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하는 L씨가 새집을 마련했다.
그동안 남편 직장에서 제공하는 오래된 사택에서 살았는데 미장원 근처에 새로 조성되는 주택 단지에 계약을 한 후 근 반년 가까이 기다려 최근에 입주를 한 것이다.
집들이를 하던 날, 나를 비롯한 지인들은 잔뜩 차려진 음식은 뒤로하고 우선 집 구경부터 했다. 특히 나는 남의 집 구조나 인터리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목욕탕 싱크부터 부엌 서랍까지 샅샅히 점검을 했다.
집 구경을 마친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맞는 넓이의 집이다' 였다. 그 생각은 나 역시 같았다.
방 세 개와 목욕탕 두 개로 전형적인 서민을 목표로 설계된 듯한 그 집은 L씨 부부와 딸 하나가 살기엔 천상맞춤의 구조와 넓이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런다. 새 마누라 얻으니 삼년이 좋고 새집 산 후엔 석달이 좋더라고.
무슨 석 달씩이나.
내 경험에 의하면 새집 사고나서 좋을 때는 집들이 할 때 딱 하루다.
집 크고 좋다고 사람들이 칭찬하고 부러워 할 때.
다음날부터는 집 페이먼트와 새집에 맞춰들인 가구값 갚아 나가느라 그야말로 '새가 빠져야 한다'.
특히 새집은 뒷마당이 조성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잔디깔고 시멘트 하는데도 몇 만 불이 족히 들어간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새집 산지 6년이 넘도록 아직도 뒷마당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데 언젠가 봄에 한번 가 보았더니 잡초가 우거져 호랑이가 새끼를 쳐도 모를 정도였다.
무리를 해서 집을 장만했더니 여윳돈이 없어 그 모양이라는 것이다.
식구도 없는데 집만 덩그러니 큰 것을 장만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하긴 우리도 식구 둘에 방이 네 개나 된다.
이왕 사는 집인데 나중에 팔 때를 생각해서라도 큰 집을 사자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침실과 서재 외 나머지 두 개는 일년 열 두달 가도 들어가 볼 일이 없다.
사람이 기거하지 않은 빈 방에서는 나쁜 기운이 맴돌고 있으므로 일 주일에 한두 번씩이라도 들어 가서 온기를 주고 나오라는 풍수(風水)기사를 신문에서 읽고는 그대로 따라하고 있지만 바쁜 세상에 그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쓰지 않는 방인데도 먼지는 왜 그리 많이 쌓이는지 모르겠다.
토요일은 집청소 하는데 꼬박 하루를 바쳐야 한다. 청소를 할 때마다 '뭐 하러 큰 집을 사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하고 후회가 막심이다.
지금으로부터 십몇년 전 새크라멘토에서 알아주는 부촌에 위치한 집에 한 번 가 본 일이 있는데 현관에 들어 섰을 때 본 그 집의 크기와 규모는 아직도 내게 놀라움으로 남아있다.
만 스퀘어피트를 상회한다는 그 집은 궁전이었다.
방마다 목욕탕은 물론이요, 서른명이 들어갈 수 있다는 극장, 도서관(서재가 아니고 도서관이었다)까지 갖춰져 있었다.
두 명의 가정부가 상주하면서 관리하고 있다는 집을 안주인의 안내를 따라 구석구석 구경하는데 거의 30분이나 걸렸다.
남의 좋은 집 구경할 때면 배가 슬슬 아파오는 증상이 있는 나였지만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집의 위용에 놀란 나는 배가 아픈지 안 아픈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안 주인은 산으로 이어진 뒷뜰을 보여주며 "앞으로 모셔 오게 될 시보모를 위해 여기다 독채를 따로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빈 방이 많은데 무슨 집을 또 짓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프라이보시 보호를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프라이버시만을 위해 집을 따로 짓는 사람도 있구나!
집에 돌아오는데 동네어귀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우리집이 그날따라 왜 그리 오막살이 같던지.
그 집에 갔다 온 어떤 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커서 전혀 사람이 생활하는 집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던데요. 부모가 자녀방 한번 들여다 보려면 10분은 걸어가야 하게 생겼으니 대화나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현대에 와서 이혼율이 높아지는 등 가족 관계가 붕괴된데에는 요즘의 주택구조가 일조를 하고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방 하나, 아니면 기껏해야 두 개에 온 식구가 오글오글 모여 살았을 때는 부부가 대판 싸우더라도 따로 나가 잘 방이 없으니 어쩔수 없이라도 살을 부딪치며 한 방에서 자야했으므로 자연히 부부관계가 회복되었었지만 방이 남아도는 요즘엔 베개 하나 들고 다른 방에 들어가 문을 잠궈버리면 그만이니 어떻게 부부관계가 회복되겠냐는 것이다.
특히 형제들은 한 방에서 자라면서 같이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며 정을 나누어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게 된 요즘 아이들은 그런 기회가 없어 철저한 개인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어령 교수는 우리 선조들이 살던 집은 좁은 공간을 최대활용한 지혜가 돋보이는 집으로 방 한칸이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 집은 침실 따로 부엌 따로 응접실 따로로 세분화되어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선조들은 그냥 방 한 칸에다가 밥상 놓아 식당, 방석 깔아 응접실, 이부자리 깔아 침실, 거기다 요강 들여놓아 화장실로까지 썼으니 이런 다목적용의 집이 세계 그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참으로 이 교수다운 명쾌한 관찰과 해석이었다.
나 역시 이 교수 말대로 식당도 되었다가 침실도 되었다가 화장실까지 되는 방 한칸에서 자랐다.
한방에서 지지고 볶던 형제들이 당시엔 얼마나 지겹던지 작아도 좋고 구석이라도 좋으니 제발이지 나 혼자만의 방 한 칸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방이 네 개나 되는 큰 집에서 사는 지금은 오히려 그 시절이 눈물나게 그립다.
손만 뻗으면 닿아 오던 형제들의 그 따뜻한 체온들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