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는 매우 약하고 가날팠기에. 연속으로 이어지지 않고 잠시 끊어지는 듯 하다가 다시 이어지고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뚝 끊어졌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듣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소리였지만 이상하게 계속 금아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냥 무시해버리려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들으면 밤 고양이가 짝을 찾아다니면서 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줄기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

도대체 그 소리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소리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금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다 귀를 갖다 대었다. 벽에 귀를 갖다 대자 그 소리는 좀더 명확하게 들려왔다. 금아는 금방 알아 낼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울음소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울음소리는 엄마방으로부터 나고 있다는 것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편에 있는 방. 그 방은 며칠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엄마의 방이었다. 사이가 좋았든 나빴든 두 사람이 나란히 있던 방이었다. 그 방에서 두 사람은 잠을 자고 옷을 갈아 입고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싸우기도 했다.

그 방에서 이제는 혼자가 되어버린 엄마가 울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우는 사람은 평소 고인에게 잘 못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때늦은 후회와 회한과 죄책감 때문에, 이제는 잘 할래도 잘 할 수 없다는 자책에서 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잘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

엄마의 울음소리는 낮았다. 그러나 창자에서 쥐어짜여져 나오는 듯 애절했다.

진작 좀 그렇게 울 것이지……

금아의 얼굴에 냉소가 떠올랐다. 흥, 같잖게스리 하는 뜻을 담은 냉소.

금아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금아가 시선을 둔 저쪽에 작은 창문이 있었다. 그 창문으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비를 잔뜩 머금은 하늘은 음산하고 컴컴했다. 일기예보에서 오후에 한차례 비를 뿌릴 것이라 했다. 그러나 네시가 가까와 오는 시각이지만 비가 올 낌새는 보이지 않고 있다.

비라도 한바탕 왔으면 좋겠는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지 사흘 째이다.

금아를 비롯해 은아와 엄마는 각자의 방에 처박혀 있다. 밥을 먹는지 물을 마시는지 잠을 자는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서로 모른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배가 고프면 각각 알아서 해결한다. 라면을 끓여 먹거나 시리얼을 먹거나 식빵 조각을 씹거나.

세사람은 복도나 화장실 앞에서 마추쳐도 말을 하지 않는다. 말만 하지 않으면 괜찮으라고. 고개를 외로 꼬고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애써 서로의 얼굴을 외면한다.

금아는 안다. 이런 상태가 장시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침전물처럼 바닥에 가라앉은 마음들을 일으켜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것을.

아무래도 괜찮지 나는, 하고 금아는 중얼거렸다.

은아의 얼굴을,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별 아쉬울 것도 없다. 금아는 항상 이집에서 공기같은, 먼지같은 존재였으니까. 있으나마나한 존재였으니까.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은아의 상견례는 다시 연기되었다. 지난 번 은아의 요청에 의해 연기된 후 두번 째이다.

 

상견례가 연기된 게 어찌보면 참 다행이다. 당분간 억지춘향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나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가식적인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되니까.

잠시 그쳤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금아는 양쪽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싫어하던 남편이 떠났으니 춤을 추어도 시원찮을 참인데 울긴 왜 울어….

금아는 엄마가 참 가증스럽다고 생각한다. 혐오스럽기도 하다. 여지껏 울지 않지 않던 사람인데 오늘은 왜 저리 날 잡은 것처럼 굴까.

엄마는 아버지의 관이 땅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목소리 톤도 바꾸지 않았고 처연하고 슬픈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세상에 어쩌면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않을까……..”

“눈물은 고사하고 저 담담하고 침착한 얼굴 표정을 좀 보라지.역시 고상한 여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 ”

“아무리 고상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게 지아비를 하루 아침에 잃은 여자의 얼굴일 수 있어……”

장례식장에서 금아는 여자들이 쯪쯪 혀 차는 소리를, 그리고 여자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어쩌면 엄마도 들었을 터였다. 그렇게 수군대는 사람들이 한두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엄마는 같은 모습으로 일관했다. 억지로라도 그들이 원하는, 그러니까 미망인이면 응당 보여줘야 할 모습을 연출해내려 들지 않았다.

평온하다고 표현하면 너무 심한 것일까. 그랬다. 엄마는 평온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미소를 짓기까지 했었다.

아버지의 관을 묻기 위해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언덕받이를 모두 오를 때였다.

어디서 꿩 한쌍이 나타나 뒤뚱대면서 사람들 앞을 가로 질러 걸어 갔다. 사람들이 모두 갑자기 나타난 꿩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엄마는 꿩쪽으로 눈길을 주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얼굴에 슬핏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엄마의 얼굴에 나타난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금아는 하관의식이 진행되는 내내 엄마가 지은 미소의 의미를 캐내느라 애썼었다.

엄마는 정녕 슬프지 않은 것일까…엄마는 정녕 아버지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래서 그렇게 미소를 지었던 것일까…….

사실 아무렇지 않기는 금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쩡한 모습으로 낚시 하러 갔던 아버지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 온 사실이 경악스럽고 충격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슬프지는 않았다.

왜냐면 금아의 인생에 아버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아버지가 존재하든 안 하든 별로 달라질 게 없었으므로.

엄마에게도 역시 아버지는 마찬가지 존재였을 것이다. 미약하고 희미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랬는데 이제서야 새삼 남편의 부재를 느낀 것일까. 남편이란 존재의 빈자리를 느낀 것일까.

늘 핍박하고 구박하고 무시하던 남자가 떠남으로 이제서야 불쌍하고 가엾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그래서 엄마는 울고 있는 것일까……

“아아니, 이게 무슨 상스럽지 못한 징조야, 그래?”

불쌍하기도 해라, 아버지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급히 날아온 엄마의 친척들과 형제들. 그들은 아버지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은아의 혼사에 지장이 있을까봐 그것부터 걱정했으니까.

“좀 참았다가 은아 혼사나 치루고 난 뒤에나 죽지. 제발 신랑측에서 이 일을 가지고 트집을 잡지 않아야 할 텐데….”

인간이란 동물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 것일까.

엄마의 큰 올케라는 여자가 내뱉는 말에 금아는 잠시 아득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나 잠시후 금아는 생각했다. 저 여자 말이 맞긴 맞다. 그래, 이왕 죽을 거 은아 결혼하는 거나 보고 죽지……

정말 불쌍한 아버지였다. 그 아무도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지 않았으니까.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과부가 되어버린 엄마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은아를, 나이 사십이 가깝도록 직장도 없이 무위도식하고 있는 금아의 앞날을 걱정하느라 이제 겨우 육십이 좀 넘은 나이에 세상을 버린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 안중에 없어했다.

그나마 아버지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아쉬워 한 사람은 은아였다. 은아는 아버지의 부음을 접하는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울고 있는 것 같다. 어제 부엌에 나온 은아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 은아의 모습을 보면서 금아는 조금 아연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은아 역시 아버지랑 깊은 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은아는 항상 엄마하고만 통했고 엄마하고만 단짝 친구였다.

그런 은아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아버지의 가는 길은 은아 덕분에 좀 덜 외로웠을까….

오십여명이 참석한 아버지의 장례식은 쓸쓸하고 휑등그레했다. 아버지 피붙이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장례식이었다. 곤궁하게 살고 있는 아버지의 여동생 둘은 비행기 삯이 부담스러워서 참석할 수 없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조문객의 대부분은 엄마의 친구들과 한국에서 온 엄마 친척들이었다. 아버지 쪽으로는 덴탈랩과 경비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 다섯명이 전부였다. 그리고 은아의 친구가 서너명, 은아가 결혼할 남자 캐빈이 참석했다.

금아쪽으로는 두 명의 조문객이 있었다. 미단이와 정기훈이었다.

정기훈이 장례식에 모습을 나타낸 걸 생각하면 지금도 금아는 놀랍다. 전혀 예상조차도 못했었던 일이었기에.

감사하다는 전화라도 해주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하는 금아. 그러나 그 일을 끝내 실천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금아는 잘 안다. 전화 한통 하는 것, 얼마나 쉽고 간단한 일인가. 그러나 금아에게는 태산을 옮기는 일 처럼 힘들다. 특히 정기훈에게 전화하는 일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차라리 저쪽에서 먼저 전화를 해주면 좋을 텐데, 하고 금아는 생각한다.

정기훈이 만약 전화를 걸어온다면 고맙다고, 바쁜 시간 내주어서 참 고맙고 감사했다고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대한 정중하고 공손하게.

그러고보니 정기훈과는 단 한번도 인사다운 인사를,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상 시비로 시작해 시비로 끝났었다. 그 시비는 금아쪽에서 먼저 걸 때도 있었고 정기훈쪽에서 시작할 때도 있었다.

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금아는 다짐한다. 다시 통화를 할 기회가 생길 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야지.

사실 고마운 사람 아닌가, 정기훈이라는 사람은. 돈 받고 마루를 깔아 준 인연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시공업자와 손님의 관계로 만났을 뿐인데 옷 사입으라고 백화점 상품권을, 운동하라고 피트니스 회원권을 끊어다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 장례식에까지 참석해 준 사람이다.

그나저나 아버지 장례식엔 어떻게 알고 왔을까. 아마 미단이를 통해서였겠지.

금아는 장례식장에서의 미단이와 정기훈의 모습을 떠올린다. 무릎까지 오는 까만색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한 미단이. 그리고 그 옆에 검정 양복을 입고 묵묵히 서 있던 정기훈.

둘이 참 잘 어울린다, 하는 생각을 그 와중에도 얼핏한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찌르르, 하는 아픔을 느낀 것도 같다. 왜 아팠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금아는 손을 뻗어 전화기를 집는다. 미단이다.

“금아야…..”

“양반은 못되겠구나”

금아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렇잖아도 네 생각하고 있었걸랑”

“내 생각?”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 같이 지켜줘서 고마왔다고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그랬니?”

“응…..”

“기분은 좀 괜찮아졌니”

“괜찮고 말 것이 뭐 있어. 그냥 그렇지……”

“그러니….”

“미단아……저….저기, 기…기회가 되면….”

금아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참 이상하다. 언제부터인지 정기훈에 대해서 말을 하려면 목이 메이는 것 같다. 가슴이 아파오는 것 같다.

“정기훈씨라는 그 사람에게도 좀 전해 주겠니. 내가 감사하다 그러더라고, 바쁜데 참석해 줘서……”

“네가 직접…”

미단이가 금아의 말을 잘랐다.

“그런 인사는 네가 직접 하는 게 예의야. 네가 직접 해”

“………..”

“그나저나 금아야”

전화기속 미단이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아직도 이유를 잘 모르니?”

“……….”

“바위에서 미끄러져 파도에 휩쓸려 돌아가신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니?”

그럼, 확실하지 않으면, 하고 금아가 대답하자 미단이가 주춤거리듯 말했다.

“내가 들은 게 있어서 그래….”

들은 게 어떤 거냐고 금아는 다그쳐 묻지 않는다. 설사 아버지가 일부러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도 이제와서 어쩌라고. 파헤쳐 사실을 밝힌다해도 아버지가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닌 이상 그일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같이 낚시를 갔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말이야”

지금 미단이가 하려는 얘기가 어떤 것인지 금아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관을 묻고 산을 내려올 때였다. 금아는 사람들과 뒤쳐져서 혼자 털레털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부터 금아를 유심히 보던 늙스구레한 한 남자가 금아에게 다가왔다.

“돌아가신 분 맏딸이지?”

금아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버지가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나던 날 같이 낚시를 하러 갔었던 사람이야”

“아, 그러세요….”

금아가 고개숙여 인사했다.

“참 좋은 분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예에……..”

“이름이 뭐야?”

“금…금아예요….”

“금아라…..”

모두들 언덕을 내려가버려 아무도 없었지만 행여나 남이 들을새라, 하는 표정으로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거의 닿을 듯 금아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금아 아버지가 사고사로 가신 게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금아가 놀라는 표정을 보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 남자가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다는 오전까지만 해도 잠잠하고 조용했었지. 그래서 우리는 가을 바다낚시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지. 그랬는데 오후에 들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금새 바다가 거칠고 광폭해지기 시작하는 거야. 집채만한 파도가 정신없이 몰아쳐오기 시작하는데 아주 무섭더라구. 그래서 모두 집에 돌아가려고 앞다투어 철수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때 갑자기…."

갑자기, 하는 대목에서는 그는 몸서리를 쳤다. 눈앞에 거친 바다가 바로 보이는 듯 눈을 크게 뜨면서.

“금아 아버지가 무엇에 홀린 듯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한 큰 바위 쪽으로 걸어가는 거야. 우리가 목청높이 소리치며 만류했지. 가지 말아요! 그쪽으로 가지 말아요! 위험해요! 위험하다니까요!”

그들의 고함소리는 세찬 바람소리에 묻혔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고함치며 만류를 하지 않더라도 그 날씨에, 그 파도에, 그 미끄럽고 험한 바위쪽으로 걸어 가는 것은 죽을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버릴 생각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짓이라고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그렇게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바위쪽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같이 간 사람들은 고함치기를 멈추고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과 발을 이용해 바위 꼭대기 쪽으로 기어 올라가던 아버지. 위태롭게 위태롭게 바위를 오르던 아버지는 중간쯤에서 몸이 미끄러져 휘청,하고 옆으로 굴렀다. 다행히 편편한 곳이어서 바다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때 누가 다급하게 외쳤다. 제발 누구라도 쫒아가서 저 양반을 좀 말려 봐! 하고. 그러나 그 외침 역시 바람소리에, 파도소리에 가볍게 묻혀버렸다.

“그때 나도 얼른 든 생각이 누구든지 나서서 그 양반을 말려야 한다는 것이었어….”

남자가 당시의 위급하던 상황이 눈에 떠오른다는 듯 다시 몸서리를 치며 허공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파도가 보통 거세어야 말이지. 무서워서, 도저히 무서워서 엄두를 내지 못하겠더라고. 그저 어어, 하면서 입을 벌리고 바라만 보고 있었지….”

그러다가 그는 잠깐 한눈을 팔았는데 그 한눈 판 시간이 2,3초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퍼뜩 고개를 들어보니 그 짧은 동안에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마치 신기루처럼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했다. 파도에 휘감겨 바다 밑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가 급하게 911에다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모두 영어가 서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있는 외딴 바닷가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게다가 거친 날씨때문인지 전화는 통화 도중에 몇번씩이나 끊어졌다. 가까스로 구급대와 통화에 성공했으나 워낙 도시와 떨어져 있는 먼 곳이라 도착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시간 후.

경찰과 구급대가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거짓말같이 날씨가 쨍, 하고 개였다. 미친년 머리카락같이 휘몰아치던 바람이 천천히 사그라지고 다시 해가 뜬 것이다. 경찰과 구급대는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반쯤 혼이 빠진 사람들은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때 사람들 중 하나가 저쪽 모래사장 쪽으로 밀려 온 희무끄레한 물체를 가리켰다. 사람들은 알았다. 그 희무끄레한 물체는 바로 조금전에 바다쪽으로 떨어진 금아 아버지라는 것을.

“아무래도 이상해. 몇번을 생각해 봐도, 몇번을 그 장면을 떠올려 봐도 이상해. 금아 아버지가 말이야……”

그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금아의 기색을 살폈다.

나머지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남자가 이으려던 말이 무엇인지.

금아는 눈을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구름 몇조각이 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일부러 그런 것 같았어……”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남자의 입에서 금아가 짐작하고 있던 말이 흘러 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

남자가 침을 꿀꺽 소리나게 삼켰다.

“금아 아버지, 자살한 게 아닐까?”

금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아버지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 의미를 두고 있지 않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인생에 특별한 가치나 애착을 두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왜 갑자기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굳이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던 아버지였다.

혹시 은아 때문이었을까. 은아의 임신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금아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금아가 은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엄마를 통해서였다.

어느날 늦은 아침, 엄마는 커피를 마시러 부엌에 나간 금아를 붙잡아 식탁에 앉혔다. 그리고 은아의 임신 사실을 알리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맹한 것이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일을 저질렀으니 장차 이 일을 어쩌면 좋니?”

엄마는 울상을 지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더니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맹꽁인 줄 알았더니 임신부터 턱, 하는 재주는 있네…..”

금아는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엄마를 생경스럽게 바라보았다. 은아의 임신 사실보다 엄마가 그 사실을 자기에게 털어놓고 하소연을 해댄다는 것이 더 놀라운 금아였다.

엄마는 친구가 많은 만큼 하소연 할 데가 많은 사람이었다. 매일 한사람씩 돌아가며 한다해도 보름이 넘게 걸릴 만큼 인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다른 사람을 다 제쳐놓고 자기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다.

금아는 느꼈다. 엄마는 은아의 임신을 남이 알면 절대로 안 될 수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하소연 할 상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금아를 택한 것이다.

금아는 가족이니까, 그러니까 치부를 드러내도 은아의 혼사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대상으로 여기니까 맘 놓고 털어놓고 푸념을 할 수 있는 거였다.

어쨌든 금아는 엄마가 자신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왔다.

그리고 금아는 그날 저녁, 예전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을 했다. 아버지와 엄마의 말다툼에 끼어들어 한 마디 한 일이었다. 아버지, 엄마, 금아 이렇게 셋만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엄마는 은아의 임신을 놓고 푸념을 해대고 있었다. 은아가 임신하므로 이번 결혼이 아주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상견례를 빨리 해치우고 결혼식을 올렸어야 했는데...이제 남자놈이 변심이라도 한다면 은아의 신세는 어떻게 되겠어요. 아주 뻔할 뻔자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렇게 엄마가 말했을 때도 아버지는 못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질만 하고 있었다. 엄마는 다시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한탄했다.

“어쩜 딸들이라고 하나같이 멍청해서 제 앞가림 하나를 제대로 못하는지…..”

묵묵히 밥만 먹고 있는 아버지.

“사실은 놈이 변심할까가 문제가 아니라 은아가 문제야. 임신까지 턱 해가지고는 이 결혼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는 거예요. 상견례 날짜까지 변경해가며 생각을 해봤는데 아직도 모르겠다는 거야......”

그제서야 퍼뜩 고개를 드는 아버지.

“임신을 했으니 어쨌든 죽어도 이 결혼은 시켜야 해요. 억지로라도 하도록 만들어야지요.”

“억지로라도 결혼을 하게 하다니…….”

“그럼, 결혼을 안 하면요? 미혼모가 어디가서 사람 구실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가 뾰족한 목소리로 외치자 아버지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했다.

“낙태를 고려해보지 그래….”

금아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물컵을 놓칠 뻔 했다. 아버지 입에서 낙태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 것이다.

“뭐라구? 낙태라구?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인간의 탈을 쓰고 천인공노할 그런 말을 어째 그렇게 쉽게 해?”

엄마는 불에 데인 소처럼 펄펄 뛰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신때문에 억지로 엮어져서 평생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느니 낙태를 하는 것도 나쁠 게 없지…”

그때 금아도 한마디 해서 아버지를 거들고 싶었다. 상황에 따라 낙태를 할 수도 있지 뭘 그래요, 하고.

그러나 그날 오전에 자신을 앞에 놓고 하소연하던 엄마를 떠올리고 아버지와 반대되는 의견을 냈다. 일단 생긴 생명은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야 한다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낙태는 안 된다고.

엄마는 그 이후에도 더 펄펄 뛰며 화를 내다가 아버지가 뒤뜰로 나가버리자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왜 그리 불같이 화를 냈을까. 혹시 엄마는 삼십몇년전의 자기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임신했을 때를, 그리고 그 임신을 미끼로 아버지한테 결혼을 종용했을 때의 자신을.

엄마는 임신으로 말미암아 원치 않은 결혼을 했다고 누누히 말해왔다. 혹시 그 반대의 경우는 아니었을까. 오히려 아버지는 엄마가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든 건 아니었을까.

처음, 아버지는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절친했던 친구의 애인이었던 여자였지만 엄마의 미모에 반해 사랑하는 감정이 생겼다. 그러나 갈수록 속물근성을 보이는 엄마에게서 실망하고 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아버지는 엄마와 헤어지려고 했었다. 이 낌새를 눈치 챈 엄마는 아버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획적으로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했고 그걸 계기로 아버지를 옥죄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버지야말로 원치않게 엄마와 엮이어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독한 마음을 먹었더라면, 재산 얼마를 떼어준 후 낙태를 종용했더라면, 그래서 엄마라는 여자와 깨끗히 헤어졌더라면 아버지의 일생은 좀 더 편하고 부드럽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금아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고 이 지겨운 인생을 살지 않았어도 됐을지 모른다.......

“아무튼 좀 이상했어요…..”

남자는 쪽지 한장을 금아에게 내밀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에는 ‘박장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이 갔던 사람들도 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글쎄, 왜 금아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는 우리가 알 리 없고…. 박장수 이 사람은 금아 아버지랑 같은 건물에서 경비일을 하던 친구인데 아버지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연락해 봐요.. 오늘 장례식장에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가는 바람에…”

금아는 쪽지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가 어리고 몸이 약해서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금아 아버지가 두말 않고 대신 경비일을 맡아주곤 했지요.이 친구한테는 금아 아버지가 속 깊은 말을 털어놓곤 하는 것 같던데….”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경비일을 나가곤 했다. 밤 열두시에 들어와 잠을 자러 들어가려하다가도 어디서 걸려온 전화 한 통화에 지체없이 바로 집을 나서곤 했다.

그게 다 박장수란 사람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였나.

박장수란 사람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는 아직도 금아의 화장대 위에 놓여 있다.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무서워서였다. 아버지가 박장수에게 털어놓았다는 그 ‘속 깊은 얘기’를 듣는 게 무서워서.

문득 금아는 지난 봄. 뒷뜰에서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그때 고뇌에 찬 얼굴로 ‘내 결혼은 실패한 결혼이다’ 하고 말했었다. 아버지는 박장수란 사람에게 실패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까.

“금아야…”

“으응?”

“우리 기분 전환 위해 짧은 여행이라도 가지 않을래?”

자기가 계속 뭐라고 떠드는데도 금아가 계속 응,응, 하고 건성으로 대답을 하자 미단이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나 다음 주 수요일부터 휴가야.. 우리 어디든 떠나자……

그러자, 하고 대답하고 금아는 미단이의 전화를 끊었다. 아닌게 아니라 죽음같이 어두운 침묵이 드리워진 집을 잠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진짜로 실행에 한번 옮겨봐야지…… 그나저나 미단이의 휴가가 언제부터라고 했더라?

그때였다. 갑자기 와하하, 하는 통곡소리가 들려온 것은. 금아는 이불을 끌어당기려던 동작을 멈추었다.

통곡소리의 주인공은 역시 엄마였다.

혹시라도 밖으로 새어나갈까 조심하던 낮은 울음소리가 이제는 커다란 통곡으로 변해 있었다. 누가 듣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 크고 높은 통곡 소리로.

금아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엄마 방 앞에는 벌써 은아가 나와 서 있었다. 은아는 불안한 얼굴로 금아에게 다가왔다. 은아는 며칠 사이 바싹 여위고 홀쭉해져 있었다.

“언니….”

금아는 은아를 뒤로 하고 노크도 없이 엄마의 방문을 열었다.

방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옷가지며 책들이며 서류가 산처럼 여기저기 함부로 쌓여 있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던 중인 것 같았다.

엄마는 방 바닥에 널부러진 자세로 한 서류를 들여다보며 울고 있었다. 금아는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엄마의 손에서 서류를 나꾸어 챘다.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그것. 그것은 생명보험 증서였다. 백만불 짜리. 보험 수혜자에 엄마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