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한편을 보았다. ‘필립 클로델’이란 프랑스인 감독이 만든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란 영화.

불치병 걸린 아들을 죽인 혐의로 15년 형기를 마친 여주인공이 여동생 집에 잠시 거주하는 것으로 시작된 영화는 갈등과 사랑, 치유와 용서하는 과정이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내가 인상깊었던 것은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주인공의 외모였다.

감옥에서 갓 나온 그녀의 모습은 같은 여자로서도 봐주기가 힘들다. 잡초처럼 마구 자라서 뻗친 머리와 가뭄의 논바닥처럼 거친 피부와 대충 걸친 듯한 옷이 극중 나이보다 십년은 더 늙어보인다.

그러나 한 남자와 미묘한 관계가 시작되고 생에 애착을 가지게 되면서 여자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뀐다. 옅은 화장을 하고 귀걸이와 목걸이등 악세사리를 걸치고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여자는 가꾸어야 빛이 나는구나.

그렇다. 여자는, 특히 나이 든 여자는 외모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화장도 곱게하고 내 몸에 맞는 옷을 골라 입고 머리 손질도 게을리 하지 말고. 그런데 문제는 날이 가면 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일이 귀찮아진다는 것이다.

2년 넘게 친필로 편지를 보내오는 한 독자는 입는 옷이 딱 세 종류란다. 집에서는 고무줄 바지, 나갈 때는 청바지, 직장에서는 유니폼(그녀는 간호사다). 외출할 때 큰맘 먹고 이옷저옷 꺼내 입어보고 걸쳐보다가도 아이구, 귀찮아라, 하면서 매번 청바지로 낙찰한다고.

그러면서도 나 한테는 늘 당부한다. 늙으면 못하니까 한살이라도 젊을 때, 몸매 될 때 예쁜 옷 많이 입고 멋부리라고.

늘 간편하고 소박한 차림새인 K씨가 어느 날 귀걸이에 머리 핀까지 꼽은, 잔뜩 멋부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가 의아해 했더니 그녀의 언니가 그랬단다. ‘나이 든 여자는 눈먼 새도 안 쳐다보니 가능하면 예쁘게 하고 다니라’고. 그 말이 우습기도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 나이 든 여자는 여자가 아니지. 아줌마, 할머니일 뿐이지.

L씨의 별명은 ‘영부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항상 완벽한 차림새를 하고 다녀서이다. 그녀를 안 지 10년쯤 되었는데 그동안 단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머리와 화장은 갓 손질하고 나온 것 같이 늘 단정하고 귀걸이와 목걸이까지 세트로 맞춘다. 전혀 허술한 구석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감탄한다. 외경심마저 든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많이 허술하다.  옷에 대한 감각이 좀 있어서 맘 먹고 차리고 나가면 흉 잡힐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로 나는 꾸미는 게 귀찮은 사람이다. 머리는 핀 찔러 올려부치는 게 다고 웬만큼 중요한 자리 아니면 화장도 악세사리도 안 한다. 원래 주렁주렁한 스타일을 안 좋아하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귀찮아서.

지지난 토요일 아침, 커피 마시자고 사람들을 잔뜩 불러놓고 바람 맞췄다.

새벽 4시에 잠들었다가 눈 뜨니 약속시간 10분 전. 일어나 씻고 치장하는 게 엄두가 안 났다. 눈꼽만 떼고 나갈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주저앉아버렸다.

나중에 사람들한테 직싸게 당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멋부리는 것, 아무나 못한다. 부지런한 사람만 한다. 늙어지면 못하나니 지금 해야 하는데, 마음은 굴뚝같은데 실천이 안 되니 이를 어쩔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