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합니다. 부모 복 없는 여자는 서방 복도 없고 서방 복 없는 여자는 자식 복도 없다고. 부모 복 없는 여자가 서방 복도 없다는 말은 대충 맞다는 걸 느낍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거의 다 그렇거든요. 간혹 예외가 없지 않으나 어릴 때부터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성장한 여자는 결혼을 해서도 남편 사랑 받지 못하고 지지리 고생하며 살더라구요.

그런데 그렇게 부모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며 산 여자들이 나중에 자식들로부터는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어머니의 힘든 삶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며 자란 자식들이 나중에 성공해 어머니의 희생에 보답을 하는 것입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나 같이 복 없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부모 복, 남편 복, 형제 복, 공부 복. 정말이지 사람이 타고나야 할 복 중 그 어느 한가지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내가 자식 복 하나는 풍부한 것 같습니다. 내 아이들은 지금 각처에서 훌륭하게 제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를 걱정하게 하거나 속을 썩이는 아이가 한 명도 없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내 아이들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이 사회의 큰 일원으로 우뚝 서 준 내 아이들이 너무 장하고 고맙습니다.

출가해서 다 각자의 가정을 이룬 내 자식들이지만 그 아이들은 항상 엄마가 우선입니다. 지금도 엄마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습니다. 내 말 한 마디가 곧 법이요, 진리입니다.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 줍니다. 정말로 너무 고맙고 고마운 일이지요.

그런 고맙고 대견한 한 켠에는 항상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입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그 속담은 틀렸습니다. 열 손가락 중에서 유독 아프고 쓰라린 손가락이 있습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싸하게 가슴이 아파오는 손가락, 그런 자식이 있습니다.

내게는 바로 나의 큰 아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어릴 때부터 온갖 볼 꼴, 못볼 꼴을 다 보고 자란 내 큰 아들. 지금은 나의 가장 크고 든든한 기둥이 되고 있는 큰 아들.

어느 집 장남이 다 그렇듯 나의 큰 아들은 진중하기가 태산과 같고 점잖기가 부처님과 같습니다.

특히 어린애로서 감당하기 힘들고 심한 일들을 겪으며 자란 아이라서 그런지 심중이 매우 깊습니다. 감정의 희노애락을 얼굴에 잘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우 착합니다.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알고 도울 줄 압니다.

지금 큰 아들은 컴퓨터 게임 제작사인 ‘클릭 네이션’의 대표입니다. ‘식스 갤럭시’ ‘ 에이지 오브 챔피언 등 월 50만 명이상의 게이머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게임을 개발한 회사입니다. 현재 1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지금도 계속 사원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새크라멘토 주립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 사이언스를 전공한 후 UC 데이비스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대학 재학 중 미국내 굴지의 투자증권 회사인 ‘플랭클린 탬톤’에 입사 해 졸업 후에도 계속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현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던전 드래곤’의 주인공을 닮은 캐릭터를 개발하겠다는 꿈을 실현시킨 것입니다.

2011년, 언론 복합기업인 ‘MBC유니버셜’ 사와 수백만불의 계약을 체결 시켰을 때, 또 온라인 게임을 잇달아 히트시키자 계속 러브콜을 보내던 세계적 게임 기업인 EA(Electronic Arts)3500만불에 합병했을 때인 2012년 3월, 이곳 미국신문인 ‘새크라멘토 비’에 지역경제를 회생시킨 기업인으로 수차례 소개되었습니다. 언론사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아들은 말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져왔던 꿈을 마침내 이루었습니다. 오늘 내 꿈을 이루기까지는 내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지속적인 희생과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내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말못할 고생을 하셨습니다. 밤 늦게까지 식당 등에서 힘들게 일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반드시 성공해 어머니의 고생에 보답하리라 마음을 다졌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몸둘 바를 모릅니다. 정말이지 엄마로서 해 준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미안하기만 할 따름인데 아들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내가 아들을 위해서 한 것은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들의 성공을 다짐하는 기폭제가 되었다니 그저 부끄럽습니다.

앞에서 잠깐 얘기했듯 큰 아들은 싫고 좋은 감정을 얼굴에 잘 나타내지 않는 편입니다. 아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날 때는 엄마인 나에 대해서 얘기할 때 뿐입니다. 아들은 어릴 때 내가 해주었던 떡복이를 지금도 아주 좋아합니다. 지금도 가끔 집에 오면 내가 해 준 떡복이를 아주 맛있게 먹는데 그때 아들의 얼굴에는 행복감과 만족감으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날, 아들들이 쟌과 같이 나란히 식탁에 앉을 때가 있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와인 잔을 건배하는 큰 아들의 얼굴에는 쟌을 싫어하는 표정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반감 같은 것도 전혀 없어보입니다.

작은 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쟌과 같이 유쾌하게 웃고 떠듭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저 아이들의 머리에는 어릴 때의 기억들이 아직도 남아있을까? 아니면 그 무시무시한 기억들이 깨끗하게 지워져 버렸을까? 만약 어릴 때 쟌으로부터 학대받던 그 기억들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다면 쟤네들은 쟌을 용서했을까. 그래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는 것일까.

쟌은 한 사회인으로서는,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실했고 자상했고 인자했습니다. 문제는 처음 몇년동안만 그랬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서 변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쟌은 그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변할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180도로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지난 편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처음에 쟌은 내 두 아들들에게 그런대로 잘했습니다. 장난감도 잘 사다주었고 아이들이 잘못 알아들어도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영어를 가르쳐주었으며 장난을 치며 놀아주기도 했습니다. 자전거를 같이 타러 나가기도 했고 야구놀이도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사랑이 넘치는 부자간으로 보일 만큼 그들 셋은 잘 어울렸습니다.

아이들 역시 쟌을 무척 잘 따랐습니다. 쟌이 가르쳐준대로 ‘대디’라고 부르며 친아버지처럼 따랐습니다. 윤승준은 나를 감시하고 학대하는 데만 정신을 파느라 자기 아들들이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항상 뒷전이었던 터라 어찌보면 윤승준보다 쟌이 아버지 노릇을 더 잘했다고 해야 옳겠습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미국에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사랑없이 한 결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쟌과 장난치며 내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쟌과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긴 여정끝에 이제야 제대로 된 행복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면 절대로 안 되는 여자인가 봅니다. 내 삶에는 반드시 고통과 고생이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가 봅니다.

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첫 딸이 태어나고 연이어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는 두 딸들에게는 여전히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낳은 두 아들들, 그러니까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내 두 아들들에게는 악하고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쟌이 변한 징조를 보인 것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두 아들이 먹는 것을 아까워하기 시작한 데서 나타났습니다.

“어린 것들이 꼭 어른같이 많이도 먹네……”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쟌이 두 아들들을 보고 한 말입니다. 나는 그때 딸에게 젖을 물리느라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습니다. 등을 지고 앉아있었기에 처음에 쟌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쟌의 표정 역시 볼 수 없었지요.

“뭐라구요?지금 뭐라고 했지요?”

내가 고개를 빼고 재차 묻자 쟌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쟌이 무슨 말을 하긴 했는데 무슨 말이었을까. 썩 좋지 않은 투의 말이라는 것만이 가슴에 걸렸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애써 넘어갔습니다.

그랬는데 며칠 후 저녁식탁에서 쟌이 또 말했습니다. 아주 밉쌀스런 눈초리로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얘네들 밥의 양이 너무 많은 것 아니야? 어린 애들 밥을 왜 저렇게 많이 줘?”

그때까지만 해도 쟌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그냥 무심하게 흘려들었습니다.

“많긴 뭐가 많다고 그래요? 한창 뛰어노는 아이들인데 그 정도는 먹어야지요. 잘 먹어야 키도 크고 체중도 늘게 아니겠어요?”

며칠 후 딸을 데리고 외출했다 오니 아이들이 풀이 잔뜩 죽어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부엌에 위치한 펜츄리에서 수시로 꺼내먹던 과자를 쟌이 바구니에 담아 치워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손이 닿지않게 냉장고 위에다 올려버렸다는 것입니다.

나는 약간 의아해 했으나 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바구니를 내려 아이들 손에 쥐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니네들이 과자를 하도 좋아하니까 아빠가 이 썩을까 봐 치워버렸나보다….”

그때였습니다.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던 쟌이 이런 광경을 보고 있다가 소리를 버럭 지른 것입니다.

“이봐! 요즘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지난 달 가계부를 보니 아이들 군것질거리에만 100불을 넘게 썼더구만? 이제부터 아이들에게 하루 먹는 양을 정해 줘! 최소한의 양만 주란 말이야!”

별안간 벌어진 일에 나는 대꾸를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돈 한 푼 벌어오지 못하는 것들이 집에서 돼지같이 처먹기만 해……”

나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결혼해 몇년을 살면서 그동안 한번도 듣지 못했던 쟌의 포악스런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내 두 아들들에 대한 쟌의 구박은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더욱 강도가 심해졌습니다. 예전처럼 아이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지도 않았고 놀아주지도 않았습니다.따스한 눈길로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선물을 사 와도 두 아들 것은 쏙 빼놓았습니다. 완전 찬밥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대신 자신의 두 딸은 물고 빨았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니까 비싼 옷이나 신발이 필요없다는 내 말을 무시하고 뭐든지 최상으로, 최고급으로 사 입혔습니다.

내 아들들이 쟌의 그렇게 변한 태도를 왜 모르겠습니까. 눈치를 슬슬 보면서 쟌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멀쩡하게 걸어 나오다가도 쟌의 모습이 보이면 비실비실, 비척비척 병든 닭처럼 주눅이 들어 걸음도 제대로 걷지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내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쟌이 없을 때 떡복이등 맛있는 것들을 해서 먹이며 다독거릴 수 밖에.

나는 아이들을 타일렀습니다.

“아빠가 너희들한테 뭘 잘못하거나 소홀한다해도 니네들은 아빠를 미워하면 안 된단다. 왜냐면 너희를 이곳 미국까지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고 공부를 시켜준 고마운 사람이니까. 알겠니?”

그 말은 나의 진심이었습니다. 윤승준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쟌에게 늘상 빚진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나는 늘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입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서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며 구박덩어리로 자랐는지라 자존감이 땅에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지못했습니다.

‘나는 형편없고 못난 사람이다. 길가에 핀 잡초같고 굴러다니는 돌멩이 같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거두어 준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

항상 그런 마음이 내 가슴속에 깔려 있었습니다. 얼마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오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 역시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구나….

그 노래를 진작 들었더라면 윤승준이나 쟌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언어와 표정으로서 내 아들들을 구박하던 쟌이 종내에 가서는 매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화날 때마다 아이들을 마구 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윤승준이 나를 때릴 때처럼 쟌이 아이들을 때린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식탁에서 음식물을 흘렸다고. 방문을 꼭 닫지 않았다고. 대답을 크게 하지 않았다고. 부를 때 금방 달려오지 않았다고. 자기가 퇴근해 들어왔는데 얼른 나와보지 않았다고.

처음엔 부엌 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거나 목욕탕에 한두시간 씩 가두어 놓는 방법을 썼습니다. 정 화가 나면 아들들의 머리나 등짝을 한두대 후려치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엔 ‘폭력’이란 말을 부쳐야 할 만큼 강도가 세졌습니다.

손에 잡히는대로, 닥치는대로, 아니면 주먹으로 아이들을 무지막지하게 패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들들은, 불쌍한 내 아들들은 저항 한 번 못하고 새아버지로부터 그 무지막지한 매를 다 맞았습니다. 사흘들이로 코피가 터지고 몸에 상처가 생길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쟌의 폭력은 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큰 아들은 울음소리, 비명소리 한번을 내지 않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울기도 하고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으나 큰 아들은 묵묵히 그 폭력을 다 당해내는 것입니다. 예전에 내가 윤승준으로부터 매 맞을 때 신음 소리 한 번, 비명 소리 한 번을 내지 않았듯이.

나중에, 아주 나중에 큰아들한테 물어본 적 이 있습니다. 얘.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을 하지 그랬니? 눈물이 나면 그냥 소리내어 울지 그랬니?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마음 아플까 봐서요…..”

아이들에 대한 쟌의 학대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내가 아이들을 더 감싸게 되었던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마치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보호하듯 아들들을 내 품안에 감싸안고 더욱 애지중지한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온 가엾은 내 아들들입니다. 새아버지를 만나 그동안 받지 못한 사랑을 받나했더니 그게 아닙니다. 처음처럼 사랑을 주지 않는 것 까지는 좋은데 매까지 맞아야 한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나의 태도가 쟌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봅니다. 아들들만 끼고 도는 내 모습이 자신의 비위를 더욱 틀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쟌은 내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당신은 왜 항상 민수와 민우만 감싸고 돌아? 이 집안을 다 먹여 살리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람이라는 걸 잊었어?저 두 새끼들이 처먹을 줄만 알았지 단돈 10불을 벌어오기나 하냐구? “

두 아들은 날이 갈수록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딜 가나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딱 주인으로부터 학대받는 강아지 꼴이었습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사랑받지 못하면 벌써 모습에서, 행동에서 확연하게 표시가 납니다.

스쿨 버스가 동네에 들어올 시간이면 나는 작은 딸을 태운 유모차를 밀고 큰딸의 손을 잡고 골목에까지 나가 아들들을 기다렸습니다.

노란 색깔의 스쿨 버스가 서면 한떼의 아이들이 내립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각자 집을 향해 걷습니다. 그 아이들의 무리에는 내 아들들도 끼어있습니다. 그들은 벌써 보기에도 힘이 없어보입니다.고개와 어깨는 축 처지고 마지 못해 걷는 것처럼 발이 땅에 질질 끌립니다. 그렇게 걷다가 이만치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금방 환해집니다. 얼른 쫒아 와 내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작은 여동생이나 내 손을 잡고 있는 큰 여동생의 볼에 입을 맞추고 손을 만져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첫 마디.

“아빠 아직 안 오셨지?”

가끔 쟌이 이른 퇴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아들들은 집에 들어 오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더뎌집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형색이 따로 없습니다. 집밖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 있으려고 쭈볏쭈볏합니다.

“응 아직 안 오셨어…”

그러면 아이들은 와아, 환호성을 지르며 가방을 내게 집어 던지고 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텔레비젼을 켜고 만화영화를 보거나 내가 구워놓은 쿠키를 먹으며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떠듭니다. 그러나 쟌이 집에 있다고 하면 벌써 숨소리나 목소리 톤부터 달라집니다. 혹시라도 쟌의 비위를 거슬려 얻어 맞을까 봐 극도로 조심을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두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내가 마악 구운 쿠키를 우유에 찍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쟌이 차고로 난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무슨 일로 일찍 퇴근을 한 것입니다.

웃으며 쿠키를 먹고 있다가 쟌의 모습을 본 두 아이들이 금방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공포로 얼굴이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만것입니다.

“병신 새끼들…..”

그 모습을 본 쟌이 아이들을 또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보고 웃지 않고 표정이 굳었다는 게 아이들을 때리는 이유였습니다.

강아지도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미워해주는 사람을 금방 알아 챕니다. 자기들을 미워하고 있다는 걸, 엄마인 나랑 결혼했기에 할 수 없이 마지못해 최소한의 의식주만 제공해주고 있다는 걸 아이들이 왜 모르겠습니까.

아이들이 자신을 무서워하면 할수록, 멀리 하면 할수록 쟌의 아이들에 대한 미움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거실에서 놀다가 쟌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자기들도 모르게 소파 뒤나 클로젯으로 숨을 때가 있습니다. 쟌으로 부터 시도 때도 없이 당하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반사적으로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날은 아이들이 반죽음을 당하는 날입니다.

“ 아버지가 들어오면 얼른 와서 인사를 해야지, 숨긴 왜 숨어? 내가 전염병 환자야, 뭐야, 이 새끼들아?! 뼈 빠지게 일해서 네놈의 새끼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학교도 보내주는데 왜 나를 피해?왜 나를 피하냐구?”

퍽퍽 소리를 내며 아이들이 맞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지러졌습니다.

그러나 말리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몇번 나서서 말렸다가 더욱 심하게 아이들이 맞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여자는 경제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독립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쟌으로부터 매일이다시피 얻어터지는 걸 보면서 ‘이혼’이란 걸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정말이지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언제까지 아이들이 맞는 걸 보아야 하는지. 차라리 내가 맞는 게 낫지 아이들이 맞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뼈를 깎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요, 아픔이었습니다. 가슴이 천갈래만갈래로 찢어지고 헤집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수천번, 수만번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전혀 없었어요.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지리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하는 것밖에 없는 내가, 그러니까 바보나 다름없는 내가 뭐를 어떻게 해보겠습니까. 이혼을 한다한들 어떻게 살아나가겠습니까.

한국이라면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아이들을 먹여살리겠지만 미국에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에서 남아 있을 걸. 식모일이라도 해서 그냥 우리 세 식구 오손도손 살 걸…..

후회가 하늘을 찔렀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한 일은 맞아서 상처 투성이가 된 아이들을 부여안고 우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해 아들들아. 엄마가 못나서 니네들이 이런 꼴을 매일 당하는구나. 미안해….정말 미안해…….”

지금은 미국의 가정 폭력법이 아주 엄해서 매맞는 여자들은 물론이고 매맞는 아동들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몸에 자그마한 상처나 멍이라도 보이면 교사가 해당 기관에 반드시 신고를 하게끔 되어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동들에 대한 부모의 학대가 사실로 밝혀지면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조치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당하는 학대가 아이들의 인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정부가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내 아들들이 쟌과 같이 살 때만 해도 80년대 초반. 지금처럼 법이 잘 개선되어 있지 않을 때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여성과 아동들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지 않을 때입니다.

법이 우리 아들들을 보호하지 못하면 엄마인 나라도 나서서 새아버지로부터 아이들을 방어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냥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내 불쌍한 두 아들이 쟌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맞고 있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고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있는 게 있다면 내 아들들이 폭력의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자라난 아이들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화날 때마다 폭력을 쓰는 걸 보면서 오. 화날 때는 남을 때리는 것으로 분노를 조절 해도 되는구나, 하고 은연 중에 배운다는 것입니다. 폭력을 정당화 시키고 폭력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 마누라나 자식을 때리는 사람들은 자신도 어릴때부터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느낀 것이 윤승준도 쟌도 폭력과 무관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고 모진 세월속에서 내 아들들은 성장했습니다. 내 두 아들은 내가 흘린 피눈물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쟌과 살면서 내가 아들때문에 흘린 피눈물을 다 합치면 한 양동이는 충분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약과였습니다. 나중에 내가 둘째딸 때문에 흘린 피눈물에 비하면 그것은 새발의 피 일뿐이었습니다.

내 둘째 딸.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는 하나 아직도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 내 둘째 딸.

다음 편은 둘째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내 가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크나큰 상처를 준 내 둘째 딸에 대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