 직후 갑자기 아기가 막 토하며 얼굴이 창백해진 경우가 있었다. 아기의 몸을 우선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고 믿었던 나는 아가를 안고 담요를 덮어준 후 옛날 내가 배가 아팠을 때 어머니께서 배를 만져주시며 "내 손은 약손이고..." 하셨던 것처럼 정성을 다해서 아가의 배를 문질러 주었다.

그래도 낫지 않고 계속 토하길래, 혹시 체한 것이 아닐까 했던 나는 갑자기 손을 따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 장면을 아기 부모가 봤다면 당장 경찰서에 끌려갔겠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던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아기의 손끝을 바늘로 따주었다.

그리고는 우리 어머니께서 내 손을 따주시며 "이것봐, 여기 다 나쁜 피가 몰려 있잖니" 하시던 추억을 되새기며 아기에게 피를 보여주고는 이제 괜찮아 질꺼라고 열심히 말해주었다. 2살짜리가 뭘 알아듣겠는가. 그말은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만약 아기가 말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면 아마 난 지금쯤 어디 여자 교도소 철창에서 청소를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불법이지만) 파트타임으로라도 일들을 하며 돈을 조금이라도 모을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하지만 아주 절실하지 않으면 이런 일자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정말 일이 필요한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찾고 찾고 또 찾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두들기고 열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열릴 때가지 이를 악 물고 두들기고 두들기고 또 두들기면 반드시 나온다.

그러나 뉴욕이란 도시는 워낙 사람을 쉽게 믿고 일을 맡기는 그런 도시가 아니어서, 일차적으로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주어지든 항상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악바리 같은 한국인의 근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또 이런 (불법) 파트타임을 수입원으로 삼으면 당연히 수입이 일정치가 않다.

어떤 달은 베이비 시팅 한 두 번 해서 번 돈이 수입의 전부일때도 있었다. 그럴때는 100불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써서 오히려 돈을 남길 때가 많았다. 돈을 이런 식으로 벌다보니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 하나 사먹는것도 아까웠고 항상 제일 싼 가게에 가서 싸고 양 많은 감자를 한 보따리 사놓고 감자 샐러드, 감자국, 감자밥을 만들어 코딱지 만한 기숙사 냉장고 냉동실에 얼려놓고 끼니를 때우곤 했었다. 어떤 달은 믿기 어렵겠지만 $20불 가지고서도 한달을 산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1993년-1996년) 전철과 버스 요금이 1불 25전이었었는데, (지금은 전철, 버스다 1불 50전이고, 요즘 새로 나온 무제한 이용권 있어 아주 편리함) 버스 갈아 탈 때는 별도로 요금을 따로 안내도 되었지만 전철은 한번 타면 생돈 1불 25전이 버려야 했고 전철역을 나갔을 경우 다시 전철을 타려면 돈을 또 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당연히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고 그래서 3-4 키로는 깽깽이로도 갈 수 있을만큼 튼튼한 다리를 가지게 되었다.

가끔 32가에 있는 "한국 슈퍼 한아름"에 가서 김치 담글 때 필요한 새우젓과 필요한 몇 조미료를 사러 갈 때만큼은 전철을 이용했었다. 이렇게 가끔씩 한국타운에 갔을 때 볼 수 있는 한국 빵집, 한국 식당, 서점, 사람들 등을 보기만 해도 나는 기분이 좋았었다. 매일 미국인만 상대하다 코리안타운 가면 내가 꼭 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즐겁기만 했었다.

언젠가 한번은 짬뽕이랑 탕수육이 너무 너무 먹고 싶어서 홍반점이라는 중국집에 들어가서 짬뽕 하나를 시켜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앞 테이블에 앉은 딸처럼 보이는 여학생과 그녀의 부모님처럼 보이는 가족이 큰소리로 웃고 얘기하는 모습에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이 생각나게 해서 내가 시켰던 짬뽕에 눈물방울 뚝뚝 흘리며 씩씩하게 먹은 적이 있었다. 남들 볼새라 고개 쳐박고... 나는 울지 않는 캔디니까 아무도 보면 안돼...

슈퍼에서 캐셔로써도 일을 했고, 샐러드바에서도 일을 했고.. 또.. 많다.. 정말 여러가지를 해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기숙사 앞에 있는 3rd Avenue의 델리가게였다.

젊은 한국부부가 운영을 했는데, 24시간 영업을 했었다. 나는 시간당 4불씩 받고 새벽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을 했는데,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내게 유난히 잘해주셨었다. 미국 온지 15년이나 되신 분들이지만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슬랭이나 속어를 가르쳐 드리기도 했었다.

새벽 3시 40분쯤 떨어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가게에 가면 항상 따뜻한 커피를 타주시며 위로해 주셨고, 내가 그 전날 학교 일로 너무 피곤해 하면 부엌에 들어가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오라고 해주셨던 분들이다. 또 아주머니는 내가 필요한 것 없냐고 항상 물어보시면서 가게에서 파는 조미료도 주시고, 과일을 몇봉지씩 담아 주시곤 했다. 이곳 뉴욕에서... 그냥... 공짜로... 뉴욕인데 말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그 고마움을 모른다.

미안해서 사양하면 항상, " 아니, 지금 한참 통통할 땐데 그렇게 빼짝 말라 가지고... 잘 먹어야해, 일도 잘먹고 해야지 그렇게 안 먹고 하면 쓰러진다구, 나는 잘 알아, 그러니 두말하지 말고 가져가, 알았지... "

그렇게 말씀해주셨던 분들.. 뉴욕에서 처음으로 만난 고마운 분들이다. 나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이 많다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일깨워주신 분들이기도 하다.

여하간 그렇게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일을 하고 나는 입던 옷을 그냥 입고 학교로 수업하러 갔었다. 당시 나에게 잠을 잔다는 시간은 곧 돈 1달라가 날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정말 미련하고 무식하게 일을 했었다.

' 내가 지금 쉬면 어쩌나.. 안되지.. 한시간이라도 더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땅을 쳐다봐도 돈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생각으로 낮과 밤이 없이 공부하고 일을 하고 잠시 잠을 잘 때면 발바닥이 뜨거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었다...

그 시절 난, 배가 너무 고파 학교 바로 밑에 있던 Met이라는 슈퍼에서 빵을 훔쳐먹기 시작했다. 배는 고프고 돈은 없는데, 밥을 사달라고 할 사람 한사람 없었던 나는 어느날 마음 독하게 먹고 슈퍼에 들어가 빵을 훔쳐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빵이 전시되어 있는 선반에 가서 롤 하나를 집어 슈퍼에 들어가 빙빙 돌다가 몰래 몰래 먹었다. 그땐 정말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나중에 꼭 갚아줄께 하는 생각으로 그 빵을 먹었다...

너무도 육체적으로 힘들고 외로울때면, 없다고 흉을 보는 사람들을 상관않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던,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했었다. 돈 몇 푼이 아깝다고 택시 한번 안타시던 어머님, 하루 종일 일하시고 집에 오시면 그 새벽에 빨래를 하시고 집안 청소를 하시던 어머님을 생각하며 내가 겪는 이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배가 너무 고프고, 어머님이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한공기가 너무도 먹고싶고, 또 부모님이 너무도 그리울 때도 마음속으론 항상 "나는 울지 않아, 나는 강해"를 되새겼다.

"항상 너 보다 없는 사람을 생각하라", "네가 현재 가진것에 만족 못하고 더 바라니 네가 힘들지 않니", " 지금 그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라" 하셨던 어머님의 말씀을 되새기면 마음이 안정이 되곤 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한푼이라도 보태 주지 못하는 당신들 마음이 괴로우셔서 내게 전화 한번 안하셨다. 내가 어머님의 목소리가 너무도 듣고싶어 전화를 할 때면, 어머님은 항상 강한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시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곤 하셨다.

그럴때면 난 항상 "엄마, 저 여기서 아주 잘먹고 잘 살고 있어요"라고 했다. 부모님 앞에서 결코 울고 싶지 않았고, 또 울지 않았다.

어느날 너무도 어머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 한국으로 전화를 했을때, 난 어머님께 한국에 있을때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말을 해 드렸다.

" 엄마, 사랑해요... "
" 엄마도 우리 딸 아주 많이 사랑해..... "
" 엄마, 울지 말고. 왜 이렇게 자꾸 울면 전화 값 비싼데 계속 올라가잖아요. 바보같이.... 나 끊어야 겠어요, 엄마 때문에. 그럼, 엄마, 내가 또 전화할께요. 그때가지 몸 건강히 계세요.. 사랑해요, 엄마 "

그 전화를 끊고나서 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엇인가가 솟아올라 어떤 어려움도 이결낼 수 있을 것 같았다... 

To be continued.....

- NY 특파원 이주현 ( Jewrhee@a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