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거리를 두고 데이트하던 남자친구랑 최근에 살림을 합친 직장동료 Q . 그 동성커플에게 문제가 생겼다. 상대방 남자가 끊임없이 벗은 상체를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는 게 이유다. 동성이지만 어쨌든 사랑해서 같이 살기로 했으면 서로에게 충실해야지 왜 그런 사진을 매일 올려 타인들의 관심과 눈길을 끌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Q와 누드를 올린 것도 아니고 상체사진만 올리는 게 뭐가 문제되느냐는 상대방남자의 의견이 계속 충돌하기  때문이란다.

Q는 그런 사진이 올라가 있는 걸 볼 때마다 울화가 터지고 실망감으로 참담한 심경이 된단다. 그래서 화도 내보고 애원도 해보고 달래도 보고 나름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견해가 너무 달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Q가 보여준 그 남자의 페이스북에는 아닌게 아니라 온갖 포즈의 벗은 상체 사진이 거의 매일이다시피 포스팅돼 있었다. 하루 두세시간씩 짐에서 산다더니  군살 하나 없이 근육으로 덮힌 대단한 몸이긴 했다. 동성연애자만 아니라면 여자들도 혹할 만큼. 사진마다 멋있다, 섹시하다, 부럽다는 리플라이가 수백개(물론 다 남자들)가 달려 있었고 ‘싱글이냐,만약 싱글이라면 만나자’는 리플라이도 서너개 눈에 띄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한숨을 쉬면서 Q가 내 의견을 묻는다. 젠장, 날 보고 어쩌라고. 그러나 얼마나 절박하고 답답하면 전문가도 아닌 내게까지 조언을 구할까. 정 안될 것 같으면  다른 생각을 해보던가 아님 참고 살라던가 무슨 말이든 해줘야 할 텐데 딱히 그 상황에 마땅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게 불현듯 떠올라서 그 말을 전했다.  남자에게 뭔가 결핍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끊임없이 타인들의 시선과 주목을 갈망하는 것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니 그게 무엇인지 잘 찾아보라고. Q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Q의 남자를 만나면서 내 말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됐다.

쥐꼬리만한 월급받아 멕시코의 부모님한테 보내고 아파트세 내고 차도 없이 버스타고 다니는 Q가 안된 생각이 들어서 우리집 유리창을 닦아주면 수고비를 주겠다고했더니 남자친구를 대동하고 온 것이다. 남자는 사진에서 볼 때처럼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몸과 큰 키와  숱많은 머리카락과 준수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신이 몽땅 다 준 것은 아니었다. 피부가 영 아니었던 것이다. 카메라의 필터 기능을 썼는지,  ‘뽀샵’ 을 했는지 사진에는 티 한점 없이 매끈하고 깨끗해 보이던 얼굴이었는데 직접 보니 온통 여드름으로 뒤덮혀 있었다. 그동안 났던 여드름자국과  현재 난 여드름과 앞으로 솟아날 준비를 하고 있는 여드름으로  얼굴이 단 한곳도 성한 데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자신의 얼굴을 최대한 안 보여주려는 듯 고개를 외로 꼬고 옆눈으로 대화했다. 가엾은 남자같으니. 피부에 열등감이 있으니 다른 쪽으로 보상받고 싶어 그렇게 몸 사진을 올려댄 것이다.

내실이 단단하게 다져진 사람들은 남의 이목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나 편한대로 입고 걸치는 반면에 내면이 허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귀걸이 목걸이 팔찌 주렁주렁 달고 겉치장을 많이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또한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사치품이나 고가품에 목숨을 거는 사람일수록 현재의 자신에 만족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유명 브랜드랑 나를 동일시 여겨 그 물건을 지참했을 때 남들이 나를 크고 높여볼 거라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비싼 물건을 소유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남들이 알아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런 면이 많다고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살았을 때, 그리고 미국이민 초창기 무렵, 나도 그랬으니까.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곤궁한 살림살이에서도  겉으로 보여지는데만  치중했었다. 없으니까 있어보이려고, 못생겼으니 예뻐보이려고, 무식하니까 머리에 뭐 든 사람처럼 보이려 갖은 애를 다 쓰면서 허세를 부렸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바뀌었다. 남편은 자신감, 자존감 바닥인 나를 끊임없이 일으켜주고 세워주고 북돋아 주었다.  

남편의 눈에 씌워진 콩깍지는 벗겨질 줄을 모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함없이  내가 최고라고한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미인대회 나가도 될 몸매라고, 박사보다 더 똑똑하다고, 전문가보다 인테리어를 더 잘 한다고 칭찬해준다. 

물론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내 자존감은 남편으로 인해 봄비 맞은 죽순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갔다. 아울러 헛헛하던 내면이 자신감으로 가득가득 채워졌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처럼 남들의 이목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내면이 텅텅 비워져 있을 때는 남의 말 한 마디가, 시선 하나가  내게 날카로운 가시가 되었는데, 그래서 상처도 쉽게 받고 화도 금방 내었었는데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별 신경이 쓰여지지 않는 것이다.

‘SNS’를 통해 비싼 상품을 소유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꾸미는 사람들을 풍자한 ‘있어빌리티’ 란 신종어가 생겼다는 기사를 읽었다.  현재 자신의 현실및 처지와는 동떨어진 가방 구두 등의 물품들을 입고 걸친 사진들과  비싼 식당의 음식들 사진과 외국여행 사진들을 빚을 내서라도 향유해올리면서 남들에게 있어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만약 남편을 만나지 못했었더라면  나도 그들의 대열에 합류해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남편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