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금아야”

아버지가 다시 남비를 자기쪽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금아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은 채 숟가락으로 매운탕 국물을 뜬다. 언제부터인지 쫄아들기 시작한 남비안에는 국물이 없었다. 생선 가시와 파와 양파와 죽처럼 이겨진 쑥갓만 두어줄기 남아 있을 뿐. 그러나 아버지는 마지막 국물 한방울이라도 떠먹어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표정으로 아까부터 계속 남비를 기울여 국물을 퍼내고 있었다.

금아는 휴대용 버너의 불을 껐다.

“국물이 이제 없어요. 아버지….”

금아는 아버지가 우정 국물을 원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아버지는 지금 어색하고 불편하고 거북한 것이다. 금아랑 단 둘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자리가 .

그러나 아버지는 예전에 항상 그랬던 것처럼 헛기침을 하면서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은아가 출근하고 엄마도 외출하고 없을 때 아버지랑 단 둘이 식탁에 앉을 때가 있다. 아버지는 금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신문을 가져다가 보거나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다가 밥을 반이나 남긴채로 서둘러 식탁을 물러나곤 했다.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아버지가 불편해 한다는 걸 알아차린 금아는 그 이후엔 가급적 그런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었다. 끼니 때가 되어 부득이 같은 식탁에 앉을 기회가 만들어져도 배 고프지 않아 나중에 밥을 먹겠다는 핑게를 대거나 급한 전화를 –급하게 전화 해야 할 곳은 아무 데도 없었지만- 해야 할 때가 있다면서 자기방으로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오늘 저녁, 은아와 엄마가 피곤하다며 먼저 들어가고 난 후 금아는 아버지가 먼저 자리를 뜨길 기다렸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괴어 있는 집안으로 들어가기보다 시원한 바깥에 좀 더 앉아 있다가 담배를 한대 피우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한동안 묵묵히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남비를 기울여 몇번이고 매운탕 국물을 퍼내더니 마침내 결심한 것 처럼 금아를 향해 입을 연 것이다. 그 첫마디가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였다.

“매운탕이 참 맛있네요. 아버지….”

아버지가 금아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맛있지. 네 엄마가 양념을 잘한 것 같구나”

“낚시, 언제 다시 가실 거예요?”

“글쎄….”

“저도 따라 갈까요, 아버지?”

“글쎄….”

아버지가 이마에 주름을 모았다.

“담배 피우고 싶으면 피워라”

아버지는 다시 금아를 향해 미소지었다. 아버지의 미소를 본 게 언제였던가. 아버지는 생전 미소를 짓지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괜찮아요…..”

“금아야”

“………..”

“다시 얘기하겠지만 나는, 이 아버지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버지…..”

“나…나는….”

“아버지가 보시기엔 제가 안 행복해 보여요?”

아버지는 금아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행복한가, 하고 금아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가 행복한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 그럼 불행한가.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다. 아니다. 행복과 불행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지금 금아가 생각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녀가 하는 일은 시간을 죽이는 일이다.

시간을 죽이면서 그저 동물처럼 원초적 본능만 해결하는 일 뿐. 먹고 자고 싸고. 그리고 담배 피우고.

또한 금아는 술을 마신다. 잠 안 올 때 근처 편의점까지 걸어가서 술을 산다. 거리에서 숙식하는 홈리스들과 두어마디 대화를 주고받다가 그들과 나누어 마실 때도 있고 혼자 술 한 병을 다 비울 때도 있다.  금아가 한밤중에 혼자 나가서 그렇게 술을 마시는 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럼 불행해 보여요?아버지, 제가 불행해 보여요?”

“………..”

“아버진 행복 해요?아버진 엄마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했어요?”

“……….”

“대답해 봐요, 아버지”

“금아야”

금아가 무어라 물어도 대답을 않고 테이블만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네가 늘 가슴이 아팠다”

“………..”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이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아버지가 나를 생각했다니, 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니. 내프킨으로 플라스틱 탁자를 닦아내던 금아는 일손을 멈추었다.

언제나 바위처럼 묵묵한 아버지였다. 말이 없고 감정표현이 없는 아버지였다. 엄마가 자신을 구박할 때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 때마다, 세상이 자신을 배척할 때마다 금아는 무언으로 호소했었다. 아버지를 향해 간절히, 정말 간절히 호소했었다.

아버지. 아파요. 제가 아파요. 저를 도와주세요. 제게 눈길을 돌려주세요. 제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거대하고 견고한 벽이었다. 아무리 아버지를 향해 애원해도 아버지는 금아를 돌아보지 않았었다. 금아는 깨달았다. 세상에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아픔을 나누어 가질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금아는 아버지를 향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를 생각했다니, 나, 금아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니.

“네가 날 닮은 게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는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마지막 술. 더이상 병에 남아 있는 술은 없다.

“그런데 네가 결혼에 실패한 것 마저 날 닮아 가슴이 무지 아프구나”

“아버지는…..”

금아는 쿡, 하고 웃었다. 자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는 아버지의 말이 고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금아였다. 그저 조금 놀랐을 뿐.

금아는 아버지가 여느 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말이 무척 많은 것이다. 이 남자는 , 이 늙수구레하고 초라한 남자는, 자신을 꼭 닮은 이 남자는 오늘 밤 왜 이럴까. 초저녁부터 내리 마셔댄 소주에 취한 것일까. 왜 이리 말이 많은 것일까.

“아버지는 실패한 결혼이 아니쟎아요. 지금까지 해로하고 잘 살고 있쟎아요”

“내 결혼, 실패한 결혼이다…….”

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실패한 결혼. 그렇다. 금아가 보기에도 아버지의 결혼은 실패작이다. 이혼하지 않았다고, 같이 살고 있다고, 같은 침대를 쓰고 있다고 실패하지 않은 결혼이라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깨끗하게 정리하고 미련없이 털고 돌아선 사람들보다 앙금이 더 깊고 더 어둡고 더 무거울 수 있다. 증오와 미움이 더 클 수도 있다.

“아버지…….”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 생활은 사실 진즉 끝을 냈어야 서로를 위해서도 좋을 듯 싶어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부부의 인연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이 위태위태 한 것이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금아는 아버지를 불러놓고 잠시 킬킬거리고 웃었다. 불쌍한 아버지.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내일 모레 나이가 칠십인데 이제와서 뭘 어떻게 하려구.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냥 저냥 사는 거지 뭐.

속으로는 아버지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는 금아. 그러나 그녀는 짐짓 걱정스런 투로 말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실패한 결혼을 성공한 이혼으로 돌리면 되지 뭐."

“……….”

“마음만 먹음 그까짓 이혼하는 것 쉽고도 쉬워요. 제가 도와줄께요. 엄마랑 지금이라도 이혼해요"

“금아야. 지금 나는 네 얘기를 하고 있다”

늦은 밤이다. 초저녁부터 아버지가 포획해 온 물고기로 매운탕 파티를 벌였다.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해 하는 엄마도 오랫만에 기분이 좋아보였다. 엄마가 기분이 좋은 것은 은아가 이번에 선본 남자랑 잘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남자가 다음에 또 만나자고 했단다. 구체적으로 다음에 만날 날짜와 장소까지 정해주었단다. 자기가 무척 바쁘니까 한번만 은아보고 내려오라고 했단다. 다음엔 반드시 자기가 올라오겠다고 약조를 했단다.

그래서 엄마는 기분이 좋다. 이번에야말로 잘하면 의사 사위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다.

그래서 온동네에 비린내를 풍길 거냐는 잔소리를 하지도 않고 순순히 매운탕 끓일 남비며, 휴대용 버너며 양념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매운탕이 다 완성되자 친히 대접에다 퍼주기까지 했다. 비린 것을 싫어하는 엄마라 매운탕을 입에 전혀 대지는 않았지만 뒷뜰에 같이 나와서 소주도 두어잔 마셨다.

분위기는 한껏 화기애애했다. 간만에, 정말로 오랫만에 보는 따뜻하고 정다운 분위기였다. 금아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목말라 하던 분위기.

금아가 토니네에 가서 가장 놀랐던 게 있다면 그것은 가족들간의 결속력이었다. 그것은 쥐 잡는 끈끈이처럼 끈적끈적하고도 강했다. 시집간 토니의 누나들도, 시집 안 간 누나들도 서로를 정말 끔찍히도 위했다. 식구중 누가 남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싸웠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녀들은 그날로 한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무조건 상대방부터 맹렬히 성토했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이쪽이 100% 잘못한 게 분명한데도 일단 상대방을 마구 난도질을 했다.

그런 다음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의논했고 역할을 분담한 다음 행동으로 취했다. 상대방 집으로 쳐들어가거나 동네방네 욕을 하고 다니거나.

그렇게 찰흙덩이처럼 똘똘 뭉친 그 형제들은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금아네 집은 어떠했는가.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아버지는 그렇다치고 금아에 관해서 엄마는 무조건 이쪽에다 책임을 전가시켰다. 설사 그쪽 잘못이100% 자명하다하더라도 일단 엄마는 금아의 실수와 실책이라고 몰아부쳤다.

금아 네가 얼마나 칠칠치 못했으면. 금아 네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금아 네가 얼마나 바보같았으면.

어릴 때.

금아가 혼자 넘어지거나 친구들하고 놀다가 싸우고 울면서 집에 들어갔을 때. 금아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그랬다. 금아는 간절히 원했다, 엄마의 손길을.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기를, 눈물을 닦아주기를.그리고 품에 꼭 안아주기를.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역성을 들어주기를.

그러나 엄마는 늘 차갑게 말했다. 왜 병신같이 울고 그러니? 뭘 잘했다고 걸핏하면 질찔 짜,짜길!. 얼른 울음 뚝 그치지 못해?!

이혼하고 돌아왔을 때도 그랬다. 금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위로가 필요했다. 옷가지를 싸담은 가방 두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을 당시 현관문을 열어준 것은 엄마였다. 미리 얘기를 들어서 금아가 올 줄 알고 있던 엄마는 놀라지는 않았다.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렇게 딱 한마디를 던졌다. 금아는 바보처럼 웃었다.

“미안. 엄마. 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구….”

엄마는 더 이상 아무말하지 않았다. 다만 몸을 비틀어 금아가 들어오게끔 자리를 내주었을 뿐. 그러나 금아는 알았다. 엄마의 시선에 경멸과 멸시와 비난을 잔뜩 담고 있다는 것을. 끔찍하게 징그러운 벌레를 보듯 자신을 보고있다는 것을.

‘엄마가 날 대하는 태도는 늘 그랬는데 뭐…….’

그때까지만 해도 금아는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다. 집에 돌아와 밤이나 낮이나 정신없이 일주일을 잤다. 문득문득 정신이 들 때마다 금아는 생각했다. 작은 분식집을 하나 차릴까.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떡복이나 팥빙수를 파는.아니면 커피집은 어떨까. 제과점은?……

금아는 앞으로 살아 갈 궁리를 했던 것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이혼녀가 남자 도움없이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연구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랬었다, 그때는.

그러나 어느 날 새벽. 화장실에 가다가 열려진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엄마의 목소리를 금아는 듣고야 말았다. 지금도 금아는 그날 새벽에 들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바로 1분 전에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처음에 엄마는 아버지에게 날씨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다.

여름이 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추워서 스웨터를 입어야 하겠다는 불평.

금아는 일단 소변이 급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이어서 또렷하게 들리는 이름, 자신의 이름에 금아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금아 말이예요. 내 그럴 줄 알았어요. 몇년 못살고 이혼하고 돌아올 줄 알았다니까”

금아는 복도에서 우뚝 섰다. 손가락 두어개가 들어갈 만큼 안방문이 열려있었다. 금아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침대 사이드 테이블에 켜진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 모로 누운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등을 이쪽으로 등진 채 누워있는 아버지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아버지는 엄마의 말에 대답이 없었다. 여지껏 그랬던 것처럼 묵묵부답이었다.

“지금까지 산 게 용하지 뭐. 토니인가 성도인가 하는 놈이 워낙 덜떨어진 놈이라 금아같은 애하고 여지껏 살았지, 정신이 똑바로 박힌 놈 같으면 안 살지.”

“금아가, 뭐…..”

아버지가 마침내 끄응, 하고 이쪽으로 돌아 누우며 한마디했다.

“금아가 어때서….”

“어때서라니? 애가 느리고 게을러터졌쟎아요. 또 눈치없고 맹하고 앞뒤 꽉 막힌 벽창호잖아.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는 못산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어요? 몸이 빠릿빠릿하길 하나, 애교가 있나. 늘 부어터진 얼굴로 뚱해가지고….”

“………..”

“시집가서 첨에 시어머니랑 신랑이 아주 이뻐한다기에 웬일인가 했었지 뭐유”

“…………”

“곰이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정말 별일도 다 있다 했네. 아니나 달라, 그게 몇년이 못가요, 글쎄…”

“…………”

“그나저나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 금아때문에 우리 은아 혼삿길 막히면 어떡해. 난 그게 제일 걱정이야……”

아버지가 뭐라고 두어마디 하는 것 같았지만 금아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가슴이 떨려서 그 자리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기에.

“생각을 좀 해봐요. 이혼하고 돌아온 언니가 떡하니 집에 버티고 있다고 하면 은아 혼사에 마이너스겠어요? 플러스겠어요? 누가 좋아하겠냐구요. 하여튼 쟤는 평생 내 짐짝이야. 정말 꼴도 보기 싫어. 저 물건 때문에 평생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어. 내가 평생 속을 끓인다니까.”

금아는 살금살금 발꿈치를 높히고 거실을 가로질러 뒷뜰로 나갔다. 일단 금아는 소리나지 않게 뒤뜰 화초위에서 오줌을 누었다.

그때 쿵, 하고 가슴을 치는 무엇. 그것은 후회였다. 이 집으로 괜히 들어왔다는 후회.

엄마가 밉다거나 섭섭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말이 맞는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별로 맘에 차지않던 딸, 이혼하고 돌아와서 아침저녁으로 눈에 뜨이니 속상하고 짜증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더구나 애지중지하던 은아의 결혼에 방해물이 될 존재이니.

‘잘못했네. 어디 구석진 아파트를 얻어들어가 당분간 엄마 눈에 뜨이지 말 걸….”

아파트를 얻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단이가 말렸다. 혼자있게 되면 가라앉고 우울해질 것이니 엄마와 아버지와 동생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라는 게 미단이의 조언이었다. 당분간 그들과 어울려 북적북적 생활하다보면 이혼에 대한 충격이나 슬픔이 가실 거라고.

이혼하고 돌아온 딸을 환영하리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엄마가 그 정도로 보기 싫어할 줄은 몰랐다. 금아는 날이 밝으면 집을 나갈 계획을 세웠다. 미단이이게 연락 해 같이 아파트를 알아볼 계획. 그러다가 금아는 문득 생각했다.

아파트를 얻어나가서 뭐 할 건데?

이제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은 한 여름의 햇볓처럼 강렬하고 굳게 금아의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 살아가야 할 아무런 희망이 없다. 앞으로 좋아지리라는 희망,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이 살 바에야 죽어버리는 게 훨씬 편하겠다……

목숨이 끊어져서 아무 생각없이 땅밑에 누워있는 자신을 생각하자 저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죽자. 죽어버리자.

그날 금아는 위자료로 받아 은행에 넣어둔 돈 50만불 중 20만불을 찾았다. 은아에게 5만불을 주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10만불을, 아버지에게 5만불을 주었다. 아버지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며 받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 몫의 5만불도 엄마에게 다 줘버렸다.

“어쨌든 금아 시집 갈 때 우리가 해주었던 돈 20만불을 도로 돌려받는 거네”

엄마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뜻하지 않은 거액을 받고 좋아했다. 장마철에 반짝, 하고 잠깐 나온 햇빛처럼 기뻐했다.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금아는 돈을 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죽을 계획을 세웠다.

은행 예금이 다 없어지는 날 집을 떠날 것. 떠나기 전에 유서를 우편으로 엄마에게 부칠 것. 찾지 말라고. 편지를 받을 즈음이면 더 이상 이 세상사람이 아닐 터이니. 없어진 금아를 식구들이 찾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찾지말라고 얘기해두고 싶었다. 쓸모없는 존재가 하나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수선피우는 것을 원치않았다, 금아는.

금아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음독이었다. 쥐도새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죽는 방법은 음독밖에 없었다. 금아는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갈 것이다. 깊은 산이 있는 도시로. 버스에서 내려 발 편한 운동화를 사 신을 것이다. 그리고 몇시간이고 깊은 산속으로 걸어들어갈 것이다. 무슨 약이든 적량의 몇십배를 복용하면 취사량이 될 수 있을 터. 약을 입에 털어놓고 양지바른 곳에 누울 것이다. 몇시간 후, 아니면 며칠 후 조용히 숨을 거두겠지. 그러면 산짐승이 냠냠 뜯어 먹을 것이고 먹다가 남은 것들은 썩어서 거름이 될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 갈 것이다.

은행 예금이 없어지는데 앞으로 몇년이 걸릴 것인가. 담배를 사고 술을 사는 일 외에는 돈이 들어갈 데가 별로 없다. 어제처럼 마루를 까는 돌연변이가 생기는 일 외엔.

지금 금아가 세운 계획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궁금한 것은 나중에 금아의 죽음이 밝혀지고나면 엄마가 금아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 줄까, 하는 것이다. 불쌍한 것, 가엾은 것, 아무리 그렇다고 죽을 생각을 하다니, 하고 마음 아파해 줄까.

엄마가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었더라면 금아는 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괜찮아. 살다보면 이혼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어쨌든 그동안 수고했다. 지금은 아무 생각말고 푹 쉬어.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엄마가 그렇게 말해주었다면 금아는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힘을 내었을까.

“금아야 나는 네가 걱정이 된다…..”

금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엄마에게 이리저리 구박받고 당할 때 아버지라도 든든한 벽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아버지는 항상 방관자였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금아를 걱정하고 있다. 고맙기도 해라.

금아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하는데 울컥, 하고 무엇이 목구멍으로부터 치받힌다. 그것은 원망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아버지. 늦었어요.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어요. 아버지로부터 그런 걱정을 듣고 내가 고마와하고 감격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버렸어요.

그때 캄캄하던 집안의 불이 반짝, 하고 켜졌다. 그리고 곧 은아가 뒷뜰로 난 슬라이딩 도어를 밀고 얼굴을 나타내었다.

“아니, 이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들 뭐해?”

은아의 목소리는 항상 투명하고 맑다.예쁜 얼굴처럼 목소리도 예쁜 은아.

“보기는 좋네. 두 분이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보니”

은아는 알까. 내 이 지독한 외로움을. 태어날 때부터 엄마와 주위사람들과 남자들의 관심과 사랑과 주목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은아. 은아는 알까. 내 이 시린 외로움을.

“나도 두 분들 속에 끼고 싶지만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해서…..”

은아는 슬라이딩 도어를 닫고 사라진다. 그리고 집안의 불이 다시 꺼진다.

아버지도 금아도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 뒷뜰에는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금아야”

아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다시 금아를 불렀다.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느릿느릿 말했다.

“네가 세상밖으로 나갔음 좋겠다. 친구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하고…..”

“아버지 먼저 세상 밖으로 나가세요”

한국에 있을 때는 그 누구보다도 친구가 많던 아버지였다. 항상 밤 늦게 들어오던 아버지.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게 일주일에 한번이었던가. 두번이었던가. 그 정도로 아버지는 친구도 많았고 사업에 바쁘던 사람이었다.

사업이 망하면서 한둘 찾아오던 친구도, 걸려오던 전화도 끊어졌다. 그리고나자 아버지는 항상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딱히 하는 일 없이 신문 보고 책 보면서. 그리고 가금 먼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면서.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아버지는 항상 집에 있었다.

미국에 오고나서도 아버지는 친구가 없다. 쉬는 날 항상 집에 있다. 아버지를 찾는 전화도 없다. 물건을 팔겠다는 작심을 하고 걸려오는 텔러마케터의 전화 외에 개인적인 용무로 아버지를 찾는 사람은 없다.

어제 낚시는 누구랑 갔을까. 아버지말로는 직장에서 새로 사귄 한국사람들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 아버지와 변치 않는 관계를 이어갔으면 좋을 텐데.

금아는 생각한다. 정말이지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것일까, 아버지는 무슨 재미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아버지가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그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냥 눈을 뜨니까 하루를 시작하고 배가 고프니까 먹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직장에 가는 로봇 같다.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고 실행하는 로봇.

금아는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진다. 혹시? 아버지도 금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

금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래 살아야 해요, 아버지……”

아버지에게 딸로서 응당 걸었던 기대, 나를 보호해 줄거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던 아버지. 금아는 아버지를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안되었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설 자리를 잃은 아버지가 가엾다는.

아버지가 번 돈으로 풍족하고 윤택한 생활을 보장받았던 엄마는 겉으로나마 남편대접, 가장대접을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후, 미국으로 와서 몇년을 놀던 끝에 지금 수위일과 덴탈랩에서 배달일을 하는 지금,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무시는 극에 달하고 있다.

불쌍한 아버지….

“행여라도 딴 생각하면 안돼요 아버지…..”

금아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금아를 향해 말한다.

“너야말로 딴 생각하면 안돼…..열심히 살 궁리를 해야지…왜냐면…왜냐면 너는 아직 젊으니까……”

금아는 한숨을 내쉰다. 젊지요, 아버지. 죽기엔 내가 너무 젊어요. 그러나 아버지. 늦었습니다. 결심을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어요. 돌이키기엔 내 몸과 마음이 너무 황폐화되었어요. 너무 망가졌어요. 무엇보다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요. 이 세상에 미련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