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참 별일을 다 겪겠네, 하고 기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이지 재수가 없으려니까 아침부터 별 인간같지 않은 여자도 만나게 되는 군.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푸념이 저절로 나왔다.

지난 십여년동안 수백채의 집을 방문해 온갖 일들을 다 겪고 벼라별 사람들을 다 만났지만 이런 거지 깡깽이같은 여자는 처음 보는 것이다. 올 1월 1일부터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이럴 때, 이렇게 기분 별로일 때 담배라도 한대 피우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기훈은 올해들어 처음으로 담배를 끊은 것을 후회했다.

“제너럴 콘츄렉터는 다 도둑놈이라는데 혹시 그 쪽도 그런 사람아니예요?”

처음에 여자가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을 때 기훈은 농담인 줄알았다. 사람들이 흔히들 제너럴 콘츄렉터를 그렇게 칭하기는 하지만 얼굴에 대놓고 그렇게 단도직업적으로 말한 사람은 여지껏 단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제가 도둑놈같이 생겼습니까? 제 잘 생긴 얼굴 어디에 그런 느낌이 묻어 있나요? ”

농담에는 농담으로 응수해야 한다, 하고 기훈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대답을 했다. 속으로는 뭐 이런 게 다 있어?하고 열이 파악 솟았지만 웃음 머금은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한 마디 더 농담으로 응수했던 것이다.

“제가 도둑놈이면 문 열어달라고 벨을 눌렀겠어요? 벌써 담을 타고 넘어왔겠지”

여자는 의심이 가득한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라이센스 넘버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시에다 조회를 해보겠다며. 그때서야 기훈은 여자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여기다 적어 주세요. 라이센스 넘버!”

여자가 종이와 볼펜을 내밀면서 라이센스 넘버라는 대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기훈은 잠시 망설였다. 기훈이 망설이는 걸 눈치챘는지 여자는 얼른 달라니까요, 하고 다시 한번 재촉했다. 기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그게 그렇게 중요 해요? ”

헛웃음이 나왔다. 어젯밤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라이센스도 없이 이런 일을 할까 봐요, 하고 한마디 더하려다가 기훈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관두자. 견적이고 뭐고 그냥 돌아가버리라고 기훈은 작정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깐깐하게 나가는 사람은 끝까지 골치 아프게 군다. 일을 진행하는 중에도, 일을 완성한 뒤에도 온갖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건다. 그리고 손톱만한 꼬투리라도 잡아서 그걸 빌미로 공사대금을 다 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여자와는 일찌감치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게 수다. 예전에는 싸우고 구슬리고 고소한다고 협박해서 오기로라도 돈을 받아내고야 말았는데 이제는 지친다. 이제는 이런 깐깐한 사람대하는 게 정말로 지겹다.

“그럼요. 중요하죠. 아저씨는 택시 탔을 때 운전기사가 운전 면허증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 안 해요?”

여자가 기훈을 다시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운전 면허증이 있든 없든 목적지까지 무사하게 데려다만 주면 되지 않아요?”

“가다가 만약 사고라도 나면요?”

“아줌마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까지 걱정하는 사람이요? 쓸데 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가서 머리나 좀 빗어요.”

여자의 뒷통수를 탁 쳐주는 심산으로 기훈은 더 덧부쳤다.

“ 아줌마, 여자 맞아요? 어떻게 여자가 그렇게 더럽게 하고 있습니까?”

아침부터 기분을 잡쳤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어떻게 해서든지 내 상한 기분만큼 상대도 기분을 상하게 해놓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머리 빗는김에 입술가에 묻은 침 자국도 좀 닦으시지요. 내가 보다보다 아줌마같이 지저분한 여자는 첨 봤네요”

내친김이다, 하고 기훈은 생각했다. 더 심한 말은 없을까?

그런데 참 희한하다. 기훈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심한 말을 했는데도 여자는 별로 무안해 하지도 않는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내리는 시늉을 하더니 기훈에게 말했다.

“ 저 머리 빗고 올 테니 여기다 라이센스 넘버 적어 놔요…”

여자가 종이와 볼펜을 기훈의 손에 쥐어주고 안쪽으로 사라졌다. 여자가 사라지고 난 뒤 기훈은 팔짱을 낀 채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했다. 일단 주자. 못 줄 것도 없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일감은 살펴보고 가자.

기훈은 자신의 콘츄렉터 라이센스 넘버를 종이에다 적었다.

여자가 다시 느릿느릿 코끼리처럼 육중하게 돌아왔다. 여자는 머리를 묶고 있었다. 그러나 빗질을 않고 대충 묶었는지 여전히 잔머리가 삐죽삐죽 비져나와 하늘로 치솟아 있었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여자 얼굴의 반을 덮고 있었다.

기훈은 여자를 애써 외면한 채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이제 됐습니까?”

여자가 종이를 들여다 보더니 예, 하고 대답했다. 여자가 대답하는 동시에 나 참 더러워서, 하고 기훈도 한마디 내뱉았다. 여자가 들릴 만한 목소리로. 그러나 여자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그래서 세탁실이 어디에 있어요?”

여자가 고개짓을 하며 자기를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기훈은 신고 있던 두툼한 농구화를 벗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비닐을 꺼내 발에다 신고 여자를 따라 간다.

컴컴하고 좁은 복도를 지나 여자는 한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벽을 쓰다듬어 스윗치를 올렸다. 불빛에 드러난 마루바닥. 나무가 물에 불어서 마구 위로 들떠 있다. 한 쪽에는 푸르고 검은 색을 띈 곰팡이까지 슬기 시작하고 있다.

“그라지 세일에서 100불 주고 줏어온 세탁기가 고장난 것이었나봐요. 물이 새서 마룻바닥이 다 젖었지 뭐예요”

조금전의 도전적인 모습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여자는 유순한 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는 종같은 표정으로 기훈을 쳐다보았다.

흠, 하는 소리를 내면서 기훈은 세탁실로 들어갔다. 세탁실은 별로 넓지는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젖어서 축축하게 썩기 시작하는 마룻바닥을 다 뜯어내고 물기 한점 없이 말리고 방수처리를 하고 다시 새 마루를 깔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었다.

마루 상태를 대충 설명을 하면서 비용이 얼마나 들지, 그리고 공사 기간이 얼마나 소요될 지 견적을 내 달라는 한 중년 부인의 전화를 받은 게 일주일 전이다.

요즘은 꽤 바쁘다. 일년중 가장 바쁜 계절인 봄이기에 그렇다.

겨우내 덮어두고 묵혀두었던 집안과 바깥을 새로 손질하고 단장하려는 손님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시간을 맞추어봐도 오늘 아침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으로 약속을 정하고 이 집에 왔던 터다.

“별로 크지는 않아요. 어른 두사람이 들어서면 꽉 찰 정도의 넓이예요”

세탁실의 크기가 어느 정도되냐는 기훈의 물음에 돌아온 중년부인의 대답이었다.

그동안 기훈에게는 공사가 크고 작고는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스윗치 하나 가는 작은 일도 성실하게 임했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기훈은 요즘 무척 바쁘다. 웬만한 일 같으면 혼자 할 수 있겠지만 조금 큰 공사라면 일꾼을 고용해야 한다. 호세. 멕시코인인 호세를 일당으로 지불하고 써야 한다. 그런데 호세가 틈이 있는지 없는지 기훈도 확실하지가 않다. 얼마전 호세의 아내가 여섯번 째 아이를 출산했다고 했다. 그래서 당분간 아내의 산구완을 한다고 하던데.

그래서 물어본 건데 부인은 정확하게 대답을 못한다. 집이 작아서 세탁실도 넓지는 않아요, 하는 말만 되뇌일 뿐.

일단은 혼자 와서 현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온 집이다. 그런데 벨을 몇번이나 눌러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젯 저녁 분명히 그 중년부인과 아침에 방문하겠노라고 재확인까지 했는데도.

집에 아무도 없나. 현관문에 귀를 귀울여 보아도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헛탕쳤군, 썩 좋지 않은 기분으로 그냥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리는 찰나, 안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나타낸 여자.

히끗히끗 세기 시작한 머리카락를 마구 산발한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다. 느려터진 몸짓으로,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하품을 입이 찢어지게하며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보기만해도 쿰쿰한 마늘 냄새와 시큼한 김치냄새와 꼬리꼬리한 행주냄새가 날 것 같은 더럽게 생긴 여자가. 얼마동안이나 빨지 않고 오래 입었는지 처지고 늘어지고 보풀이 일고 음식물 흘린 자국인지 뭔지 군데군데 얼룩이 묻은 츄리닝을 입은 여자가. 양쪽볼이 불독처럼 심술궂게 추욱 늘어진 여자가. 기미며 여드름 자국이 얼굴 군데군데에 얼룩지고 분화구처럼 패인 여자가.

기훈은 그때 얼른 생각했다. 이 세상의 여자가 모두 씨가 마른다해도 이런 여자와는 얽히고 싶지 않다고. 왜냐면 기훈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여자가 이런 여자였기에. 꾸밀 줄도 모르고 되는대로 입고 걸치는 여자.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이 다인, 그러나 식탐은 누구보다 많아서 매일 돼지같이 먹는, 그래서 살만 퉁퉁 찌우는 여자. 자기 자신을 방기(放棄)하는 여자.

줄자를 꺼내 좁은 세탁실안의 면적을 재는 동안 여자는 팔짱을 낀 채 기훈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라이센스 조회를 해 본다더니 언제 하려고 저러고 있을까.

기훈은 여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썩 상쾌하지가 않다.

“내 라이센스 조회 안 해봅니까?”

기훈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여자가 대답했다. 아니요.

“왜요?”

“그냥..….”

“그냥이라뇨?”

시비조로 기훈이 물었으나 여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저씨가 믿을 만한 사람 같아서…”

“………”

“그냥 믿을 만한 사람같이 생각되네요”

“고맙네요…”

그럴 걸 왜 아침부터 사람 기분을 잡치게 해?기훈은 속으로 툴툴거렸다.어딜 가나 이런 식으로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하는 인간들이 꼭 있다니까.

“예전에….”

여자는 세탁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제 엑스가 이런 일을 참 잘했어요……”

엑스라고? 결혼을 했던 여자야?이렇게 지저분하고 예쁘지 않은 여자를 데려간 남자가 있었구만. 누구였더랬어요? 아줌마랑 결혼했던 그 등신같은 놈이, 말하고 싶은 걸 기훈은 참았다.

“집안의 일이고 집 바깥의 일이고 못하는 게 없었어요. 아무리 오래된 고물딱지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금방 반짝반짝한 성능 좋은 물건으로 바뀌었더랬어요. 마이다스의 손이었죠.”

여자의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묻어 났다.

“그래요?”

기훈이 대꾸했다. 누구였을까? 이 좁은 동네에서 그렇게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내가 아는 사람이었을텐데…

“그러나 그 사람은 직업적으로 돈을 받고 뭘 고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냥 집안 물건들만 그리고 친구들 물건들만 공짜로 고쳐주었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이 그 사람을 참 많이 좋아했어요. 가끔 비싼 전자제품을 고쳐주면 친구들이 수고비조로 고기를 사왔어요. 사온 고기로 뒷뜰에서 파티를 열곤 했지요….”

여자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기 시작했다. 기훈은 여자의 목소리에서 느꼈다. 여자가 아직도 전 남편을 잊지못하고 있다는 것을. 기훈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듯 여자는 불현듯 목소리 톤을 바꾸면서 기훈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언제 미국에 오셨나요?

“10년전 쯤에요….”

“어떻게 오셨는데요?”

기훈은 일손을 멈추고 여자를 쳐다보았다. 이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야. 내가 어떻게 왔든 말든 뭐가 그리 궁금한데. 남의 신상 캘 시간에 세수나 좀 해라. 입가에 침 흘린 자국이 아직도 있잖아…..

“미국에 어떻게 오셨는데요?

여자가 재차 물었다. 몹시 궁금하다는 투다.

“이민. 투자 이민….”

“아저씨는…”

여자가 무어라 더 말하려는 걸 막으면서 기훈은 바지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준다.

“미스터 정이라고 불러요”

여자가 명함을 들여다 보았다.

“정기훈이라”

여자는 명함을 츄레닝 바지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대충 마쳐진 것 같은데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좋죠”

아닌게 아니라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오늘 아침은 커피를 사 마시지 못했다. 매일이다시피 들르는 도너스 가게가 이집과 반대방향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여자가 커피를 만들 동안 기훈은 부엌 바로 옆에 놓인 식탁에 앉아 견적서를 작성하면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라 그런지 창문은 있었으나 실내가 어두침침하다. 바깥 날씨가 흐린 탓도 있지만 우거진 나무가 집을 가리고 그늘을 만들면서 그런 것 같다.

집안은 컴컴했지만 비교적 정리정돈은 잘 되어있다. 기훈은 불현듯 궁금해졌다. 저 지저분한 여자가 집안정리를 이렇게 잘 했을 리는 없고 누굴까. 전화를 걸어왔던 그 중년부인일까?

너무 컴컴해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기훈은 일어나서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렸다. 갑자기 밝아진 실내에 여자는 찬장에서 찻잔을 꺼내던 손을 멈추고 잠시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가 기훈이 불을 켠 걸 감지한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기훈이 말했다.

“내가 컴컴한 곳을 싫어해서요”

“그래요?저는 밝은 게 싫은데….”

예전에 미연이가 그랬다. 밝은 곳이 싫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밝았던 여자가, 해바라기처럼 밝고 종달새처럼 명랑하던 여자가 어느 날부터 밝은 곳이 싫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밝고 환한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커피 드세요”

크림과 설탕을 다 탔어요. 웬지 그렇게 마시실 것 같아서 하면서 여자가 커피잔을 기훈 앞에 놓았다. 여자는 기훈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기습적으로 하는 말.

“그 쪽, 싱글이라면서요?”

“………”

“왜 싱글이예요?이혼했어요?사별은 아닐 테고…”

참으로 버르장머리 없고 무례한 여잘세. 언제 내 신상조사까지 마쳤을까. 기훈은 안개가 걷혀지듯 잠깐 걷혀졌었던 불쾌한 기분이 다시 엄습하는 걸 느꼈다. 이 동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이상 유리 어항처럼 환하게 신상이 드러나있었겠지만 도대체 이 여자는 뭔가. 예의라는 것을 아예 잊어버린 여자일까.

“아줌마는 누구한테나 항상 그렇게 함부로입니까?”

기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훈은 최대한의 노여움을 담아 여자에게 쏘듯 말했다.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견적이고 공사고 정말 다 집어치워야겠다………

“ 싱글인 제 친구가 있어요…..”

이번에도 여자는 개의치 않는다. 네가 그러든 말든 내 할 말은 해야겠다는 표정과 말투다.

“저랑 동갑인 친구. 성격도 상냥하고요, 무엇보다 아주 이뻐요”

이뻐요, 하는 대목에서 여자가 힘을 준다.

“이름도 이뻐요. 미단이예요. 박미단”

“도대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기훈이 마침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줌마. 정말 지금 많이 무례하고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대답을 하지 않는 여자. 역시 여자는 조금도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없다. 정말이지 꿈에서라도 얽히고 싶지 않은 여자다, 하고 기훈은 생각했다. 여자가 여자다와야지, 남자 앞에서 수줍어 할 줄도 알고까지는 아니지만, 정말이지 저렇게 뻔뻔하고 막무가내인 여자는 질색이다.

“예쁘다니까요. 남자들은 예쁜 여자라면 혹하던데….”

“커피 잘 마셨습니다.”

기훈은 식탁에서 일어섰다. 쓸데없이 이 못생긴 여자랑 노닥거릴 기분이 아니다.

“견적서 여기 있습니다.”

“엄마한테 들었어요. 싱글이시라구……”

현관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기훈의 뒤를 여자가 따라나오면서 말했다.

“그냥 제 친구가 생각났을 뿐이예요. 제너럴 컨츄렉터면 일단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쟎아요. 남자는 무엇보다 직업이 좋아야지…..”

라이센스를 보여달라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여자에게서 가졌던 불쾌감이 조금 누그러졌지만 기훈은 퉁명스런 목소리 톤을 바꾸지 않으면서 다시 말했다.

“오지랍도 참 넓네요. 직업은 그렇다치고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기훈이 대문밖으로 발을 내놓았다.

“함부로 사람을 소개해요, 소개하길….”

“좋은 분 같아 보여요… ”

“…………”

“어쨌든 가격이 맞으면 다시 연락하도록 할께요”

“그래요. 커피 잘 마셨어요”

현관문이 닫혔다.

바깥은 마악 떠오르기 시작하는 햇빛이 눈부셨다. 늦은 봄이라 하나 이른 아침의 날씨는 차고 쌀쌀하다. 기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제 저녁부터 몸살기가 있는 것 같아서 따뜻한 국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문을 연 한국 식당이 있었던가.

일단 한국 타운 쪽으로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기훈은 트럭으로 들어 가 운전석에 앉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기훈은 액정화면을 보았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기훈은 전화를 받았다. 고객의 전화일지도 모르니까.

“어디 쯤이세요?”

여자의 목소리다. 이 여자는 또 누군가. 다짜고짜 어디 쯤이라니?

“누구요?”

“금아예요”

“금아요?”

“아, 제가 제 이름을 안 드렸던가? 바로 조금전에 세탁실 견적내주고 간 집…”

“아, 예…”

“저희가 예스를 한다면 언제부터 일을 해 주실 수 있으신가해서요…”

“아줌마 어머니가 결정을 내려 연락을 해주기로 한 것 같은데?”

잠시 수화기 저쪽에서 침묵이 흐른다. 잠시후 여자는 말했다.

“돈 내는 사람은 저 거든요……”

“……..”

“멀리 가지 않으셨으면 도로 돌아 오세요”

“뭐라고요?”

“이왕 하는 김에 응접실도 마루로 다 깔아야겠어요. 지금의 카페트가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참 제 멋대로인 여자다, 하고 기훈은 생각하면서 차의 시동을 걸었다.

“ 당장 지금은 안됩니다. 일단 아침을 먹고 다시 오던지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