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가 눈을 뜬 것은 바람소리때문이었다.

위이이잉하는 소리, 앞뜰 뒷뜰의 나뭇가지와 화초의 잎사귀를 흔들며 세차게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러나 이불속에서 바깥으로 귀를 귀울이던 금아는 금방 알아차렸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헤어 드라이기 돌아가는 소리라는 것을.

금아는 손을 뻗어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휴대 전화기의 액정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여덟시였다.

헤어드라이기 돌아가는 소리는 금아의 방 바로 옆에 붙은 목욕탕에서 나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나는 소리는 헤어 드라이기 돌아가는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쏴아아, 하고 수도꼭지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 타일 카운터에 금속성 물체가

부딪치는 소리, 뭔가 둔탁한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그러나 그 많은 소리중에서 가장 높고 쨍쨍한 소리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낮게 가라 앉은 안개처럼 몸과 머리를 스물거리며 뒤덮고 있던 금아의 잠을 결정적으로 깨운 것은 날카로운 쇳소리가 섞인 엄마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제발 빨리빨리 좀 하라니까. 이러다간 늦겠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 늦으면 어쩌려고 그래……”

뭐라고 웅얼거리며 대꾸하는 은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은아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고 가늘고 힘이 없어서 금아가 알아차리기엔 불문명했다. 그러나 금아는 은아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여자인데 조금 늦으면 어때, 엄마.…..

여자는 늦어도 되고, 여자는 밥값을 내지 않아도 되고, 여자는 힘든 일을 하면 안 되고, 여자는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고. 여자는 여자는 여자는…….

은아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특히 예쁜 여자라는 것을 큰 무기와 방패막이로 삼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니까.

“어쨌든 오늘은 첫 만남이지 않니….”

엄마가 은아를 타이르는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시간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칠칠맞은 여자라고 퇴짜맞으면 어떡하니?”

금아는 두팔을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켜면서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처음에는 눈부신 하얀색이었을 누런 천장이 금아의 눈으로 하나 가득 들어 온다.

담배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지금 방문을 밀고 나갔다간 엄마의 눈에 뜨일 가능성이 십중팔구다. 그리고 구정물같은 잔소리를 뒤집어 쓸 가능성은 십중 십이다. 아무리 담배가 피우고 싶어도 엄마가 나간 다음이라야 한다.

은아는 오늘 여기서 서너시간 떨어진 도시로 남자를 만나러 간다. 선이라는 걸 보러 가는 것이다.

“엄마. 아무래도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 머리감고 다시 해야겠어…..”

조금 높아진 은아의 목소리가 누워 있는 금아의 귀로 나비처럼 살풋이 날아와 앉는다. 예쁜 아이들은 목소리조차도 예쁘다. 목소리에 투정이 섞였어도 그저 예쁘다.

“그 머리가 어때서? 내가 보기엔 잘 된 것 같은데?”

“아니, 여기 정수리 부분이 너무 부우~하쟎아. 미스 코리아들 머리 모양 같지 않아?”

“글쎄, 좀 그렇게 보이기는 한데 지금 다시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다시 말리기엔 시간이 없어. 적당히하고 헤어 스프레이로 숨을 좀 죽이려무나”

숨을 죽이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금아는 쿡쿡 소리죽여 웃는다. 배추도 아니고 뭔 숨을 죽여?

엄마가 다시 재촉한다.

“어쨌든 나가자.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좀 남으면 근처 미장원에가서 다시 손을 봐 달라고 하면 되쟎아”

“그럴까?그게 낫겠지?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완벽하게 손질한다 해도 서너시간씩이나 차 시트에 기대고 가면 모양이 다 흐트러질 텐데…”

그래, 그게 좋은 생각이네, 하고 금아도 이불속에서 머리를 끄덕인다. 서너시간이나 차속에서 부대낄 은아의 불쌍한 머리.

“그나저나 엄마, 이 옷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 나, 다른 옷 입으면 안 될까?”

은아가 말하는 이 옷이란 까만 투피스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크고 작은 진주가 별처럼 흩뿌려져 있던. 옷이란 옷은 다 꺼내놓고 한 시간이나 넘게 패션쇼를 하다가 겨우 낙찰을 본 옷일 것이다.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보다가 화장실을 가면서 흘낏 은아방을 기웃거리던 금아가 환호성을 지르듯 말했었다.

“야아, 근사한데? 멋있다아!”

그 말을 해놓고 금아는 아차, 했다. 왜냐면 엄마의 매서운 눈길이 얼굴에 와 꽂히는 걸 금방 느꼈으므로. 네 까짓 게 뭘 안다고 참견이니, 참견은? 나 참 같잖아서,하는 뜻이 다분히 담긴. 금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다 경멸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는 엄마. 그 표독하고 냉정한 눈길…….

그러나 알게 뭐야, 하고 금아는 또 한 마디 더 보탰었다.

“약간 근엄해 보이긴 하네. 수녀님같은 분위기가 나서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예뻐. 하긴 우리 은아가 입어서 안 어울리는 옷이 있어야지 말이야…..”

엄마가 뭐라고 한마디 내쏘려고 입을 달싹 거리는 것과 동시에 금아는 총알처럼 그 자릴 떴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 와 스마트 폰으로 영화 한편을 보고 잠이 들었었다. 그게 엊저녁 일이다.

“그 옷이 제일 얌전해 보이고 단정해 보여. 그냥 그걸 입으라니까 ”

“글쎄, 그러긴 한데 너무 노티가 난단 말이야. 잡 인터뷰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발랄하고 귀여운 느낌의 옷이 좋을 것 같은데…..”

은아가 앙탈을 한다. 그러나 금아는 알았다. 은아가 뭐라고 반대의 의견을 표출하든지간에 엄마의 뜻대로 되고 말리라는 것을. 그랬다. 엄마의 명을 어길 수는 없다. 이 집에서 엄마, 그녀의 말은 곧 법이요,진리니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몇 마디 더 무어라고 항의를 하던 은아는 체념을 했는지 곧 조용해진다.

금아가 예견했던대로 은아는 엄마가 권하고 원했던 그 까만색 투피스를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은아는 엄마가 원하는 모양으로 화장을 했을 것이고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헤어드라이기로 고정을 했을 것이다.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엄마가 원하는대로.

“자, 얼른 나가자. 얼른….”

“알았어, 엄마. 잠깐만. 나 소변 한 번만 더 보고….”

“그래라. 운전하고 가는 중간에 오줌마려우면 곤란하니까 지금 아예 다 눠 버려”

지금 결혼식을 마악 올려도 얼마든지 괜찮을 정성들인 화장에, 미스코리아같이 부한 머리에, 몸에 딱 붙는 투피스를 입고 서너시간이나 차에 흔들려야 할 은아가 가엾다는 생각을 하면서 금아는 이불속에서 다리를 쭉 뻗는다.

어쨌든 잘 하고 와….

사각의 링으로 권투선수를 밀어넣는 로드 매니저의 심정으로, 적지에 군사들을 투입하는 대장의 심정으로 금아는 중얼거린다.

최선을 다해서 잘 하고 오렴. 잘 성공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렴. 의사사위 맞아들이는 게 지상최대의 과제인 엄마를 좀 기쁘게 해 주란 말이야….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안은 곧 정적으로 빠져든다. 금아는 몸을 일으킨다. 일단 오줌부터 누어야겠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비워내지 못한 방광이 터질 듯 팽창해 있다. 엄마와 은아가 나갔기에 망정이지 까닥했으면 이불에다 오줌을 갈길 뻔하지 않았나 말이다.

“이 집은 창문도 많고  다 좋은데 변소가 하나 뿐이야. 그게 지랄이란 말이야”

금아는 지랄이란 말에 힘을 주면서 킬킬 웃는다. 엄마가 들었으면 반드시 또 힐난을 받았을 거다.

“너는 말 좀 교양있게 할 수 없니? 그리고 변소가 뭐니, 변소가?

똥오줌 누는 장소니까 변소지…우리가 언제적부터 화장실이란 고상한 용어를 쓰며 살았다고. 금아 역시 지지 않고 한마디 쏘아 부쳤을 거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엄마와 금아의 사이가 고양이와 쥐처럼 서로 으르렁거리게 된 것은.

화장실은 폭풍이 지나 간 자리처럼 정신없이 어질러지고 늘어져있었다.굴러다니는 립스틱과 머리빗과 헤어드라이기와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쓰였을 실핀들과 붉은 립스틱 자국이 여기저기 묻은 휴지들과 화운데이션이 묻은 수건과 머리카락 뭉치들이 제멋대로 바닥과 카운터 위에 내팽개쳐져 있다.

금아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그것들을 발로 쓱쓱 밀면서 변기쪽으로 간다. 변기안을 들여다보던 금아는 흠칫, 그 자리에서 서고 만다. 맙소사! 얼마나 급했으면 오줌 누고 물도 내리지 않았을까. 은아가 누었을 게 분명한 오줌이 그대로 변기안에 고여 있는 것이다.

누런 오줌이 고인 변기물 위에 자신의 누런 오줌을 보태기 위해 털부덕 소리를 내면서 금아는 변기에 앉는다. 그리고 쏴아아, 하고 밤새 고인 오줌을 변기안에다 쏟아낸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손을 씻기 위해 씽크대의 물을 틀던 금아는 어쩔수 없이 거울속의 자신의 얼굴과 마주했다. 백열등 다섯개가 켜진 전등불밑에서 무방비하게 드러난 자신의 모습. 어제도 보았고 그제도 보았고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보던 그 모습. 볼 때마다 과연 저 여자가 오금아란 여자가 맞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도 끔찍하게 변해버린 모습.

거울에 비친 여자는 마치 희극 만화 속의 사람같았다. 인물의 성격을 최대한으로 극대화해 표현해 놓은 만화. 현실속의 사람과는 백팔십도 과장해 그려놓은 만화.

어젯밤 샤워하고 제대로 말리지도 않고 잠자리에 든 머리는 하늘로, 동서남북으로 사방으로 제멋대로 뻗치고 철초망처럼 뒤엉켜있었다. 그리고 매일 피워댄 독한 담배로 찌들은 누런 얼굴이 그 밑에 있다. 눈빛은 흐리멍텅했고 다듬지 않은 눈썹은 잡초처럼 마구 자라나 눈두덩을 덮고 있었다.

로션이나 크림이란 걸 발라본 게 언제였을까. 원래 좋지 않던 피부가 더욱 황폐화되어 있다. 삼시 세때 맞추지 않고 들쑥날쑥 기분내키는대로 먹어대서인지 생전 보이지 않던 뾰루지까지 턱 밑에 서너개 올라와 있다. 볼살은 늘어져서 마치 불독같고 평생 웃음을 머금지 않았을 것 같은 입매는 양쪽으로 축 쳐져서 팔자(八字)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마에는 언제부터 잡히기 시작했는지 주름 두줄이 선명하게 선을 이루고 있다.

이제 겨우 서른 다섯살인 금아의 얼굴은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준다해도 열살은 더 들어보인다. 그러나 피부의 최대적인 담배를 끊고 크림을 바르고 눈썹을 정리하고 다시 관리를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이러다 마는 거지 뭐. 이렇게 되는대로 살다가 죽는 거지 뭐………

지금 은행에 저금되어 있는 이십 사만불. 그 돈을 다 쓰고 나면 금아는 죽으러 갈 생각을 하고 있다.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다. 아버지. 불쌍한 아버지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노력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아니드는 것은 아니나. 그 생각은 그저 스쳐가는 순간일 뿐.

금아는 손을 다 씻고 다시한번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우울하게 바라본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슬프다. 아버지. 불쌍한 나의 아버지.

오늘 아버지는 새벽 4시에 집을 나섰을 것이다.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인 낚시를 하기 위해 친구들과 바닷가로 원정낚시를 간 것이다.

금아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침대머리 맡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둔 담배갑을 집어 든다. 차고로 나갈까, 뒷뜰로 나갈까 하다가 금아는 그냥 침대에 주저 앉는다. 한대 정도 방안에서 피웠다고 냄새가 배이지는 않을 것이다. 얼른 피우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되지 뭐.

침대 맞은 편에 화장대가 있다. 아버지가 이사가는 친구집에서 얻어 온 오래된 화장대. 그 화장대 거울에 침대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금아의 모습이 비친다. 금아는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아까 화장실에서처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래 위 회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친 한 뚱뚱한 여자가 담배를 물고 앉아 있다. 하도 오래 입어서 고무줄이 늘어나고 보풀이 피기 시작한 트레이닝 복 안에는 삼겹사겹으로 늘어진 금아의 몸뚱이가 있다. 출렁거리는 살이 있다. 손으로 잡으면 한웅쿰 가득 넘쳐나는 살.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코끼리처럼 육중해지기 시작한 게. 눈사람처럼 뚱뚱해지기 시작한 게.

살이 붙지 않는 게 이상한 거지 뭐. 시도때도 없이 먹어대는데. 닥치는대로 먹어대는데…….

예전에 시어머니는 그랬다. 얘얘, 잘 먹어서 좋다. 여자는 잘 먹어야 해. 그래야 힘을 쓰지.

시어머니의 말대로 금아는 잘 먹었다. 원래 날씬한 편은 아니었지만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통통했었다. 적어도 뚱뚱은 아니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뚱뚱하다. 예전에 입던 옷들이 단 한벌도 맞지 않을 정도로. 한국마켓에라도 가면 여자들이 뒤돌아보고 수근거릴 정도로 뚱뚱하다.

살 찌우고 잘 키웠다 잡아먹을 돼지처럼 늘 많이 먹을 것을 종용하던 시어머니는 나중에 금아가 살이 찌고나서 말했다. 넌 못생기고 뚱뚱해. 그래서 우리집과는 도저히 어울리지가 않아.

그래서 금아를 내보내고 날씬한 여자를 새로 들였단다. 금아가 있을 자리에 군살 한 점 없이 잘 빠진 여자가, 금아보다 여덟살이나 어린 여자가 들어와 있단다.

잘 있지요? 잘 자지요? 잘 먹지요?

이혼한 후 거의 1년 가까이 전 남편 토니는 금아에게 전화했었다. 매일이다시피.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해요. 당신과 헤어진 것은 결코 내 뜻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요.

당신과 다시 살게 되길 매일 하나님께 기도 해요. 오, 당신 알아요?나 요즘 매일 새벽기도 나가요. 몸이 죽도록 피곤해서 일어나지 않음 모를까 거의 매일 나가요.나가서 하나님께 빌어요. 우리 엄마 마음을 변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금아랑 다시 합치게 해주세요.

새벽기도의 효력은 없었다. 금아와 토니는 합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몇년. 토니가 한국에서 유학온 여자랑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문을 들었다.그 소문은 친구미단이로부터 먼저 듣고 그리고 엄마의 입을 통해서 들었다. 전남편 토니의 입으로서는 단 한 마디도 전해듣지 못했다.

“그것 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 일찌감치 내 단념하라고 그랬지?물려서 내친 음식, 뭐가 좋다고 다시 찾을까.넌 생긴 것도 그렇지만 왜 그리 미련하고 어리석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담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얼굴과 몸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어쨌든 행복했던 기억이 남았으니까 그걸로 족한 것이다, 하고 금아는 생각했다. 나이들어 되새김질 할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이 남았으니까. 세상을 하직할 때 눈 앞에 떠올리고 간직할 사람이 있으니까.

금아의 일생을 통틀어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이란 토니와 같이 살던 4년이었다. 서로 위해주고 챙겨주고 사랑하며 4년을 살았다.토니는 틈만 있으면 금아에게

말하길 잊지 않았다. 당신은 예뻐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야.

그 말은 늘 금아를 기쁘게 했다. 설사 그말에 거짓말이나 아부가 섞였다하더라도, 아니다. 토니의 말엔 1%의 거짓도 없다는 걸 금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자랑 데이트 경험이 전혀 없는. 일생을 통털어 금아가 첫여자인 토니에게 금아는 그 누구보다 예쁘고 귀한 여자였을 테니까.

금아는 어릴때 부터 지금까지 타인으로부터 예쁘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못했다. 특히 엄마는 일절 금아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지겹도록 들은 말이 있다.

“넌 왜 그리 네 애비랑 하는 짓이 똑같니?”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 지금도 가끔씩 듣는 말.. 왜 아버지랑 하는 짓도 빈충맞게 똑같고 생긴 것도 똑같냐는 말이다.

키가 크고 목이 길고 얼굴형이 갸름하고 피부가 하얗고 날씬한 엄마와는 달리 아버지는 키가 작다. 그리고 목이 짧다. 배가 나왔고 얼굴형은 넙대대하고 피부는 거칠고 붉다. 불행하게도 금아는 아버지랑 판박이로 똑같이 생겼다. 뻣뻣하기가 철사줄같은 머리카락 까지도.

“아무리 이쁜 짓을 해도 미워. 도대체가 정이 안 가…..”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길래 밉다는 엄마의 말이다. 그러면 엄마는 왜 미운 남자랑 결혼을 했을까. 그리고 미운 남자와 똑같이 생긴 미운 딸을 낳았을까.

반면 은아는 엄마랑 쏙 닮았다. 그래서 대학시절 미스 아시아 대회에서 1등 한 것을 비롯하여 각종 크고 작은 미인대회에서도 수 없이 입상했다. 거실의 장식장 안에 놓인 여러 트로피가 은아가 얼마나 아름답고 예쁜 여자인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그걸 프리미엄으로 삼아 은아에게 변호사나 의사 신랑감 만들어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 잘생기고 명석하고 돈 많고 집안 좋은 남자랑 은아를 엮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엄마의 인생 최대의 목표는 은아에게 자신이 내건 조건과 입맞에 맞는 남자를 찾아주는 일 인 것 같다.

엄마는 계주라서 아는 사람이 많다. 온갖 인맥을 동원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이 동네는 좁아터져서 도무지 안 되겠어. 더 큰 도시로 나가야 되겠다………..”

인근을 이 잡듯이 훑어 남자를 조달하다가 성사가 안 되고 세월만 가자 마음이 조급해진 엄마다. 은아는 벌써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엄마는 과감하게 집에서 서너시간 떨어진 큰 도시로 진출했다.

그러나 아무리 엄마가 마당발이라하나 큰 도시에 연줄이 있을 리 없다. 결혼상담소를 통할밖에. 그러나 여기서도 큰 장애물이 떡, 버티고 있었다.

“나참, 별일도 다 있다. 대도시 남자들은 다 그런다니? 신부감만 빼어나게 예쁘고 잘 났으면 되었지 신부 집안을, 신부 부모들의 학력과 재력과 직업까지 볼 건 또 뭐라니?”

결혼상담소가 주선한 신랑감과 몇번 선을 봤으나 은아가 위의 조건에 충족이 안 되었기에 성사가 안 되었다. 그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낮에는 덴탈랩에서 물건 배달하고 밤에는 건물 수위를 서는 아버지때문이라고. 정말이지 내세울 거라고는 쥐뿔도 없는 아버지 때문이라고

“평생을 저 모양 저 꼴로 빌빌거려 내 속을 끓이더니 이제는 자식들 혼삿길까지 막아! 내가 지겨워서 못살아. 정말이지 네 아버지 땜에 못산다니까!”

은아가 선 본 남자로부터 퇴짜를 맞고 들어올 때마다 엄마의 히스테리는 극에 달했다.

“젊은 놈들이 약삭빨라가지고. 자기들끼리 마음 맞추어 살 생각을 해야지 신부에게 얹혀오는 재산부터 보겠다니 이게 말이 돼?! 하긴 나라도 안 하겠다. 요즘 젊은 남자아이들을 탓할 게 못돼. 부모재산이라곤 꼴랑 집 한채가 다인 여자, 그것도 은행빚이 반인 집, 나라도 안 한다니까! 아이고, 불쌍한 우리 은아. 아버지 잘못둔 탓에 시집도 제대로 못 가게 생겼네”

엄마의 독기서린 화살은 아버지를 향해 마구 날라가다가 종내에 가서는 금아에게로 넘어 온다.

”억지로라도 좀 참고 살지 뭐 중뿔났다고 이혼을 해, 하길! 수위 아버지에다 이혼한 언니에다 참 집안 꼴 좋다!”

그렇다. 금아는 이혼녀다. 엄마가 늘 하는 말을 빌리면 지나가는 개도 안 돌아볼 나이 많고 못생긴 이혼녀다. 십만불짜리 수표를 붙혀 길거리에 내놓으면 수표만 떼가고 거들떠도 안 볼 이혼녀. 몸무게가 160파운드에 육박하는 뚱뚱하고 못생기고 나이많은 이혼녀. 가진 것이라곤 위자료로 받은 돈 50만불 중 쓰고 남은 24만불이 전부인 이혼녀.금아는 이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