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 남자가 도로 돌아 왔어? 돌아와서 마루 견적을 내주었어?”

미단이는 별 흥미가 없다는 듯, 그러나 친구인 금아 네가 하는 얘기니까 마지못해 들어준다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오늘 비번이라며 연락도 없이 미단이가 들렀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금아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은아와 엄마는 이왕 큰 도시까지 나갔으니 백화점 들러 쇼핑도 좀하고 늦게 도착하리라고 전화를 해왔고 휴가받아 친구들과 낚시를 간 아버지 역시 오늘 밤 늦게나, 아니면 내일 저녁 때 쯤에나 도착할 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양치도, 세수도 않은 채 마음놓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미단이가 들이닥친 것이다.

“아니.금방 돌아오지는 않고 한참 후에 왔어.”

남자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뭣좀 뜨거운거라도 먹고 시간이 되면 들리겠노라고 했다. 그 말에 금아는 남자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접었었다.

흥. 일감을 주겠다는데도 밥부터 먼저 먹으시겠다? 배가 불렀군. 관두시지. 당신 아니라도 할 사람이 쌔고 쌨을 테니까.

그러나 남자는 열 한시쯤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웬 남미계통의 젊은 남자와 함께였다.

“집안을 모두 마루로 다 깔 계획이라구요?카페트를 전부 걷어내고?”

남자는 아까처럼 익숙한 동작으로 줄자를 가지고 거실이며 방안을 걸어다니며 넓이를 쟀다.그리고 나서 남자는 말했다.

마루라는 게 재질과 무늬와 색깔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일단 샘플을 보고 결정해야 하는데 특정하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달라. 재료상으로 같이 나무를 고르러 가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 다 맡겨라. 다 맡기면 내가 알아서 만족할 만큼 완성해 주겠다. 대신 단가가 그만큼 오른다….

정기훈의 조언에 의하면 나무값, 인건비 다 합해서 1만불정도면 보기좋게 바닥을 꾸며줄 수가 있다고 했다. 시공기간은 이틀에서 사흘.

1만불정도라.

금아는 두번 다시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해 주세요. 언제부터 작업에 착수할 수 있으세요?”

언제 깔았는지 모를, 적어도 몇십년은 되었을 우중충하고 탁한 색깔의 카페트. 바닥에 앉아 있노라면 무언가가 꾸물거리고 기어다닐 것 같은 느낌에 몸이 근질거려지는 더러운 카페트. 그 흉칙한 것들이 없어지고 반들반들하고 차갑고 매끄러운 나무 바닥을 걸어다닐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하다. 마루를 하므로서 은행의 잔고는 쑤욱 줄어들겠지만 , 사실 그게 바라던 바지만 어쩌면 이것이 엄마와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금아는 생각했다. 마지막 선물. 딸로서 부모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

“그 정기훈이란 남자, 처음엔 건들건들 태도가 불량해 보여서 어라, 이것 보게? 했었거든.....”

금아는 미단이의 머그잔에 커피를 더 따른다. 아까 미단이가 들고 온 한 봉지의 헤즐넛 커피. 그 달콤한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머리카락을 돌돌 말았다 풀었다 하는 미단의 왼쪽 둘째 손가락에 짙은 핑크색 돌이 박힌 반지가 끼어져 있다. 보름전에 만났을 때도 없던 반지다. 웬 반지일까?

“그런데 참 예외더라. 일에 임하는 태도가 굉장히 책임감이 있어 보였어. 고객의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해 만족을 주려는 모습을, 그리고 자기 편에 서서는 조금도 실수하지 않으려 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어”

“남자가 가장 섹시해 보일 때가 언제인 줄 아니?”

금아의 말을 자르고 느닷없이 튀어 나온 미단의 말에 금아는 고개를 든다. 글쎄. 언제일까. 샤워를 막 마치고 나왔을 때? 아니면 인터넷에서 본 것 처럼 주차권 입에 물고 차 후진시킬 때?

“어떤 일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일 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때래.”

그렇구나. 그랬다. 정기훈이 같이 온 남미 남자와 스패니쉬로 뭐라고 대화하며 견적을 내느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할 때, 그리고 나무의 재질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할 때 멋있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게 사실이다.

“사실 나 그 사람 얼굴 알아.”

미단이의 말에 금아가 깜짝 놀란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그 남자를 알아?

“한국 신문에 비지니스 광고하는 사람이쟎아”

“그으래? 난 또.”

아버지가 읽다가 둔 한국신문을 가끔 들추어 보긴 하지만 정기훈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실물은 못보았지만 광고에 나온 사진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꽤 잘 생겼더라. 참 웃기지. 제너럴 콘트렉터가 자기 사진은 왜 광고에 싣나 몰라. 일만 잘 하면 되지.”

"요즘은 인물도 보나보지 뭐"

금아의 말에 미단이가 흐흐흣, 하고 웃었다. 금아가 말했다.

“글쎄. 광고에 사진 싣는 게 요즘의 트렌드인것 같은데. 변호사, 의사, 회계사, 부동산 중개업 등 광고에 자기 사진 안 싣는 사람이 없으니. 하다못해 자동차 정비소 사장까지도 자기 사진과 함께 광고를 하니 말이야”

“그래서 일은 잘 할 것 같디? 잘 하나마나 나하곤 별 상관도 없는 걸. 뭘 뜯어 고칠 집이라도 한 채 가지고 있어야지”

미단이는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아주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그래서 미단아. 내가 네 얘기를 그 남자한테 조금 비추었거든?”

“뭐라고?”

“내 친구중에 아주 이쁜 싱글이 있는데 한번 만나 보지 않겠냐고”

“미.미쳤다, 얘…..”

그 남자 정기훈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었다. 자기를 어찌 안다고 함부로 그런 제안을 하냐고 버럭 화를 내었을 뿐.

“엄마 말로는 와이프랑 이혼하고 혼자 산지 꽤 오래된 남자래. 미단이 네가 한번 엮어보지 않을래?남자가 점잖고 심중도 깊어 보이더라.인물도 그만 하면 되었고.”

시비를 걸어봤는데도 능글능글하게 대응하는 걸 보니 성품도 괜찮았어, 하고 금아가 덧부쳤다. 미단이는 금아의 말이 어이없는 듯 피식 웃는다. 그리고 빤히 금아를 바라보더니 한 마디 한다.

“그러지말고 금아 네가 해보지 그러니?”

느닷없는 미단의 말에 금아는 무슨 당치도 않는 말이냐며 펄쩍, 뛰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손까지 휘휘 내젓는다.

“무슨 그런 말을!”

금아는 미단이를 향해 눈을 홀겼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예쁘지가 않쟎아.”

미단이 너같이, 하는 말도 덧부쳤다. 그러나 미단이 너 같이, 하는 말은 입속으로 만 했다.

미단이는 같은 여자가 봐도 예쁜 여자다. 은아가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해 서구적인 관점에서 보는 빼어난 미인이라면 미단이는 동양적인 미를 골고루 갖추고 있는 여자다. 적당한 키에 약간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몸매. 서른 중반이라하나 아직도 윤기있고 빛나는 피부. 화장 잘하고 옷이라도 잘 입으면 이십대 후반이라도 해도 믿을 만큼 고운 외모를 지녔다. 무엇보다 미단이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따뜻한 마음씨다. 항상 상대방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마음씨.

그러나 남자복만은 지지리도 없는 미단이기도 하다. 첫남편과 이혼 후 만난 서너명의 남자들. 미단이가 남자보는 눈이 없어서일까.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들이 모두 찌질이 중의 상찌질이들인 것이다.

“그나저나 웬 반지야?못 보던 거네?누가 줬어?”

금아의 말에 미단이가 후훗, 하고 웃는다.

“가짜야. 직장동료들하고 점심시간에 백화점에 놀러갔다가 산 거. 5불짜리야. 이쁘지?”

미단이가 손가락에서 반지를 꺼내 금아에게 준다. 금아는 반지를 받아 이리저리 살펴 본다.

“와, 5불짜리가 적어도 5천불은 되어 뵈네. 진짜 정교하게 세밀하게 잘 만들었다. 이러니 누가 기천불을 주고 진짜를 사겠어!”

“근데 왜 하필이면 이걸 약지에 껴? 누가 결혼한 줄 알면 어쩌려고?결혼반지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바라던 바야”

“……….”

“지겹고 귀찮아. 남자라는 족속들.”

“………...”

“"새로운 남자 만나 알아가는 것도 지치고, 실망하는 것도 지치고 더이상 상처도 받기 싫다. 이제 그냥 혼자 살까봐”

금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미단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만 하다. 6개월 사귀다가 지난 번에 헤어졌다는 남자. 쓸만한 놈인 줄 알았더니 아니더란다. 사업을 한답시고 허황된 꿈만 꾸다가 개인 파산만 세번 한 놈이더란다.한번 이혼한 줄 알았더니 두번이나 한 놈이더란다. 딸린 애가 하나인 줄 알았더니 셋이더란다.

“그렇지만 미단아.”

금아가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엄마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달래듯 말한다.

“그래도 정기훈이라는 남자는 한 번 만나보기나 해라”

“글쎄. 별로 관심없는데….”

“………..”

“참 성도씨한테서는 연락 왔니?”

“성도씨?”

성도는 금아의 전남편 토니의 한국 이름이다. 미국에 살면서 근사한 미국이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성도를 토니라고 바꾸었지만 처음부터 성도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은 토니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성도씨가 왜? 나한테 이제 전화할 일이 없잖아….”

성도라는 이름을, 토니라는 이름을 입술에 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지금도 성도라는 말에 찌르르, 전기에 감전된 듯한 한줄기 아픔이 금아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그러나 금아는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말한다.

“ 새와이프랑 알콩달콩 잘 살고 있을 사람인데 나한테 뭔 일로 전화하겠어….”

“ 나, 지난 주에 한국식당 갔다가 성도씨 봤다.”

미단이가 금아의 기색을 살피며 말한다.

“와이프랑 같이 밥 먹으러 왔더라. 와이프 배가 꽤 부르던데.”

성도 아내가 임신했다는 얘기를 바람결에 들었다.

“성도씨가 먼저 아는 척을 하더라. 그리고 계산하고 떠났는데 조금있다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왔지 뭐니. 나한테 와서 그러더라. 너 한테 전화할 거라고. 전화번호 아직도 바꾸지 않았냐고 묻던데?”

하루종일 있어도 울리지 않는 전화, 금아의 전화.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금아의 전화는 캔디 전화다. 지난 주에도 이번주에도, 성도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었다.

“이제 전화해서 뭐하려고……”

금아가 애써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이제 전화해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이제는 남이 된 사람, 남의 남편이 된 사람과 통화해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글쎄. 그래도 양심은 있나보지. 네가 잘 있나, 확인해 보고 싶었겠지.”

“………..”

“그런 말 있지. 헤어진 배우자가 재혼해서 잘 살면 배가 아프고 못살면 가슴이 아프고 재혼을 못하고 있으면 골치가 아프다”

“그러면 나는 두 가지 다네 재혼도 못하고 있고 잘 살지도 못하고 있으니까. ”

“그러게. 성도씨가 가슴도 아프고 골치도 아프겠다야. 너 때문에!”

미단이가 먼저 깔깔 웃고 금아도 따라 웃었다.

“그러지말고 아까 얘기했던 그 남자……”

“누구?”

“그 제너럴 컨트렉터인가 뭔가하는 남자 말이야”

“으..으응….”

“그 남자 그렇게 괜찮은 사람같아 보였다면 네가 한번 엮어보지 그러니?”

“이 몰골로?”

이 몰골로, 하는 금아의 말과 동시에 금아와 미단이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정말이지 금아의 모습은 ‘몰골’로 표현해야 할 만큼 형편없다. 사시사철 입은 츄리닝. 끝이 다 갈라져 사방팔방으로 뻗치고 있는 푸석한 머리. 생전 영양크림 한번 발라보지 못한 것 같은 거칠고 메마른 피부. 그리고 풍선처럼 퉁퉁 불어 있는 몸.

“금아야. 진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너 왜 이러고 있니?”

“……….”

“거울은 안 봐?”

“보지. 매일 봐.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화장실 갈 때마다”

“이혼한게 그렇게 너한테 큰 충격이었어? 그 이혼, 나도 했쟎아”

그렇다. 미단이도 이혼을 했다. 그러나.

“ 넌 그 이혼을 스스로 했고. 난…….”

난 당했쟎아, 이혼을. 그 말은 차마 못하고 금아는 입속으로 우물거린다. 그렇다. 금아는 이혼을 당했다. 이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반강제로 당했다. 시어머니에 의해. 그러나 시어머니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그럴 것이다. 요즘 세상에 젊은 사람들이 살다 싫으면 헤어지는 거지. 옆에서 누가 하라마라 말 할 것 있나. 토니 부부의 이혼은 순전히 자기들 뜻이었다우. 난 옆에서 말 한 마디도 안 했어……

시어머니는 부처님같이 자비로운 미소를 띄우면서 그랬을 것이다. 정말이지 두번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 두번다시 얽히고 싶지 않은 여자. 그 시어머니란 사람.

늦은 밤까지 잠 못이루며 사십년 가까이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 볼 때 가장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성도와 이혼한 일이었다. 본인 뜻과는 무관하게 강행되었던 이혼. 그러니까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 또한 이혼이었다. 왜냐면 성도와 이혼을 하므로 그 독사같은 시어머니의 얼굴을 두번 다시 보지않게 되었으므로.

독하고 교활하고 비열하고 뻔뻔하고 사악하고 야비하고 흉폭한. 인간에게 갖다부칠 수 있는 온갖 험한 말이란 말을 다 갖다 부쳐도 시원치 않을 사람. 그 시어머니란 사람이 인생에서 지워진 것만으로도 인생 성공한 거라고 금아는 생각했다.

작년 여름인가. 금아는 혼자 강가를 걷다가 뱀을 만난 적이 있다. 길이가 사람 키만하고 굵기가 사람 팔뚝만한 독사를. 풀숲 어디에선가 순식간에 나타나 길 한복판에서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금아를노려보는 뱀! 금아는 순간 뒤로 넘어질만큼 놀랐다. 공포에 질려서 뻣뻣하게 몸이 굳은 채 도망도 못 가고 어어, 신음소리를 내는 금아를 뱀은 잠깐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적수가 안된다 싶었던지 쉬이익 소리를 내며 다시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짧은 시간, 1,2분도 안되었던 짧은 순간, 금아가 느꼈던 것은 방금 본 뱀의 눈빛이 시어머니의 눈빛과 무척 닮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소름이 돋을 만큼 극명한 사실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뱀의 눈과 인간의 눈빛이 같을 수가 있을까!

시어머니란 사람은 설명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둥둥, 궁뎅이를 두드리며 매일 업고다녀도 시원치않을 사람이 바로 내 며느리란 사람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때는 언제고 그렇게 백팔십도, 아니 삽백육십도, 흑과 백과 같이 변할 수 있을까. 따뜻하고 온기있던 눈빛이 그렇게 냉정하고 차갑게 바뀔 수 있을까.

“영화배우하면 성공할 사람이야, 당신 엄마라는 사람은”

이혼이 기정사실화 되었을 때 금아가 성도에게 한 말이었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펑펑 울다가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듯 헤헤거리는 영화배우처럼 당신 엄마는 연기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이야”

금아는 지금도 헷갈린다. 20만불의 지참금을 짊어지고 시집을 갔을 때. 그 돈을 종잣돈으로 허름한 집 한채를 샀을때. 그리고 그 집이 모텔이 되었고 나중에 건물부자가 되었을 때. 우리 며느리 복덩어리, 우리 며느리 아니었으면 우리가 집을 어떻게 사고 모텔을 어떻게 사고 상가 건물을 어떻게 사, 하고 대견해 하고 흐뭇해 하던 눈빛이 진짜인지. 아니면 못생기고 키 작고 아이도 못 낳은, 여자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년이란 미움과 멸시와 경멸스러움을 잔뜩 담아 쏘아보던 눈빛이 진짜인지 정말이지 지금도 금아는 헷갈린다.

“잘 살아야지….어쨌든 잘 살아야 해…성도씨는 잘 살아야 해”

금아가 중얼거렸다. 그 말은 금아의 진심이었다. 왜냐면 금아는 성도에게는 아무런 나쁜 앙금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이혼한 후에도 시어머니의 눈을 피해 자주 전화를 걸어오던 성도. 성도는 말했었다. 엄마가 지금은 저래도 마음이 변할 거야. 금아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여자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언젠가는 마음이 변해서 금아를 다시 불러들일 거야. 그때까지만 참아 줘. 다시 합칠 때까지 우리 사랑 변하지 말자.

성도는 염려했었다. 금아에게로 향하는 자기의 마음은 굳건한데, 바위처럼 굳건한데 혹시라도 금아의 마음이 빨리 변할까 봐 염려된다고.

그러나 변한 것은 성도가 먼저였었다. 하루에 한번씩, 그리고 나중에는 일주일에도 서너번씩 걸려오던 전화가 뜸한가 싶더니 어느 날부터 뚝 끊어졌다. 그리고 얼마후 들려오는 소문.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여성과 결혼을 한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혼은 사실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 최고로 비싸고 호화로운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성도는 새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여지껏 많은 결혼식에 가봤어도 그렇게 돈을 많이 쳐들여서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한 결혼식은 처음이었네….”

결혼식에 참석하고 온 사람들의 말이었다. 한국인들의 결혼식 중 가장 볼거리와 먹을 거리와 하객들이 많은 결혼식이었다고 혀를 내눌렀다고 했다. 그랬을 것이다.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참 사람의 팔자란 알 수 없는 거야. 그 인물 어디에 돈이 붙고 복이 붙어서 하루아침에 갑부가 될까”

동네사람들이 성도와 시어머니를 보고 모두 한 말이었다.

금아가 시집가며 가져간 돈으로 산 작은 집이 마악 불기 시작한 부동산 열풍을 타고 1년도 안돼 배이상이 올라버렸다. 시어머니는 돈을 버는 길은 부동산밖에 없다며 다시 부동산에 투자했다. 집 팔아 남은 차액으로 은행융자를 끼고 산 허름한 호텔을 산 것이다. 시어머니의 말은 맞았다. 얼마 있다가 건물 옆으로 큰 도로가 생기면서 갑자기 호텔 건물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버렸던 것이다. 산 값의 열배나 되는 이문을 남기고 그 호텔 건물을 다시 팔았다. 그리고 그 남은 돈으로 다시 산 상가건물. 슬럼가에 위치해 있고 지은지 오래돼 사람들이 별로 눈여겨 보지않던 낡고 보잘 것 없는 건물. 그러나 그 건물 산지 2년도 채 안돼 근처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섰다. 건물을 모두 세놓았다. 한달에 들어오는 세만도 엄청나게 된 것이다.

선견지명이 있다는 말은,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다는 말은, 사물을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말은 바로 시어머니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녀는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사람이었다. 성도가 세살 때 과부가 되어 혼자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녀. 그녀는 돈이 돈을 불린다는 사실을, 부동산만이 유일하게 재산을 증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녀의 조언을 듣고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거의 다 몇배의 수익을 올리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또한 시어머니는 여러 한인단체에 기금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돈이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시어머니의 생각은 맞았다. 기부금을 후하게 잘 내자 사람들은 시어머니에게 이런저런 감투를 맡기기 시작했다. 한인회장, 재미경제인협회 회장, 로터리 클럽 회장 등등. 시어머니는 명함만도 몇개였다. 몇년 사이 신분 상승이 되어버린 것이다.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노인네에서 졸지에 이 동네에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시어머니가 금아를 구박하기 시작한 것은. 키 작고 왜소하고 인물도 형편없는 자기 아들이야 어쩔수 없다치고 성도옆에 서 있을 며느리라도 인물 훤하고 학력이 높은 여자라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고, 며느리가 아주 번듯하십니다, 하는 말을 듣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 원 참. 며느리라고 하나 있는 게 이건 뭐 식모인지 찬모인지 구분이 안 가니 창피하고 남부끄러워서 살 수가 있나……”

시어머니는 금아가 듣던지 말던지 노골적으로 푸념을 하기 시작했다.아니, 나중에는 금아가 들으라고 일부러 더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쉿, 금아가 들어요, 어머니”

“들으면 대수니? 들으라고 일부러 그런다. 자기도 양심이 있으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듣겠지?”

성도와 새로 결혼은 여자는 키가 훤출하고 인물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라고 했다. 키 크고 인물좋고 대학을 졸업한 똑똑한 여성. 시어머니는 일단 그 세가지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금아야”

아까부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금아를 방해하지 않으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미단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 친구니까 솔직해지자.”

“뭘?”

“너 아직도 성도씨에게 미련이 있니?”

미단의 말에 금아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성도는, 토니는 금아에게 생전 처음 따뜻함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감정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다. 못생기고 뚱뚱하고 정말이지 그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금아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위해주던 사람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금아를 예쁘고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던 사람이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어쩌면 귀엽고 예쁜 데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을까, 하고 엄마로부터 늘 멸시와 구박을 받던 금아. 어릴 때부터 단 한번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던 엄마. 그리고 엄마의 구박을 침묵으로 수수방관하던 아버지.늘상 춥고 외롭고 쓸쓸하던 금아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사람이었다, 성도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자존감이 바닥에 있을 때 금아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양 어깨밑으로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워 주던 사람이다, 성도는.

금아는 ‘그대는 나를 일으켜 세우시네(you raise me up)’ 하는 노래를 듣고 한동안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그랬다. 성도는 금아를 일으켜 세우던 사람이었다. 그 누가 뭐래도 쓸모있는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는 용기를 북돋아 주던 사람이었다. 성도는.

“아니. 없어.”

친구지만 참 고약하다, 하고 금아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미단이가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위하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악취미로 그런 말을 물어볼 아이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므로.

“정말이니?”

“그래. 정말이야”

말해놓고 금아는 쓸쓸하게 웃었다.이제와서 미련이 있으면 뭐할 거고 없으면 뭐할 것인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인연, 엇나간 인연인걸.

“내가 성도씨 만나서 돈이라도 좀 더 달라고 할까 싶어서. 성도씨가 지금 그 부를 이루기까지는 네 힘도 컸쟎아. 네 돈 20만불이 아니었으면 지금 성도씨가 그 위치까지 갈 수 없었다는 것은 자기도 잘 알걸? 그런데 위자료를 너무 적게 받은 것 같아서. 50만불이 뭐니, 50만불이. 적어도 100만불은 받았어야지….”

그 말은 엄마도 늘 귀가 따갑게 하던 말이다.

이 멍청아. 이 병신아. 100만불을 받기 전엔 도장을 안 찍어준다고 버텼어야지. 소송을 해서라도 한 몫잡고 나왔어야지…

만약 금아가 버티었으면 성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충분히 그 돈을 마련해 주었을 사람이다. 아무리 시어머니가 완강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금아는 그러기가 싫었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과, 한때는 가족이던 사람과 돈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는 게 싫었다. 50만불을 주겠다는 시어머니와 성도의 제의에 금아는 단 한마디의 토도 달지 않았다. 아니, 빈손으로 자신을 내쫓는다해도 토를 달지 않았을 금아였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 돈 50만불이라도 받아나오길 얼마나 잘했나. 엄마, 아버지가 집 사는데 다운페이를 해 줄 수 있었지 않았나 말이다. 비록 지은지 100년 가까이나 돼 여기저기 손볼 데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집이라 해도.

“다 끝난 사이에 돈 얘기를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울까. 관 둬, 얘”

금아는 쓸쓸하게 웃으며 말한다. 돈이 더 생기면 그 돈을 다 쓸 동안 더 살아야 한다. 더 살고 싶지 않다, 금아는. 삶에 대한 미련이라곤 손톱끝 만큼도 없다, 금아는. 하루라도 빨리 눈을 감았으면 싶다. 통장에 있는 돈이 다 없어지는 날, 눈을 감는 날이 될 것이다.

미단이는 금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금아가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모른 채.

미단이는 금아가 듣지 않게 불쌍해, 네가 불쌍해, 하고 작게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