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慘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이지요.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 보다 먼저 죽는 일, 자식을 먼저 잃는 일을 참척이라 한답니다.

그렇겠지요. 부모에게 자식을 먼저 잃는 일 만큼 더 큰 슬픔과 아픔이 어디 있겠어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그 참혹한 슬픔. 하늘에 머리를 두고 있다는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그 처절한 고통.

학교를 못간 대신 책이나 신문을 통해 지식과 상식을 쌓으려고 작정했던 나는 그 말을 어릴 때부터 책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참척을 당한 문인들이 남긴 글을 통해 아, 자식을 잃는 슬픔이 멀쩡한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요, 괴로움이로구나 그냥 짐작만 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참척을 당한 사람이 꽤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코메디언 이주일 씨입니다. 6대 독자인가 7대 독자인가를 잃었다고 하지요. 그분이 폐암에 걸린 것도 아들을 잃고난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였다고 합니다. 줄담배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답니다.

그리고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도, 탤런트 박원숙씨도 외동 아들을 잃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왜 세상을 일찍 떠나는 사람들은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운 외독자들일까요. 아들을 향한, 특히 외독자를 향한 관심이 사랑이 각별했을 부모들의 상심과 슬픔은 오죽했을까요.

88년,한국 올림픽이 한창이던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완서 선생도 아들을 잃었답니다.

외동 아들이자 외과 의사 지망생이었던, 성격 좋고 준수한 인물의 전도가 아주 유망한 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선생이 아들을 잃고 몇년 후 쓴 ‘한 말씀만 하소서’란 책을 읽었습니다. 선생은 손톱이 벗겨지도록 방바닥을 헤매면서, 목구멍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통곡하면서 하늘을 향해 절규하고 포악을 부렸답니다.

신이시여. 한 말씀만 하소서.제발 한 말씀만 하소서. 왜 내 생떼같은 아들을 데려가셨는지 제발, 제발 한 말씀만 하소서…

신은 끝내 침묵하였고 박완서 선생은 그때의 가슴 에이는 슬픔과 고통을 정리해서 ‘한 말씀만 하소서’란 제목의 책으로 엮어내신 것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호, 글을 쓸 줄 아는 작가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키는구나. 글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그러면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 그 슬픔의 구덩이를 헤쳐나올까. 아마 우는 것 뿐일거야.우는 것. 밤낮으로 우는 것.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자지 못하고 스물 네시간 가슴을 쥐어뜯으며 우는 것.

사람만큼 어리석고 약한 것이 또 있을까요. 정말로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란 존재입니다. 얼마 후에 박완서 선생이 당한 일을 나도 고스란히 당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한 채 나는 그렇게 무심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우는 것으로 태산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은 슬픔을 삭힐 거야 하고.

박완서 선생의 책을 읽은 몇년 후, 나도 박완서 선생처럼 참척을 당했습니다. 내 넷째 딸을 잃은 것입니다.

겨울로 막 접어드려고 하는 늦은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오, 내가 그 날짜를 어찌 잊을수 있을까요. 정확하게 1998년, 10월 27일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나의 네 아이들은 학교갈 준비를 하느라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날 아침 내 넷째 딸, 엘리자벳에게서는 아무런 이상 징후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기는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약하디 약해 빠진 존재가 인간입니다. 5분 후에 일어날 일도 예측 할 수 없는 게 인간인데 그날 오후에, 불가항력의 힘으로 일어날 일을 겨우 열살짜리 내 딸이, 그리고 내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날 엘리자벳은 하얀 색 스웨터에 하얀색 면바지를 입고 학교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니?아침 대충 먹고 가서 오후에 허기진다고 늘상 그러지 말고 뭘 좀 더 먹고 가려무나?”

나는 다른 엄마가 그러듯 무심하게 잔소리를 했지요.

“아니야. 엄마 많이 먹었어…..”

엘리자벳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집을 나서는 오빠와 언니를 따라 엘리자벳도 현관을 나섰습니다.

“잘 갔다와. 차 조심하고….”

엘리자벳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바로 집 근처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통학버스를 이용할 필요없이 늘 걸어서 학교에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큰 대로를 건너야만 학교로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그 대로에는 스톱 사인만 있고 신호등이 없었습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라 신호등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엘리자벳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로질러 건너야 하는 그 대로가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차 조심하라고 엘리자벳에게 주의를 주었던 것입니다.

“알았어. 엄마…”

열려 있는 현관문을 향해 두어걸음 나가던 엘리자벳이 다시 몸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왜 뭐 잊은 거라도 잊니?”

내가 의아해서 묻자 엘리자벳은 배시시 웃음을 물더니 내게 달려들어 깊은 포옹을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엄마. 사랑해….”

“그래, 나도 우리 엘리자벳을 많이 사랑해”

조금 이상하긴 이상했어요. 그날 아침은. 엘리자벳이 어린 강아지처럼 내 품을 마구 파고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내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얘,얘. 조금 전에 허그했쟎아. 어서 가. 학교 늦겠다…”

“난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숨이 막힐 정도로 나를 끌어 안는 엘리자벳.

“그래. 나도 이 세상에서 우리 엘리자벳이 제일 좋아….아이고, 그만해라. 엄마 숨 막힌다...”

내 귀여운 막내딸, 엘리자벳. 봄바람같이 부드럽고 강아지처럼 사랑스럽고 병아리같이 따뜻한 내 딸.

나를 다시 한번 힘차게 끌어안고 뛰어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최근들어 엘리자벳의 키가 부쩍 컸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하얀 면바지를 입은 다리가 유난히 길쭉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잘록한 허리가 벌써 여자의 자태를 풍기고 있었어요. 나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멀어져 가는 엘리자벳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골목길을 돌아가면서 엘리자벳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것이, 그것이 내 딸 엘리쟈벳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나는 뒷뜰에서 꽃나무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꽃 모종의 흙을 북돋우고 비료를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사이렌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쁘고 불길합니다.

어디선가 또 무슨 사고가 났구나…

나는 허리를 펴고 일어서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곧 아이들이 돌아올 때라 간식이라도 챙겨놓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집 현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얘네들이 벌써 돌아왔나.초인종을 두고 왜 저렇게 문을 두드릴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바쁜 걸음으로 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바깥에는 엘리자벳의 친구들이 서너명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들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얼굴들이 모두 하얗게 질려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시나무 떨듯 몸을 덜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벳이…엘리자벳이….”

아이들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턱이 어긋나는 사람처럼 입을 벌리면서 엘리자벳이란 말만 연속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큰 길 쪽을 계속 가리키는 것입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우리 엘리자벳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을 밀치고 큰 길 쪽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것 같 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 딸 엘리자벳이 무사하기만을 간절하게 빌 뿐!

정신없이 뛰어간 큰 길에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엠블런스 차와 경찰차였습니다. 길가에는 차들이 수십대 정차해 있었고 그 차에서 내린 운전자들이 삼삼오오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응급요원들 서너명이 길에 엎드려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경찰들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즉각 알 수 있었습니다. 응급요원들이 엎드려서 만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내 딸 엘리자벳이라는 것을!

“엘리자베엣!?”

나는 짐승같은 비명을 터트리며 응급요원들을 헤치고 들어갔습니다.

오오! 땅바닥에, 차가운 땅바닥에 내 딸 엘리자벳이 누워있었습니다. 몸에는 피 한 방울이 흐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습니다. 그냥 자는 듯이 곱게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았습니다. 그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을. 살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요!.

“엘리자벳? 엘리자벳?”

나는 아이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왜 여기서 이러고 누워 있니?일어나. 일어나, 얼른! 얼른 일어나서 엄마랑 집에 가자. 응?”

내가 거칠게 흔드는데도 엘리자벳은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습니다.

경찰과 응급요원들이 나를 제지했습니다. 나는 몸무림쳤습니다.

“놔요. 내 딸을 깨워요. 얼른 깨워서 집에 데리고 가야 해요!”

엘리자벳의 몸이 들것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하얀 천으로 덮혀졌습니다. 죽은 사람에게만 덮는 하얀 천이 내 딸 엘리자벳의 몸에 덮혔습니다. 그리고 엠블런스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엘리자벳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왜 저 아이가 말 한 마디 없이 엠블런스에 실려가야 하는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머릿속이 하얗게 빈 것 같이 멍하고 멍할 뿐.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게 서 있는 나를 경찰이 부축했습니다. 나는 경찰들이 이끄는 대로 경찰차를 타고 엘리자벳이 옮겨진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말을, 그러나 절대로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따님은 죽었습니다…….”

침통한 의사의 입을 통해 엘리자벳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내 딸 엘리자벳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재확인 한 것입니다.

뇌출혈이었답니다.

길을 건너다가 남미 계통의 틴에이저 여섯명이 탄 차에 치여 쓰러지면서 그 자리에서 절명한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풀썩, 빈자루처럼 쓰러져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이었습니다. 남편 쟌과 세 아이들이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쟈벳 어딨어? 엘리자벳 어디 있냐구!?”

나는 악을 썼습니다.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내 딸, 내 사랑스런 딸 엘리자벳이 더 이상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 아팠습니다. 통곡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지금도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딸, 내 천사같은 딸의 마지막 모습이 마치 자는 듯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 걱정이나 근심없이 편안하고 곱게 자듯이 세상을 떠난 모습을 내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다치거나 터지거나 부러져서, 그래서 피 칠갑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나는 아마 미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나는 살아갈 수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피라면 몸서리가 쳐지고 소름부터 돋는 나입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어이없게 딸을 잃었습니다.

지난 간 일은 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다 착하다고 하고 좋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내 딸 엘리자벳에게 부쳐지는 찬사는 전혀 거짓말이 아닙니다. 왜냐면 그 아이는 유난히 사랑스럽고 착하고 예뻤던 까닭입니다. 엘리자벳이 다니던 카멜리아 초등학교에서 엘리자벳을 모르는 학생과 학부모와 선생들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공부는 항상 최고였고 인사성 바르고 명랑하고 밝고 싹싹한 아이였습니다. 봉사정신이 남달랐고 남을 돕는데 항상 앞장서던 아이였습니다.

내 성격은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웬만해서는 절대 앞에 나서지 않고 뒷편에 조용히 서 있는 편입니다. 무리에 섞여 있는 것을 선호합니다. 혼자 튀는 것을 싫어합니다. 엘리자벳의 아버지인 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엘리자벳은 달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막내로서 부모와 형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인지 햇살처럼 밝고 구김이 없었습니다. 앞장서는 것을 좋아했고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주위에서는엘리자벳을 죽인 여섯명의 틴에이저를 고소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고소해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벳의 못다한 생명값을 받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내 딸 엘리자벳이 이 세상에 없는데. 억만금을 받으면 뭐하냐구요.

장례식에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엘리자벳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는 카드와 함께 화환을 보내왔습니다. 딸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미국 신문에 조그맣게 실렸는데 그 기사를 보고 보내온 것입니다. 낯모르는 미국인들에게도 엘리자벳의 못다한 삶이 안타까웠겠지요. 그러나,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 내 딸 엘리자벳이 이 세상에 없는데 온 세상이 꽃으로 뒤덮힌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구요.

두달 후 크리스마스를 기해 새크라멘토 카운티에서는 18만 불의 예산을 들여 사고지점에 신호등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내 딸 엘리자벳이 이 세상에 없는데.

엘리자벳을 묻고 돌아오면서 나는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도저히 살아갈 의욕이 없었습니다.

내 가엾은 딸이 차갑고 캄캄하고 축축한 땅 밑에 누워 있는데 태평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묘지로 달려갔습니다. 주위의 권유에 의해 미음이라도 한 숟가락 떠 삼키려 하다가도 내 딸 엘리자벳이 혼자 외롭게 땅 밑에 누워 있다는 생각을 하면 목구멍으로 뭘 넘기는 게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유독 그 아이한테 마음이 아프고 미안 한 게 그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로서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서너살 부렵무터 내가 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쟌과의 관계는 점점 악화일로로 치달았습니다. 앞 편에서 말했다시피 그는 내 아들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아까와했습니다. 두 아이들에게 드는 돈은 뭐든지 다 아까와했습니다.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쓰는 생활비까지 아까와했습니다. 한달에 얼마나 쓰는지 호시탐탐 지켜보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나는 꽃 가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앞뜰 뒷뜰에 갖가지의 꽃을 심어놓고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 봅니다. 내 몸에 치장하는 것은 돈을 들이지 않지만 꽃사는 것에는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맘에 드는 꽃화분이라도 사오는 날은 쟌과 한바탕 크게 싸우는 날입니다. 뭐하러 쓸 데 없는데 돈을 들이는 거냐고 시비를 거니까요. 그래서 꽃화분을 사면 몰래 감추어 놨다가 적당한 핑게를 대고 집에 들여와야 했습니다.

쟌은 나 한테는 그렇게 인색하게 굴면서도 자기 형제나 부모에게 돈을 주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는 남자였습니다. 7남매의 셋째로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쟌은 형제 중 그런대로 돈을 버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와 나머지 6남매가 모두 무직자이거나 근근히 연명만 해나가는 형편이라 쟌이 그들의 생활비를 보태주어야했습니다.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길어다 붓는 형국이었어요.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쟌도 나중에는 짜증이 났겠지요. 그 짜증을 나한테다 다 푸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쟌의 감시때문에 달러 한장을 쓰는 데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어요.정말이지 치사하고 한심한 일이었습니다.

경제력이 없는 나는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심했습니다. 안되겠다. 이런 식으로 평생 돈에 옥죄어 살 수는 없다……..

한 한국 식당에서 웨이츄레스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일을 다니는 동안 어린 엘리쟈벳은 늘 나랑 떨어져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으면 좀 더 옆에서 사랑해 주고 보살펴 줄 걸. 그까짓 돈이 뭐라고, 자립이 뭐라고 어리디 어린 아이를 떼어 놓고 일을 다닐 생각을 했을까!

나는 물만 마셔도 토했습니다. 물론 음식은 거의 섭취할 수 없었지요. 쟌과 아이들이 학교로, 직장으로 나가고 없으면 하루 종일 통곡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눈가가 짓무른다는 말이 있지요. 너무 많이 울면요. 눈가가 짓무릅니다. 쓰리고 아픕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꺽꺽, 하는 신음 소리만 나올 뿐. 가슴만 터질 듯이 아플 뿐.

길을 가다가도 비슷한 아이만 보면 쫒아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쫓아가서 아이의 앞모습을 확인하고 내 딸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또 한바탕 통곡이 터집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 딸아이가 없다는 걸 재확인하면 숨통이 터져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의 맑고 드높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 품에 쫒아와 안기는 환영에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기도 했습니다.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엘리자벳의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단 하루도 빼지 않고. 그러기를 5년 5개월 동안이나 했습니다.

무덤에 갈 때마다 꽃을 사갔습니다. 하얀 장미와 백합이었습니다. 겨울엔 꽃이 금방 얼어버립니다. 그리고 한 여름엔 5분만 놓아두어도 더위때문에 꽃이 시듭니다.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꽃을 비석 앞에 놓아두고 나는 지칠 때까지 비석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묘지의 개장 시간이 아침 여덟시였습니다. 나는 몇십분 미리 가서 기다렸습니다 .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딸의 무덤으로 뛰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이곳 캘리포니아의 여름 날씨는 덥기로 악명높습니다.100도를 훨씬 웃도는 날이 많습니다. 그 더위에도 몇시간씩 무덤 옆에 앉아 있다가 깜빡 잠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 묘지관리인이 쫒아 와서 나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혹시 죽었나 싶어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5년 5개월이나 그러는 동안 나의 몸무게는 88파운드까지 내려갔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인 것입니다. 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 나는 거울을 한번을 보지 않았습니다. 딸을 먼저 앞세운 죄인이 뭐 잘났다고 거울을 봅니까.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내 몸을 비추어 본 일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내가 봐도 내 얼굴과 몸은 흉측했습니다. 해골이 따로없었습니다. 뼈와 가죽만 남아 있는 모습.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습니다.

아, 이래서는 안되겠다….. 남아 있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내 몸을 추스려야지…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딸 생각만 하면 주르륵, 눈물이 자동으로 흐르는데.

그즈음 딸이 죽은 슬픔에서 헤어나오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아는 종교가 있습니다. 둘셋씩 짝을 지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다니며 선교를 하는 종교단체입니다. 정통 기독교에선 이단이라고 치부해서 문전박대를 많이 당하는 모양인데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기대보고 싶고 위로받고 싶었던 나는 그들을 늘 따뜻하게 맞아들였습니다.

과일과 커피를 대접하고 그들과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하고나면 잠시라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또 우리집을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사람이 아니라 미국 목사님이었습니다. 한동네에 살면서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또 울면서 딸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하소연하고 탄식했습니다.

묵묵히 나의 말을 다 듣고 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어젯 밤 제가 기도 중에 한 무리의 천사를 보았습니다. 눈부신 모습의 천사들은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모두 환하게 켜진 촛불을 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 유난히 예쁘고 귀여운 한 천사의 손에 든 촛불이 꺼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물었지요. 천사님. 촛불이 꺼져 있네요?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지상에 있는 우리 엄마의 눈물때문입니다. 우리 엄마가 매일 흘린 눈물로 제 촛불이 항상 꺼져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딸아. 내 딸아. 미안해.내가 흘린 눈물로 네가 항상 꺼진 촛불을 들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미안해. 울지 않을께. 이제부터 너를 생각해서라도 울지 않을께…..

그리고 며칠 후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나는 엘리자벳의 무덤에 가 있었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있는데 한떼의 인부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지나가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나는 그들을 불러 요청했습니다.

“딸을 잃고서 내가 도저히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없어요. 내 딸 옆에 묻히는 게 소원입니다. 제발 나를 내 딸과 함께 눕게 해 주세요.”

인부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뭐라고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더니 곧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쟈벳의 관이 나왔습니다. 나는 미친듯이 달려들어 관뚜껑을 열어제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관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닙니까.

인부 중 하나가 내게 말했습니다.

“하늘로 올라갔어요. 당신 딸 엘리자벳이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관이 비어 있는 것입니다…..”

아하, 목사님의 말이 맞구나…우리 엘리자벳은 천사가 되었구나…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엘리자벳을 만났습니다.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내 딸 엘리자벳이 실제로 나를 찾아온 것입니다.

나는 그날도 울다가 지쳐서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울지 않으려고 해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낮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고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어디선가 바람같은 것이 다가와 내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바람은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실크같기도 하고 방금 감은 머리카락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얼른 눈을 떴어요.그때 나는 보았습니다. 내 딸 엘리자벳의 모습을. 엘리자벳 이 하얀 옷을 입고 눈부신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엘리자벳!”

나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엘리자벳을 잡으려고 손을 허우적거렸습니다. 엘리쟈벳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엄마아~”

“엘리자벳!”

그러나 엘리자벳의 모습은 눈깜짝 할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마치 허공에 떠 있던 비누 거품이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정말로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냄새가 남아 있었습니다. 엘리자벳에게 늘 나던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허둥지둥 집안을 다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쟈벳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다시 한번 그 아이가 나를 찾아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벳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내 가슴을 쿵, 하고 치는 것이었었습니다.

그래, 엘리자벳은 편안하게 하늘나라에서 잘 있구나… 이제 그만 그 아이를 내 그 가슴 속으로부터 놓아주어야겠다…….

나는 앞으로 더 이상 엘리쟈벳을 생각하며 울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엘리자벳은 일손이 딸리는 선생님들을 대신해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는 일을 늘 했습니다.

그 채점지를 나는 여지껏 가지고 있었습니다. 딸의 손이 닿았을 그 채점지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에 와서 그 채점지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꺼번에 쓸어다버리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딸이 죽은 지 15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아프고 슬픈 기억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