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고는 있지만 정부정책에는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 나였다.

우리같은 소시민은 그저 열심히 일 하고 착실히 법 지키고 정직하게 세금만 내면 되는 줄 알았으니까. 나머지는 정부가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10년전부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정부혜택을 적용하는 현재의 직장에서 일하면서 미국은 절대 공평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금 내는 사람 따로, 그 혜택 보는 사람 따로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제일 불쌍한 부류는 극빈자로 분류도 못되고 그렇다고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수입도 없는 어중간한 월급쟁이들이다. 그들은 허리가 휘어지게 일해 세금만 낸다. 아이를 낳아도 정부로부터 우유 한통 얻어먹지 못한다. 실직해 길거리에 나앉지 않는 한 정부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정부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부류는 아이가 많은 저소득층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착실하게 세금보고를 한 합법인 신분들보다는 불법체류자들이 여기에 더 많이 포함된다.

그들은 신분이 신분인지라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캐쉬로 급료를 받고 세금보고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류상의 소득이 ‘제로’이다. 그 ‘소득 제로’가 미국에서는 큰 벼슬이 된다. 미국에서 낳은 아이들은 모두 시민권자이므로 소득 제로를 이유로 정부의 혜택이란 혜택은 다 타먹을 수 있는 것이다.

‘드림 법안’ 등 불법체류자 구제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이민단체들의 시위소식을 가끔 신문에서 읽는다. 그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했다.

불법체류자란 말 그대로 법을 어긴 사람들이다.

제발 미국에 남아달라고, 월장(越牆)해서라도 와 달라고 미국정부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의 필요나 상황에 의해 불법인 줄 알면서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서라고.

그러나 핑계없는 무덤없다고,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정은 있다. 그렇다고 각자의 사정을 다 봐 줄 거면 이민법은 왜 만들었나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체자들을 사면해 준다면 합법적으로 들어오기 위해 몇년씩, 혹은 십년씩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미국정부가 정한 절차를 밟아 미국에 오기 위해 지금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바보라서 돈 들이고 시간들이며 이민국의  허락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단 말인가.

불체자들을 사면해 준다면 법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그런  어이 없는 일이 되지 않는가.

나랑 같은 부서에서 일 하던 멕시코 여성이 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휴가를 갔다가  한달만에 다시 돌아왔다. 얼굴이 알아볼 수 없게 초췌해졌기에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어서 그러냐고 했더니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 멕시코로 추방 당했다고 했다.

비자없이 샌디에고 국경을 넘어온 사람이라 시민권자인 자기랑 결혼을 했어도 구제방법이 없었단다. 혼자 두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남편에게 보냈는데 아이들 생각에 매일 피눈물이 난단다. 멕시코로 가서 같이 살고 싶은 맘 간절하지만 돈을 벌어 생활비를 보내주어야 하기에 그럴 수도 없단다.

너무 마음이 아파 그 여자에게 저녁을 사주었다. 여자는 음식을 앞에 놓고도 아이들, 남편 얘기만 하면서 계속 울었다. 내가 위로했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그럴까. 그 여자에게도 좋은 날이 올까.

그 여자의 눈물은 불체자들에 대한 나의 차가운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따뜻하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안타깝게 바라볼 수는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