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씨와 함께 한 기간은 3년 남짓했습니다. 한 집에서 산 게 아니고 서로 따로 지내면서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잠깐씩 만났으므로 같이 있었던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렇게 많은 시간은 아닙니다.

어쨌든 3년이란 세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그 3년 동안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제이씨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보호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윤승준이나 쟌에게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나를 사랑해 주었지만 나는 아주 편안하지는 못했습니다.그들의 비위를 거슬릴까봐 늘 전전긍긍해야 했고 그들의 기분을 맞추느라 애를 써야했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듯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출발한 관계가 아닌, 내가 수혜받는 입장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남녀의 관계는 수직이 아닌 수평의 관계라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제이씨와 함께 있으면 마냥 포근하고 편안했습니다. 비 오는 날 튼튼한 우산 밑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 나를 보호하고 아껴주었습니다. 세상이 다 무너져내린다해도 제일 먼저 나를 구해 줄 사람일 것 같다는 튼튼한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 느낌은 참으로 달콤하고 든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실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술과 잡기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나는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이 풍진 세상을 헤쳐나오면서 터득한 이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아 네월아, 하고 먹고 마시며 허투로 보내기에는 이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어린 자식을 셋이나 거느린 어미로서 당연한 거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내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파죽을 것 같아도 일을 빠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알뜰하고 근검한 사람인지 나중에 다 밝히겠지만 나는 단 돈 1전도 함부로 허비하지 않습니다.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살았습니다.

놀기 좋아하는 남자와 생활력 강한 여자. 누가 보나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두고 이래저래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하다못해 그의 친구조차도 내가 아깝다고 혀를 찼습니다. 그중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제이씨와 헤어지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미스 양이 뭐가 아쉬워서 빈털털이인 저 남자랑 엮이는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않았으니 헤어져요. 미스 양의 인생길이 편하려면 제이씨와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아”

그리고 그 당시 나 좋다고 쫒아다니는 남자들이 꽤 많았습니다. 재력있는 남자들, 잘 생긴 남자들, 직장 좋은 남자들, 성품 좋은 남자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내게 구애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무어라고 하던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나는 제이씨라는 인간 자체를 보고 사랑한 것이지 그가 가진 배경이나 조건을 보고 사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이씨의 심성이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겉으로는 거칠고 험해도 착하고 여린 그의 내면. 그리고 나에 대한 그의 진실한 사랑. 그 남자 제이씨는 그 누가 뭐라해도 내게는 참되고 진실한 남자였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릴 때 부터 엄마의 정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나입니다. 제이씨의 어머니는 나에게 엄마의 정을 흠뻑 주었습니다. 내생(來生)에는 이분과 다시 모녀의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 할 정도로 나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아껴주었습니다.

나는 제이씨에게 내 경제력이 허락하는대로 다해 주었습니다. 매달 아파트 세를 보태주고 가게세가 모자란다면 채워주고 나중에는 차까지 사주었습니다.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았습니다.

옷가게 매니저 일은 보통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종업원들이 이런저런 일로 속을 썩힙니다. 손님을 상대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10불 내외의 옷을 사가서는 몇날 며칠 실컷 입다가 교환을 하러옵니다. 가게 규칙을 내세워 안 된다고 잘라 말해도 동양인인 나를 얕보고 마구 억지를 부립니다.

4000스퀘어 피트나 되는 매장에서 하루종일 동동거리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어떤 땐 점심도 못먹고 일하다가 퇴근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종업원이나 손님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대로 받았을 때, 손가락 한개도 움직이기 싫을 정도로 피곤 할 때, 누군가의 위로가 간절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제이씨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러면 그는 내가 도착 할 때에 딱 맞추어 저녁밥을 해놓고 기다립니다. 그의 음식솜씨는 당장 나가서 식당을 차려도 될 만큼 훌륭합니다. 밥을 먹고 소파에 앉으면 제이씨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딱딱하게 뭉쳐진 나의 어깨를 주물러줍니다. 하루종일 서서 퉁퉁 부은 다리를 가만가만 만져줍니다. 그러면 마냥 편안해진 나는 그의 품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숨 잘 자고 일어나서 한결 가뿐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이씨와 나는 어쩌면 결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제이씨가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제이씨가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지요.

언제부터인가 제이씨가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깨쪽이 자꾸 결린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나는 소화제인 ‘암포젤 엠’을 박스로 사다주었어요. 그 소화제를 복용하면 조금 괜찮아진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좀 있으면 다시 소화가 안 되고 위 근처가 뻐근하게 아프다고 했습니다.

“술을 하도 많이 마셔서 그런 것 아니예요? 지금부터라도 술을 끊어 봐요….”

나의 간곡한 권유에도 그는 술을 끊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셨습니다. 그의 소화불량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걱정이 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권유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큰 일 당하기 전에 병원에 한번 가 봐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괜찮아질 거야. 어렸을 때부터 끼니를 제때 찾아먹지 못해서 생긴 만성 소화불량이야…..”

그는 여전히 술을 마셨고 병원에는 가지않았습니다. 그렇게 몇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의 소화불량 증세는 여전했고 나중에는 암포젤 엠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침을 맞으러 다녔습니다. 왜냐면 소화불량 증세와 함께 어깨쭉지 근처가 계속 아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침을 맞아도 증세는 여전했습니다. 전혀 차도가 없었고 점점 나빠졌습니다. 갈수록 통증도 더해진다고 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건강보험이 없었어요. 이익이 거의 없는 빈 껍질인 가게였지만 그의 명의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저소득층 무료 건강보험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미국의 병원비가 얼마나 무섭게 비쌉니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돈이 무서워서 병원을 찾아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 미국이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건강보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병을 키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이씨 역시 그랬습니다. 정밀검사는 꿈도 못꾼 채 동네병원에 가서 진통제만 타다 먹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주사만 계속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이씨가 어쩌면 자기의 병을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의 병을 의사로부터 확인받는 게 무서워서 병원가는 것을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지 않았을까요.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틀 전이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의 목소리는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여…여기..병…병원인데요..아…아버지가…아버지가…...”

정해진 양의 서너배의 진통제를 복용하고도 계속 아파서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보고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제이씨가 간 곳은 저소득층들이 이용하는 한 대학병원이었습니다.

제이씨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나는 한달음에 그 대학병원으로 쫒아갔습니다. 제이씨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반가움과 함께 슬픔이, 형연할 수 없는 슬픔이 어려있었습니다.

“출근해야 할 사람이 여긴 왜 왔어?”

그는 어깨쪽 부분에 엑스레이를 찍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위 내시경도 했다고 했습니다. 조금있으니 간호원이 제이씨를 데리러 왔습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오라는 것입니다. 휠체어를 밀고 들어간 곳은 한 의사의 방이었습니다. 여러장의 엑스레이 사진이 컴퓨터에 떠 있었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었지만 나는 영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담당의사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있었습니다.

나는 의사로부터 제이씨의 몸상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 이상 길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에 출근을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내가 가게문을 열어야 했기에 조금도 늦게 출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제이씨의 아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알고 싶어요. 제게 꼭 전화를 해주세요….”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병원을 떠나왔습니다. 어떻게 운전을 해서 직장에 왔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루종일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전화통만 바라보고 있는데도 제이씨 아들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전화를 해 볼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무서워서요. 나쁜 소식을 들을까봐 무서워서 말입니다.

새벽에, 잠 한잠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새벽에 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울기 시작했습니다.

“은영아…은영아……나 위암 말기란다….”

의사가 말했다고 했습니다. 가망이 없다고. 암세포가 몸 전체에 다 퍼져버려서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이제 죽음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은영아…은영아…이제 어떡하면 좋니. 나는 곧 죽는단다….너를 두고, 천사같이 착하고 예쁜 너를 두고 내가 죽어야 한단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같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장 그의 아파트로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살 가망이 없다는 사람에게, 이제 몇달 있으면 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만,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만 얼른 쫒아가서 그의 곁에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출근을 해야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습니다.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그저 펑펑 울었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옷가게가 한 시간 일찍 문을 닫았습니다. 나는 가게문을 닫자마자 한달음에 그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며칠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의 배가 잔뜩 부어 있는 것입니다. 벌써 복수가 차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배가 당겨서 다리를 들지 못하는 제이씨를 보고 나는 가슴이 덜덜 떨려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복수가 차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징조였습니다.

“괜찮을 거예요. 힘내요. 힘내세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어깨를 주물러주고 뺨에 입맞추어 줄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의사가 진통제 처방전을 써주었다고 했습니다. 약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약국이 금방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약사들도 마음이 급했겠지요. 크리스마스 이브였으니까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거룩한 밤 고요한 밤을 맞아야 했을 테니까요.

나는 휠체어에 탄 제이씨를 뒤로 하고 바람처럼 빠르게 카운터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처방전을 내밀었습니다.

“근무시간이 끝났습니다. “

차고 냉정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한 약사가 말했습니다.

“제발……”

나는 울듯이 간곡하게 사정했습니다.

“약을 주세요. 저이가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을 거예요. 제발 약을 주세요…”

내 얼굴이 너무나 절박하고 애절해 보였는지 약사가 잠겨진 캐비넷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약을 조제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에 진 군인처럼 참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 즐겁고 들떠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제 곧 세상을 하직해야 할 남자를,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남자를 부축해 돌아오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겁니다.

왜 이렇게 내 인생은 시련과 슬픔으로 점철되기만 할까요. 가혹하고 어둡기만 할까요.

나는 제이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가 주고 싶었으니까요.

“한국에 한번 나가보고 싶어…..”

미국에 온 이래 20년 동안 나가보지 못했던 한국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직장에 2주동안 휴가를 내었습니다. 직장에서는 그렇게 길게 휴가를 내 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제이씨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급하게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제이씨와 함께 한국으로 나갔습니다. 물론 내가 경비일체를 다 대어서 간 한국이었습니다. 한국에는 제이씨의 누나가 한 사람 살고 있었습니다. 누나 가족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해주었습니다.

제이씨는 너무나 가고 싶어하던 한국이어서인지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통증은 계속 그를 괴롭혔습니다. 통증이 올 때마다 진통제를 한웅큼씩 복용했습니다.

2주 예정으로 나간 한국이었지만 제이씨가 1주일 더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제이씨를 위해 나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나는 휴가를 1 주일 더 연기하겠다고 직장에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인은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절 내가 다 맡아하던 가게였었는데 내가 없으니 죽도밥도 안 되고 엉망진창이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주인에게 잘라 말했습니다. 1 주일 연기가 안 된다면 그만두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알아보세요, 하고.

1주일 더 있고 싶다는 제이씨의 말을 거절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내가 내린 결정, 그러니까 1주일 더 기간을 연기해 제이씨의 소원을 들어준 것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다보니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놓치면 두번 다시 올 수 없는 때.

제이씨는 한국에 머무는 틈틈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첫번째 부인한테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라 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랑이라는 걸,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했습니다. 사춘기때 부터 빗나가기 시작해서 깡패짓을 하며 거리로 떠돌며 살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은영아. 내가 너를 진작에 못만난 게 한이다…”

제이씨는 몇번이나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이씨는 내 손을 잡고 울면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내가 다시 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너를 아주 행복하게 해 줄 텐데.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성실하고 착하게 너만 바라보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돌아온 후부터 제이씨에 대한 나의 간병이 시작되었습니다.

제이씨를 데리고 용하다는 중국 한의원은 다 찾아갔습니다. 병원에서는 포기하라고 했지만 혹시라도,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 한의들도 제이씨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보고 진맥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회생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통증이 덜하도록 침을 놓아주는 방법밖에 없겠다고 했습니다. 독한 진통제로 인해 기운이 빠질대로 다 빠졌으니 원기를 보충하게끔 보약이나 먹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암에 좋다는 것은 다 찾아다 제이씨에게 먹였습니다. 다리가 뭉쳐서 잘 걷지를 못하길래 다리 맛사지 기계도 사서 들여놓아 주었습니다.

그때를 다시 회상해 보면 나도 참 대단한 여자다 싶습니다. 일인 삼역, 사역을 했으니까요.

직장일은 직장일대로 하고 제이씨에 대한 간병은 간병대로 하면서 아이들도 돌봐야 했습니다. 더구나 그때까지도 아이들은 제이씨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앞편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제이씨와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섣불리 아이들에게 말했다가 나중에 잘 안 되면 무슨 망신입니까. 엄마로서 체면이 서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절 비밀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세시간밖에 자지못하며 쫒아다녔지만 그때는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후회나 회한이 남지 않도록 제이씨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시 나의 몸무게는 90파운드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제이씨가 점점 더 수척해지고 통증때문에 잠을 못이루는 것만 걱정이 될 뿐이었습니다. 진통제가 더이상 듣지 않는 것입니다. 몸무게는 자꾸 빠지고 올챙이처럼 배만 잔뜩 불러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퇴근해 제이씨집에 가니 그가 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하는 제이씨를 보고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병원비 때문에 우리 집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제이씨의 고통을 멈추게 해주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는 급하게 911로 전화했습니다.

“지금 사람이 숨을 못쉬고 있습니다. 심장마비인 것 같아요. 빨리 좀 와주세요….”

그렇게 거짓말을 시켜야 빨리 구급대가 올 것 같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5분도 되지 않아 응급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도착했습니다. 응급대원들은 제이씨의 몸 상태를 보더니 산소호흡기를 부착했습니다. 산소호흡기! 나는 겁이 더럭 났습니다. 거짓말로 숨을 못쉰다고 했는데 진짜로 제이씨가 숨을 쉬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극심한 통증때문에 잠시 기절한 것이었습니다.

“오오, 하느님!”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데려갈 때 데려가더라도 제발, 제발 제이씨를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병원에 도착한 후 한 응급대원이 물었습니다. 아까 너 무릎 꿇고 기도할 때 무슨 랭귀지로 한 거니?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로 아닌 말로 내가 기도를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이 급박하니까, 제이씨의 통증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워낙 절실하니까 나도 모르게 방언이 저절로 터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이씨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검사를 받았던 그 대학병원이었습니다. 그는 한시간 마다 한번씩 통증없애는 주사를 맞았습니다.

통증없는 그의 얼굴을 보는 내 마음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일단 그의 얼굴이 편안했으니까요.

그러나 거기에도 오래 머물수가 없었습니다.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환자, 그러니까 회생(回生)의 가망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는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제이씨는 요양원으로 가든지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입장에 처했습니다. 집으로 가본들 누가 그를 간병합니까. 어머니는 막내아들 집에서 살림을 도와주며 얹혀 사는 입장이라 제이씨를 돌봐줄 수가 없었습니다. 불쌍한 제이씨는 요양원밖에 갈 데가 없었습니다.

“자기, 이제 요양원으로 가야 해요. 괜찮지요?”

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담담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이 딱하고 가엾은 남자야. 당신은 병원에서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그런데 갈 데가 아무 데도 없어. …..

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안 괜찮은들 어떡하겠어요. 이 넓은 세상에 제이씨를 받아줄 곳이란 그곳밖에 없는데.

제이씨와 나는 병원에서 제공해 준 엠블런스를 타고 요양원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정부에서 저소득층이나 무숙자를 위해 운영하는 곳이라 더럽고 냄새나고 시설이 조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이씨는 방 한곳을 배정받았습니다. 다행히 옆 침대는 비어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어나갔는지 아무도 없었어요. 독방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어요. 그 곳 직원의 도움을 받아 제이씨를 침대에 눕혔습니다.

제이씨는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종이장처럼, 깃털처럼 가벼웠습니다.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뼈와 가죽만 남은 것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제이씨에게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죽을 좀 끓여오겠습니다. 배고프더라도 조금만 참으세요”

제이씨는 병원에 있는 동안 거의 굶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밥이 입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속에서 받지를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길로 전자제품 파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앞으로 얼마동안 요양원에 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제이씨가 심심할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VCR이 붙은 TV를 한대 샀습니다. 나는 물건 하나를 사는데도 섣불리 대충대충 사는 법이 없는 사람입니다. 구석구석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다른 데랑 가격 비교를 충분히 한 후 삽니다. 그러나 마음이 급했습니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길로 바로 한국마켓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연속극, 오락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등 손에 집히는대로 테이프를 수십개 빌렸습니다. 그리고 한국 방송소리가 다른 환자들에게 들리면 폐를 끼치게 되는 거니까 코스코에 가서 헤드폰을 샀습니다. 그리고 거기 간김에 두유랑 유동식 음식을 잔뜩 샀어요.,

그런 다음 바람같이 차를 몰아 집에 와서 죽을 끊였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몰아치다보니 새벽이 되었습니다.

요양원으로 가져갈 물건들을 차에 다 싣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안개가 잔뜩 끼었습니다. 요양원까지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때문에 거의 두시간이나 넘게 걸려서야 도착했습니다.

사고날까봐 하도 긴장하고 조바심을 내 운전을 해서인지 요양원에 도착하니까 전신의 맥이 다 풀렸습니다. 운전대를 힘주어 잡고 있던 팔과 어깨쭉지와 고개가 말도 못하게 아프고 뻐근했습니다.

그냥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으면 딱 좋겠다 싶을 정도로 지치고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제이씨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고 피곤했습니다.

나는 휘청거리며 차에서 내렸습니다. 이고 지고 들고 비틀거리며 요양원으로 들어갔더니 제이씨는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오는 기척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이씨가 나를 보더니 마구 화를 내는 것입니다.

처음 온 요양원, 동양인이라고는 자기 혼자밖에 없는 낯선 곳. 죽 끓여서 금방 돌아오겠다는 내가 오지않자 마치 외딴 섬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처럼 외롭고 무서웠다는 것입니다.

화를 내다가 그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으허헝,하고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나는 그를 끌어안았습니다. 나보다 다섯살이나 많은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우는 것을 보는 일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었습니다.

“미안해. 화내서 미안해…..”

한참 울다가 제이씨가 내게 사과했습니다.

“널 보니 너무 기쁘고 반가와서 나도 모르게 화가 났어….”

그의 몸은 날로 꺼져갔습니다. 마치 기름이 다한 등잔불 같았습니다. 먹지도 못하고 진통제 기운에 취해 하루종일 잠만 잤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서는 기척이 들리면 눈을 떴습니다. 내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습니다. 가끔 정신이 들땐 나를 자기 가까이에 하게 해서 내 얼굴을 쓰다듬고 만졌습니다. 그리고 기력 없어 모기만한 소리로 내게 속삭였습니다.

“사랑해, 은영아. 너를 사랑해. 내 목숨보다도 더 너를 사랑해…..”

그렇게 몇달이 지나갔습니다. 제이씨가 죽음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는 동안 내 몸도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습니다. 제이씨가 요양원에 있는 동안 나는 하루에 세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먹을 것을 다 챙겨놓고 직장에 갔다가 퇴근하면 바로 요양원으로 달려갑니다. 제이씨가 필요한 게 있으면 사러 다녀야했고 일주일에 몇번씩 제이씨 어머니를 픽업해 모시고 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 요양원에는 외부인이 늦게까지 머물 수 없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호원들 및 관계자들이 나만은 허용했습니다. 하루도 빼지않고 제이씨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제지를 받지않고 아무때나 요양원에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제이씨가 세상을 떠나던 그날도 나는 새벽 두시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제이씨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찬송가 테잎을 바꾸어 틀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집으로 잠깐 돌아왔습니다. 제이씨에게 먹일 죽을 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가 잠깐 잠이 들었나봅니다.

나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눈부시게 청명하고 깨끗한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이씨의 이름 석자가 갑자기 하늘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감탄하며 하늘에 새겨진 그의 이름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전화벨 소리에 퍼뜩 눈을 떴습니다. 얼른 시계를 보니 그렇게 잠든 시간이 2,3분 정도나 되었을까요. 그 2, 3분동안 선명한 꿈을 꾼 것이었습니다.

전화벨 소리는 요란하게 우리집의 적막을 흔들었습니다. 새벽의 전화벨 소리. 나는 짐작했습니다. 제이씨의 신상에 관한 전화라는 것을.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이씨가 운명했습니다….”

갑자기 나를 지탱하고 있던 튼튼한 끈 하나가 툭 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울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나는 제이씨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른 새벽, 그의 어머니도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금방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

“그래. 은영아. 웬일이니…..”

제이씨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짐작을 했겠지요. 이 새벽에 왜 내가 전화를 했는지를요.

“당신 아들이, 당신의 불쌍한 아들이 지금 마악 세상을 떠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