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그가 어떤 여자의 뒷모습을 본 것은 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마악 들어섰을 때였다. 몹시도 비대한 여자 하나가, 어디가 허리인지 어디가 엉덩인지 구분이 안 되는 드럼통같은 몸을 가진 여자 하나가 앞에서 뛰어 가고 있었다. 아니다. 뛰어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본인은 죽을 힘을 다해 뛰는지는 몰라도 뒤에서 보기에는 뛰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뛰는 흉내만 내는 것 같았다. 뛰기엔 몸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그녀는 임신한 오리처럼 뒤뚱대고 있었다. 뚱뚱한 몸에 어울리는 짧고 굵은 다리로 힘겹게 , 아주 힘겹게 뒤뚱뒤뚱뒤뚱.

주택이 밀집한 길이었기에 낮은 속도로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워낙 짧은 거리라 그 여자를 금방 무심하게 지나치려 했던 정기훈은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아 트럭을 세웠다. 여자의 뒷모습이 낯이 조금 익은, 어디선가 본 여자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다른 이 아닌 금아라는 것을, 지금 공원으로 만나러 가는 길인 금아라는 것을 알아차린 정기훈. 그는 팔짱을 끼고 트럭의 앞창을 통해 금아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 떼지어 기어가는 개미의 행동을 관찰하는 사람의 눈초리를 하고.

여자는 100미터 쯤을 전신의 힘을 다해 뛰어가는 듯 하다가 멈추어섰다. 그리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하다가 제자리에서 위로 아래로 뜀뛰기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조금 뛰어 가더니 숨이 차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뛰다가 걷다가 제자리 뛰기를 하는 여자의 뒷 모습을 정기훈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숨까지 죽이면서.

지금 저 여자는 차가 없어서 저렇게 뛰어 가고 있는가, 하고 정기훈은 처음 그런 금아의 모습을 보았을 때 생각했다. 일주일동안 마루를 깔면서 대충 지켜본 금아의 꼬락서니로 봐서는 차가 없다해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싶었다. 차는 커녕 자전거 한 대도 없을 여자일 것 같았기에.

어쩌면 저렇게 막 사는 여자가 있을까, 하고 금아를 보고 정기훈은 생각했었다.

그녀는 매일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는 것 같았다. 정기훈이 새벽같이 나타나서 한창 일을 하다가 오전 휴식을 취할 때 쯤인 11시. 그때 쯤에야 금아는 어슬렁거리고 나왔다. 사자갈기처럼 산발하고 떡진 머리채를 흔들면서. 남산만하게 나온 배에 손을 넣어 북북 긁으면서. 입이 찢어지라 하품을 해대면서.

그렇게 느리고 게을러터진 여자인 줄 알았던 금아가, 그 여자가 지금 정기훈의 눈 앞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믿지 못할 일이 정기훈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아의 집에서 공원까지는 차로 5,6분이면 도착할 거리다. 그러나 도보로는 적어도 30분 이상은 걸리고 쉬임없이 빨리 뛰어도 20분 이상은 걸리는 거리다. 그 거리를 금아가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고 뛰어서 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인 것이다. 차가 있든 없든지를 떠나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적어도 정기훈이 일주일 동안 보아왔던 금아는 아닌 것이다.

정기훈은 금아가 금방이라도 뛰고 걷기를 멈추고 그냥 땅에 주저앉을 것만 같아서 아슬아슬한 심정이 되었다. 정기훈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속으로 외쳤다.

아줌마! 제발 주저 앉지마. 계속, 계속 그렇게 뛰어! 뛰라구!

다행히 금아는 주저앉지 않았다. 주저앉을 듯, 주저앉을 듯 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기훈은 그런 금아의 뒷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차를 돌렸다. 오며가며 보았던 커피 전문점에 가서 커피를 사올 작정이었다. 뛰는 뒷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래도 모른 척 해야 할 것 같았다. 금아가 뒤라도 돌아본다면, 그래서 트럭 안에 앉아 있는 정기훈을 발견한다면 큰일이었다.

커피를 사들고 천연덕스런 얼굴로, 아무 것도 못 본 사람처럼 금아보다 조금 늦게 나타날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차를 돌리다가 불현듯 정기훈의 머리를 섬광처럼 스치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금아에게 피트니스 회원권을 선물하자는 것이었다. 정기훈은 가능성을 보았다. 금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걷고 뛰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서든지 스타트만 되면 지금까지의 무력한 생활에서 탈피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마침 자신이 회원으로 늘 다니는 피트니트 센타가 지척에 있었다. 그는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그곳으로 달려 갔다.

“회원권을 한장 끊어 주시오”

정기훈은 다짜고짜 카운터로 달려가서 직원에게 말했다. 몇년짜리로 할까요?하고 직원이 물었을 때 정기훈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2년치로!”

그는 2년치 회원권을 끊었다.

“아는 이에게 선물할 겁니다….”

누구에게 줄 거냐고 묻지도 않았는데도 정기훈은 당당하게 직원에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기훈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금아를 나태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게 해야한다는 생각뿐.

그러나 피트니스 회원권을 끊어 트럭에 탔을 때 조수석에 있는 또다른 하얀 봉투를 보았다. 지폐 반 정도 크기의 작은 봉투.

아참! 저게 있었지!

정기훈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금아에게 피트니스 회원권을 선물해야겠다는 일념에 깜빡 잊고 있었던 봉투.

정기훈은 그 봉투를 열었다. 분홍 바탕에 하얀 글씨로 ‘Thank you’ 라고 쓰여진 작은 카드가 나왔다. 그 카드안에는

‘예쁜 옷 한벌 사입으시길. 정기훈’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500불짜리 백화점 상품권이 함께 들어있었다.

조금 전에 옷이 없어서 만날 약속을 취소해야 한다는 금아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정기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옷이 없어 외출하지 못하는 여자에게 백화점 상품권이라니,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선물은 없을 터였다.

그런데 이제는 피트니스 회원권이다. 이것을 백화점 상품권과 함께 금아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정기훈은 그 카드를 들여다보면서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셔츠 윗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예쁜 옷 한벌 사입으시길. 정기훈’이라고 쓰여진 윗부분에다 ‘부지런히 운동해서 예쁜 몸 만들어서’라는 구절을 써넣었다.

정기훈은‘부지런히 운동해서 예쁜 몸 만들어서 예쁜 옷 한벌 사입으시길. 정기훈’이라고 완성된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어찌하다보니 ‘예쁜’이라는 말이 두번이나 반복되었지만 아주 어색한 것 같지는 않았다.

정기훈은 백화점 선물권과 피트니스 회원권이 든 카드를 청바지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트럭을 출발시켰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커피를 사야 했다. 커피 전문점은 늦은 아침이라 그런지 매우 한가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받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커피를 두 잔을 사서 공원에 도착했을 때. 예상했던 것처럼 금아는 미리 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몇줄기가 거머리처럼 얼굴에 찰싹 붙어있는 것을 보면서 정기훈은 측은함을 느꼈다. 보송보송하게 마른 수건으로 금아의 얼굴을 꼼꼼하게 닦아주고 싶은 그런. 참 이상도 하지. 왜 그런 감정이 들까. 그것은 정기훈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기훈은 금아에게 커피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커피가 뜨겁다고 겁을 주며 몇마디 실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면서도 정기훈의 머릿속은 주머니에 있는 봉투를 어떻게 전해주어야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백화점 상품권은 그렇다치고 아무리 생각해도 피트니스 회원권은 괜히 끊었다 싶은 작은 후회가 파도처럼 일렁거리는 것이었다. 호기롭게 앞뒤 생각없이 덜컥 끊어오긴 했다. 그러나 자기가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친구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데, 남편은 더더욱 아닌데 그저 컨츄렉터와 손님 사이로 잠깐 인연을 맺은 것 뿐인데 왜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 하는 후회.

정기훈이 알기로 살찐 여자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매우 예민하고 민감하다. 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자존심 상해한다. 이거 괜한 짓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을 전해줌으로 뺨이나 한대 맞게 되지 않을까.

정기훈은 우려가 되었다. 정기훈은 커피를 마시면서 금아를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무표정인 얼굴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커피마시는 데 열중하고 있는 여자를. 그리고 정기훈은 그동안 보아왔던 금아의 행동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컨츄렉트 라이센스가 있느냐고 도발적으로 물어오던. 그리고 여자라면 남자앞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런저런 행동을 보이던 금아. 그녀로서는, 금아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남자의 귀싸대기를 아무렇지 않게 올려부칠 가능성이 있는 여자였다, 금아는.

기훈은 그동안 피우지는 않고 호주머니에 담아 다니던 담배를 꺼내 한대 피워물었다. 끽연가인 손님을 만날 때를 대비해 가지고는 다니지만 새해부터 건강과 돈 절약을 위해서 입술을 깨물며 어렵게 끊었던 담배였다. 끊었다고는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일이 고되고 힘들 때마다 간절하게 피우고 싶었던 담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입안이 마를 정도로 초조하고 긴장이 되어서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맛도 모르고 담배 한대를 다 피운 정기훈. 그는 다시 금아의 얼굴을 흘낏 바라보았다. 그녀는 부처님처럼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촛점이 분명치 않은 눈이 길 건너편을 향해 있었다. 나무 두어그루와 작은 숲이 전부인 공원 건너편, 아무 것도 볼 게 없는 공원 건너편을.

어쨌든 봉투는 건네주어야 했다. 금아를 위해서 준비한 것이니 뺨을 맞을 때 맞더라도. 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절대 화내지 말아요.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몇 번이나 사족을 달면서, 금아의 눈치를 보면서 마침내 정기훈이 금아에게 봉투를 주었다.

봉투를 받아 든 금아는 일단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안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지 선뜻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물끄러미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열어 봐요……”

정기훈이 재촉을 하고나서야 금아는 특유의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봉투에서 나온 내용물을 잠깐 살펴보았다. 그 시간은 매우 짧았으나 내용물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었다.

금아의 입에서 들릴듯 말듯 가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금방 이마에 주름을 모았다.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복잡한 심경이 찌프린 이마 주름에 나타나 있었다.

임금님의 분부를 기다리는 신하처럼 정기훈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금아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카드를 통째로 휙 던져버리거나, 뺨을 올려부치거나,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고 이따위 짓을! 등의 가시돋힌 비난과 힐책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지거나.

그러나 뜻밖에도, 뜻밖에도 금아의 입에서 나온 첫 말은 고마와요,였다. 고마와요. 이렇게 저를 생각해 주셔서.

“그러니까 그게…..”

정기훈은 예상외의 금아의 반응에 할 말을 잊은 사람처럼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니.

정기훈은 왜 그것을 준비했는지 금아에게 설명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납득하게끔 설명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얼마나 무례하고 건방지고 주제넘은 사람이 될 것인가. 무례하고 건방지고 주제넘은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앞에 앉은 여자, 금아라는 여자를 참담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정기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정기훈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다. 그냥 금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다. 여전히 입을 헤, 벌린 채.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여자가 앞에 앉아 있다. 정기훈이 예상했던 반응을 뛰어넘은 여자가 앞에 앉아 있다. 이럴 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나, 어떻게…..

정기훈이 입을 벌리고 바보처럼 그냥 멍하니 있는 사이 금아가 일어 섰다. 그리고 정기훈이 준 봉투를 츄리닝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한번 고마와요……”

“………..”

금아가 자리를 떠나겠다는 몸짓을 했다. 그제서야 정기훈은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그게요……”

금아가 떠나가기 전에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에 정기훈의 마음이 급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금아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잠깐만 내 얘기를 듣고 가요…..”

“………..”

“뭐가 그리 급해요. 잠깐만 다시 앉아 봐요”

금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정기훈이 이끄는대로 다시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정기훈을 빤히 올려다 본다. 아까처럼 복잡한 감정이 어우러진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왜 그 피트니스 티켓을 구입했냐면요…그리고 왜 그 티켓을 아줌마에게, 아니, 금아씨에게 주었냐면요……”

백화점 상품권이야 감사의 표시로 누구나 보편적으로 주고 받는 선물이다. 그러나 피트니스 회원권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가까운 사이아니면 건네 줄 수 없는 것 아닌가. 왜 그것을 끊었는지 금아에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러나 정기훈은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면, 왜냐면 앞뒤 생각없이 그냥 덥석, 주택가 길을 뛰고 있는 금아의 뒷모습을 보고 무엇에 홀린 것 처럼 그냥 덥석 가서 끊은 것이라 도대체 설명이 안된다.

왜 그것을 끊었을까.

일주일에 걸친 마루공사를 끝냈을 때 정기훈은 처음 내준 견적서보다 좀 더 가격이 올라간 것을 알았다.

문제는 세탁실이었다. 물에 퉁퉁 불어 썩은 나무를 다 뜯어내고 보니 예상외로 할일이 더 많았다. 시멘트 속까지 물에 흠뻑 젖어 있어 도저히 그대로는 마루를 까는 공사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온풍기를 돌려 구석구석까지 습기 한방울 없이 말린 다음 금간 곳과 사이가 벌어진 곳을 보수하고 방수제를 꼼꼼하게 발랐다. 앞으로 혹시라도 또 세탁기 물이 넘치는 일이 있더라도 나무가 썪는 불상사는 방지하도록. 그리고 현관 쪽도 또한 문제였다. 카펫을 걷어내고 보니 시멘트 바닥이 울퉁불퉁 엉망이었다. 그대로 마루를 깔았다가는 발길이 닿는대로 삐걱거리며 소리를 낼 게 분명했다. 그래서 현관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전혀 예상치 못한 작업에 소요한 시간과 자재값이 더해진 것이다. 계산서를 내밀면서 정기훈은 가욋돈을 더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왜냐면 어쨌든 이래저래 더 들어갈 자재값과 인건비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정기훈이었으므로.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간단한 일인 줄 알고 덤벼들었다가 일단 작업을 시작하고보면 시간과 자재와 일손이 배로 더 들어가는 일이 벌어지는.

그에 대한 고객의 반응은 열이면 열, 다 뻔했다.

왜 처음했던 약속과 다르냐. 일을 더한 것은 당신 사정이고 나는 가욋돈을 더 줄수가 없다…….생각지도 못했던 돈이니까 조금 깎아서 지불하겠다는 고객은 양반축에 들어가는 것이고 나머지는 아예 줄 수 없다고 어거지들을 쓰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금아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 나온 견적서보다 몇천불이 더해졌건만 거기에 대해 단 한마디의 의문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냥 쓱 한번 계산서를 훑어보는 게 다였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불평도 없이 작업들어가기 전에 선불로 지불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으로 체크를 써 주었다. 미안한 건 정기훈이었다.

‘돈이 있어보이는 여자같지는 않은데…..’

일주일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금아는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여자의 표본이었다. 샤워를 하는지 마는지 옷을 갈아입는지 마는지 똑같은 색깔과 무늬의 고무줄 바지와 목늘어진 티셔츠 한장만을 걸치고 사는 것 같았다.

늘상 집에 있는 걸로 봐서 직장에 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보이는 것 외엔 하루종일 방문을 닫고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가끔 나와서 커피를 만들어 다시 방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기특하게도 커피를 만들 때 반드시 정기훈의 몫까지 한잔 더 만들어 주었다. 금아가 커피를 내올 때마다 정기훈은 일손을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바닥에 털퍼덕 앉은채로 커피를 마셨다. 인스턴트 커피였지만 금아가 타주는 커피는 항상 맛이 일정했고 훌륭했다.

“커피타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요”

어느 날 금아가 정기훈의 옆에 앉아 같이 커피를 마셨다. 그때 정기훈이 커피맛을 칭찬했다. 정기훈은 금아의 얼굴에 설핏 나타나는 미소를 보았다. 그게 다였다. 미소 한번.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준 것은. 아, 또 있다. 친구 얘기. 미단인가 비단인가 하는 친구 얘기를 또 했었다. 그 친구 얘기를 할 때 금아는 말이 빨라졌고 수다스러워졌고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었다.

얼굴도 몸도 아주 예쁜 여자라고 했다. 끊임없는 외도로 속썩이는 남편과 이혼하고 자식 없이 혼자 사는 여자라고 했다. 심성도 착하고 살림도 잘하고 흠잡을 데라고는 없는 여자라고 했다.

“일단 한번만 만나보기나 하면 좋을 텐데…..”

친구의 온갖 좋은 점을 늘어놓아도 정기훈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자 금아는 혼잣말처럼 말했었다.

왜 이 여자가 이런 얘기를 할까. 정기훈은 금아의 친구라는 미단이에게 전혀 호기심도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금아의 말처럼 일단 한번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도 아예 없었다. 왜냐면 정기훈에게는 여자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돈,

일단은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을 벌어서.돈을 벌어서 한국에 있는 미연이와 창우에게 보내주어야 했다. 불쌍한 여자 미연….

자신이 제시한 금액에서 단 일전도 깎지 않은 전액의 공사대금을 금아로부터 받아들고 그 길로 정기훈이 간 곳은 백화점이었다. 정기훈은 고마움의 표시로 금아에게 옷을 좀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백화점으로 운전해 가면서 미연이를 생각했다. 일주일동안 똑같은 옷을 입고 집에서 곰처럼 뒹굴거리는 금아에게서 미연이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아들 창우가 찍어 보내준 사진속의 미연이, 그녀의 몸은 두어달전보다 더 불어나 있었다. 선명치 못한 화질로 인해- 정기훈은 알았다. 나이에 비해 사려깊은 아들이 아버지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그런 희미한 사진을 보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사진속의 미연은 증세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정기훈은 착잡하고 우울한 심정으로 전화기에 뜬 미연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이 여자가 대학시절 ‘메이 퀸’으로 뽑힐 만큼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여자였던가. 이 여자가 내 품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들던 내 아내였던가. 이 여자가 내 아들 창우의 어미였던가.

지금은 이혼한, 창우라는 끈만 없으면 아무런 연관이 없는 여자, 그렇지만 정기훈은 도의적인 책임을 느꼈다. 싫다는 여자를 억지로 미국에 끌고 와서 우울증에 빠트리게 한 책임, 바로 그거였다. 그러나 그건 정기훈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이었다.

계속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사업체가 손 쓸새도 없이 곤두박칠치고 났을 때 미국행 아니면 지옥행을 택해야 했었다. 창우때문이라도 지옥행을 택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온 것이다.

정기훈은 한때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의 직원이었다. 사원증을 가슴에 늘어뜨리고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가면 부럽고 선망에 찬 눈길을 한몸에 받았던. 그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친구랑 의기투합해 만두 전문점 ‘랑랑 만두’를 차렸다.

처음 몇년동안은 한달에도 몇개씩 지방에 프랜차이즈 지점을 낼 정도였다. 그야말로 불 일듯 사업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렇게 흥하던 사업체가 망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한 방송국의 르포 프로그램을 통해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쓰레기 만두’ 사건의 직격탄을 랑랑 만두가 바로 맞은 거였다.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맛있는 만두를 제공한다’는 모토로 영업해 온 정기훈의 랑랑 만두. 랑랑 만두는 절대로 그런 저질의 재료를 쓰지 않는다고,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하고 발버둥쳐도 사람들은 냉담했다. 랑랑 만두는 초토화되었다. 매일 퍽퍽 지점이 나가 자빠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피를 토할 만큼 억울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사업체를 간신히 정리해 소액 투자이민 방식으로 미국으로 도망치듯 들어 온 것이 9년전이었다. 미국에서 정기훈은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려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말은 건설회사지만 정기훈을 비롯한 직원 두명이 전기와 냉동을 비롯해 온갖 잡다한 공사를 맡아하는 회사였다.

정부에서 내건 E2비자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신없이 정기훈이 밖에서 일하는 동안, 창우는 기특하게도 미국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는 듯 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영어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진 창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집에 혼자 남은 미연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생활을 못견뎌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한국으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울었다. 그러던 미연이가 급기야는 우울증 증세를 보인 것은 미국에 온지 1년후 부터였다.

한국으로 하던 전화통화도 일절 중단한 채 미연이는 커튼을 내려 집안을 밤처럼 컴컴하게 해놓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침 먹은 식탁이 저녁때까지 그대로 있든지 말든지 세탁물이 산처럼 쌓이든지 말든지 축구공만한 먼지 뭉치가 굴러다니든지 말든지 미연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하는 일은 잠자는 일, 그리고 침대에 앉은 채로 마구 먹어대는 일, 그것밖에 없었다.

미연이의 몸무게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고 무겁게 내려쳐진 커튼 만큼이나 집안 분위기도 무거워져갔다.

그러나 정기훈은 미연이 치료가 필요한 병에 걸린지도, 그 병 이름이 ‘우울증’이라는 것도 몰랐다. 무엇보다 정기훈은 너무 바빴다. 끼니를 찾아먹을 새도 없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기에. 한국 사람이 만명 정도인 작은 소도시에서 한국에서 금방 온 사람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건설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기득권을 잡고 있는 현지인들의 ‘텃세’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텨나가야했다. 한국으로 도로 나갈 수는 없었으니까. 벼랑끝에 매달린 사람처럼 죽자사자 사업에 매달려야 했다. 그럴수록 미연이는 점차 뒷전이 되어갔다.

그렇게 몇년을 보내고 마침내. 미연이와 이혼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였다. 미연이의 부모가 방문했다가 짐승의 몰골이 되어있는 딸을 보고는 기함을 했다. 바로 미연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나간 것이다.

정기훈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미연을 따라 한국으로 도로 나가던지, 아니면 이혼하고 혼자 미국에 남던지 하는 것 외엔.

정기훈은 미국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아들 창우는 조부모의 강요에 의해 미연이가 맡는 걸로 결정지어졌다.

공항에서 본 미연의 마지막 모습을 정기훈은 잊지 못한다. 잘가, 하고 미연을 안았을 때 느껴지던 그 감촉을.

창우를 가졌을 때도 여전하던 미연의 한줌 허리가 세배, 네배로 퉁퉁 불어나 있었다. 정기훈은 죄인같은 심정이 되었다. 종달새처럼 명랑하고 해바라기 처럼 환하고 장미처럼 아름답던 여자를 그렇게 피폐하게 만든 책임때문에.

이혼을 했으나 그리고 미연이 쪽에서 별다른 청구를 한 적 없었으나 매달 돈을 보내주기로 정기훈은 혼자 결심했다. 창우의 양육비야 응당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만 양육비외에 돈을 더 보내주기로.

그리고 사업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다시 미연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정기훈의 꿈이었다. 미연이가 다시 온다면 예전처럼 혼자 집에 처박아 두지 않으리라. 여행을 데리고 다니고 많은 시간을 같이 하면서 예전의 미연이로 돌아가게끔 하리라. 미연이의 망가진 심신을 치유케 하는데 전력을 다 하리라.

그러나 그 꿈이 쉬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몇년째 내리 지속되는 불경기에 회사는 문을 닫았고 지금은 혼자 사무실도 없이 일 하고 있다. 성실했기에, 그리고 손재주가 남달랐기에 입소문을 통해 아쉽지않게 공사 의뢰가 들어오긴 하지만 미연이를 데려올 만큼은 아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미연이의 상태였다. 한국으로 나가기만 하면 나아질 줄 알았던 미연이의 병세가 점점 위중해지고 있는 것 같다. 창우는 제 어미에 관해 별다른 말을 안한다. 그러나 사진으로 봐서 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연아. 잘 지내지? 살이 약간 오른 네 모습, 여전히 예쁘네. 마른 모습보다 훨씬 섹시해 보이고 말이야.

언젠가는 다시 합치게 되기를 꿈꾸면서 행여나 미연의 마음을 다칠까, 정기훈은 마음에도 없는 말로 늘 위로한다.

그러나 정기훈은 살찐 여자라면 질색인 사람이었다. 자신을 돌보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는, 먹는 것에만 집중해서 퉁퉁 살찐 여자한테는 혐오감마저 느꼈다. 살찐 몸이 싫은 게 아니라 자기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신의 몸을 돼지처럼 함부로 굴리는 그 자체가 싫은 것이다.

그렇게 살찐 여자가 마루공사로 알게 된 금아였다. 길에서 오다가다 만난다면 정말이지 말도 섞고 싶지 않는 모습의 금아. 그런 여자를 정기훈은 지금 앞에 놓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피트니스 회원권, 다른 뜻이 전혀 없어요, 다만….”

정기훈이 말까지 더듬거리며 애써 이유를 설명한다.

“일단은요.뭔가를 금….금아씨에게 해주고 싶었고….뭔가를….뭔가를 말입니다…”

정기훈은 다시 금아의 얼굴을 훔쳐 본다. 역시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왜냐면요. 왜냐면 내가 제시한 금액을 한푼도 깍으려 하지 않고 공사대금을 순순히 지불한 사람은 금아씨가 처..처음, 처음이었기에….그래서..”

말이 자꾸 헛돈다. 정기훈은 자신이 오늘 참 바보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어떤 것으로라도 보답을 해주고 싶어서. 그래서…..정말 그랬었던 것 뿐이고….. 그..그래서….”

사십몇년을 살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고 생각했던 정기훈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당황하지 않고 담대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정기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 헛돌고 꼬인다. 허둥지둥한다. 횡설수설한다.

지나치리마치 담담하고 침착하고 다소곳한 금아의 태도때문이었다. 처음, 견적을 내기 위해 방문했을 때 라이센스 번호를 달라고 당돌하고 대담하게 굴던 금아. 만약 지금 그녀가 그런 식으로 나왔더라면. 남이야 돼지같이 살이 퉁퉁 쪄 있던지 말든지 네가 무슨 주제로 이런 것을 주냐, 하고 거칠게 공격을 해왔더라면 정기훈 역시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아줌마야. 우선 거울이나 좀 보고 말씀하시지. 여자이길 포기하지 않았다면 운동해서 살 좀 빼라고. 그래서 이걸 주는 거야, 하고 쏘아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예상외의 반응이 나왔다. 그래서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정기훈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금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때 정기훈은 보았다. 금아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