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대형할인매장에 갔습니다. 늘 그렇듯이 남편이 카트를 끌고 앞서가고 나는 이것저것 새로 나온 물품들을 구경하며 종종걸음으로 뒤따라갑니다. 집에서 신으면 좋겠다싶은 털이 북슬북슬한  양말을  잠시 살펴보는 사이에 남편이 없어졌습니다. 양말을 던져놓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남편의 행방을 찾는데  고기 섹션에 낯익은 모습이 보입니다. 그 쪽으로 걸음을 빨리 하다가  멈칫합니다. 뒷 모습, 남편의 뒷 모습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때문입니다. 한때는 나무처럼 곧고 바위처럼 단단했을  남편의 등, 그 등이 구부정합니다.

그러고보니 지난 11 월로 남편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네요. 육십을 바로 앞에 놓고 있네요. 풍성했던 머리카락이 성글어지고 가는 주름이 얼굴을 뒤덮고  시력이 떨어져 안경을 쓰게 되고 몸의 형태가 변하면서 이제 중년의 티가 역력합니다.

그 아름다웠던 사람이. 그 빛나던 사람이. 

남편에게 다가가 미친척하고 팔짱을 낍니다. 남편이 나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습니다. 그 웃음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세월은 얼마나 남았을까...

오랜 싱글생활을 청산하고 내가 결혼한다 했을 때 온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중앙일보 기자일을 하면서  소 갈데 말 갈데 다 쫓아다니니 이 지역에서  나름 유명인사라서 떠들썩했을까요. 아니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계숙이란 여자에 비해 신랑이 가진 조건이 월등히 좋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깜짝 놀라서 떠들썩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 내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1에서 10까지  점수를 주자면 0. 돈도 없고  변변한 직업도 없고 학벌도 없는. 햇볕도 잘 들지않은 방 한칸의 아파트에서 바퀴벌레처럼 음습하게 살고있던 일 미터 오십 이 센티  키의 못생긴 이혼녀.  

반면 남편은 나랑 정반대 조건을 갖춘 남자였습니다. 일단 직업이 좋았어요. 컴퓨터 전문가. 여섯자리 연봉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귀여운 여인’ 에 나왔던 리쳐드 기어랑 흡사한 외모를 가진 남자였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군살하나 없는 몸에 적당한 키여서  특히 양복을 입으면  아주  맵시가 났어요. 양복 모델같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주위사람들이 신기해죽겠다면서 물었습니다. 이런 멋진 남자를 어떻게 만났냐고. 도저히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남자라 이겁니다. 나는 짐짓 장난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지'라고. 정말로 길에서 만났을까요? 그동안  단 한번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남편과의 만남을 오늘 글로 풀어 놓으려고 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독자님들이 궁금해하니까.

확실히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과의 만남은 운명이라는 말을 빼고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거든요. 아니면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신이든 산신령이든 용왕님이든 그 어떤 신이 태어난 후로 한번도 기를 펴지 못하고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나를 불쌍히 여겨 가호를 내렸을까요.

혼자 사는 생활, 비록 햇볕 한 줌 안 드는 싸구려 아파트일망정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산다는 게 너무나 좋았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힘든 건 경제적인 문제, 두번째는 이 넓디 넓은 미국땅에 피붙이하나 없다는 외로움과 두려움. 

그래서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남자는 일찌감치 포기를 했습니다. 까다롭고 눈 높은 한국남자들한테 내 조건가지고는 근처도 못 갈 걸  미리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주제파악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적어도 미국남자들은 한국남자처럼 학벌 직업 집안을 따지지않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디서 미국남자를 만납니까? 당시 중앙일보에서 일을 했기에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은 거의 한인들뿐이었습니다. 

바깥쪽 활동하는 취미라도 있었으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예나지금이나 나는 집귀신입니다.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습니다. 얼마나 문밖 나가는 걸 싫어하냐면 슈퍼마켓 한 번 가는 것도 내겐 큰일일 정도라면  말 다했지요. 미루다가 미루다가, 먹을 게 수돗물밖에 없을 지경이 되어야 마지못해 가는데 갔다오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습니다. 큰 숙제를 해치운 기분입니다. 그렇게 집 밖 나가는 걸 싫어하는데 무슨 수로 미국남자를 만납니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요. 마음은 뻔한데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겁니다.

그러던 중 큰일이 생겼어요. 한 여성의 일생을 대필해주고 받은 원고료로 새 차를 샀는데  라이센스판도 갈기 전에 사고가 난 것입니다. 비 오는 밤에 취재를 다녀오다가 물이 고인 웅덩이에 차가 빠져서  모터가 나가버린 겁니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딜러로 보험회사로 뛰어다니면서 혼자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런 일은 남자가 나서야 쉽고 간단하게 끝낼 수 있다는 것을요. 영어도 잘 못하는 동양여자에게 그 아무도 성의있게 일 처리를 해주지않는 겁니다.

그래서 작심했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해가 가기 전에 (그때가 11월  중순 경)남자를 반드시 만나야겠다고. 그렇게 작심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미국신문을 뒤지는 거였습니다. 기자일을 하니 한인사회뿐 아니라 미 주류사회 정황도 알아야겠기에 로컬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싱글을 위한 페이지’ 란 섹션이 있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페이지는 독신자들이 돈을 낸 후 광고를 해서 상대를 찾는 일종의 ‘만남의 장’ 같은 거였어요. 성별, 키, 몸무게, 취미, 생김새 등 본인 소개와 어떤 상대를 원하는지 상세히 기술해 놓은 손가락 한 마디만한 작은 광고가  개개인의 고유번호와 함께 빼곡히 나와 있는 페이지입니다. 

그들에게 연락하는 방법은 아주 쉬웠습니다. 싱글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해서  내가 선택한 사람의 고유번호를 누르면 상대방 보이스함에 연결이 됩니다. 그 보이스함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남기면  상대가 내 메세지를  듣는 것입니다.메세지를 들은 후 연락을 하던 안 하던  그건 그 사람 자유고.

혹시 이상한 인간을 만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지만 미국남자를 만날 길은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았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부딪쳐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일단 빨간 볼펜으로 나한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남자의 광고에 큰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내가 원하는 남자는 뭐 별거없었어요. 내 주제가 비루하고 보잘것없는데 뭐 중뿔나게 잘난 사람을 찾겠습니까. 나보다 두어살 많은 남자(어린 사람은 싫어요. 예나지금이나)키가 별로 크지 않은(내가 땅에 붙을 정도로 작으니까)남자. 그리고 낚시나 등산 등 밖으로 나가는 취미가 아닌 집에서 책 읽는 남자( 내가 문밖 나가는 것을 안 좋아하니까).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옷을 세련되게 입는 남자(남자나 여자나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  자기관리도 잘하고  모든 면에 센스가 있더라고요). 뭐 대충 그랬습니다. 직업이나 학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싱글페이지를  이 잡듯이 뒤지며  다섯명 정도의 쓸만한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남자를  찾아냈습니다. 자, 이제 남자들에게 연락해서 내 소개 메세지를 남기는 일이 남았는데 무턱대고 전화를 할 수는 없는 일. 더구나 영어로 말해야하는데.  

일단은 종이에 내 소개를 썼어요. ' 담배, 술, 마약 안 하며(싱글 페이지의 남자들이 찾는 첫째 필수적인 조건들이 위의 세 가지였으므로)작은 몸집, 귀여운 외모.(예쁘지 않으니까 귀여운 걸로 어필하려고. 지금 생각하면  노력이 참 처절합니다)독립적이고 오픈된 성격, 독서를 좋아하는  동양여자임. 날 만나 볼 생각이 있으면  남기는 전화번호로 연락하기 바람'.

몇 번을 읽어보고 자동응답기에 녹음을 해서 들어 본 후  다섯 남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연락이 왔냐구요? 당연히 왔죠. 꾀꼬리같은 내 목소리에 반하지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 앞 다투어 만나자고 하더군요.  물론 만났지요.

그런데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절대로 집 근처에서는 만나면 안 될 것 같아 먼 쇼핑몰 근처 커피숍까지 가는 수고까지 했는데 어쩌면 모두 다 하나같이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스타일인지.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남자. 수염 기른 남자. 문신있는 남자. 귀걸이, 목걸이한 남자.  술이 치렁치렁한 가죽 자켓에 부츠를 신은 남자…세련된 옷차림은 고사하고 평범한 차림새를 한 남자 하나가 없는 겁니다.

자영업으로 365일 같이 붙어있는 부모를 보면서 자랐던 나의 남편상은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왕이면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사무직 남자. 아이고, 일찌감치 꿈을 깨야했어요. 내 눈에 차는 남자는 다른 여자 눈에도 찬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요. 내가 원하는 남자들이 남아있을리가 있나. 누가 채어 가도 채어 갔지.

너무너무 실망이 되었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애써 자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광고를 훑었고 적당하다싶은 남자들에게 전화를 했고, 만났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어요. 길에서 만나면 눈길도 안 줄 남자들만 줄줄이 걸리는 겁니다.

독자님들,  철딱서니 없이 외모에만 치중했다고 나를 나무라지 마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 스타일인지 아닌지 3초만에 결판이 난다잖아요. 첫 인상이 어느정도 호감은 가야지요.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어야 이것저것 물어 보면서 탐색전을  펼쳐보든지 다음에 한 번 더 만나든지 할 것 아닙니까. 이건 뭐 처음부터 인상이 팍 써지면서 단 일 분도  얼굴을 마주 하기가 싫은데 어떻게합니까.

하여튼 그렇게 열 명 넘는 남자들을 만나면서, 기대하고 실망하면서 그 해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1월 초순, 12 월달 전화빌을 받고 뒤로 넘어갈 뻔 했어요. 세상에, 만상에! 평소보다 세 배가 더 나온 겁니다. 신문사로 한 전화때문이었습니다. 신문사가 무슨 자비심으로 싱글들 만남에 애를 써줄까요. 다 돈 때문이지. 싱글페이지의 전화라인 이용료가 1분당 3달러였습니다.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 그렇게 엄청난 전화료를 물게될지 몰랐습니다.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그렇게 비싼 전화료까지 지불해가며 노력을 했건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예요. 또 한 해를 넘겼으니 말이예요.

식탁에 펼쳐진 신문과 전화빌을 노려보면서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비탄에 빠져있던 나는 결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해보기로. 그래서 전에 했던 것처럼 싱글페이지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마땅히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랑 한 번 만났던 사람이 다시 게재한 것도 있었어요. 저나 나나 마땅한 사람을 못 만난 게지요.

두 페이지의 싱글페이지를 다 뒤졌지만 별로 마음 가는 사람이 없어 힘없이 볼펜을 놓으려던 찰나였습니다. 젤 위에 있어 눈에 띄지않아 그냥 지나쳤던 한 남자의 프로필에 눈에 들어 온 것은.

 ‘인생에 필요한 게 뭔지 나는 알고 있음. 바로 화목한 가정. 당신은  뭐가 필요한지? 난 서른  일곱살. 어느 인종이든 상관없으니 나랑 화목한 가정을 갖고자 하는 여성은 연락 바람’

갑자기  ‘바로 이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마구 치솟았습니다. 차별화된 문구때문이었어요. 다른 남자들은 취미를 같이 할 사람, 로맨틱한 밤을 보낼 사람, 같이 여행을 갈 사람 등 재미를 우선으로 하고 있는데 ‘화목한 가정’ 이라니. 매우 가정적이고 건실한 사고를 가진 사람 아닙니까.

서둘러 전화를 했지요. 한두번 해보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런 전화하는데 벌써 도가 틀대로 트지 않았겠어요. 나는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해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다음 날 남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몇가지 신상교환을 한 후 우리는 만날 약속을 했지요. 남자가 커피숍이나 식당이 아닌  교회 앞으로 만날 장소를 정합니다. 좀 뜻밖이다 싶었으나 꽃단장을 하고 나갔습니다. 제발 이번에는 실망하지 않게 되길,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타입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만 되길 간절히 빌면서.

나도 남들처럼 데이트라는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나란히 앉아 책도 보고 생일날 꽃도 좀 받아보고 공원에 손잡고 산책도 다니고. 그러나 맘에  전혀 안 드는 남자랑 할 수는 없는 일, 더구나 이제 나이도 있고해서  결혼까지 생각해야하는데 아쉽다고해서  대충 만날 수는 없었어요. 내가 원하는 남자,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남자,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교회 앞 분수대, 남자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일 미터 칠십 오센티 정도의 키에 적당한 몸집, 백인이었습니다. 짧은 곱슬머리. 문신은 없어보였고 쇠붙이는 몸에 달지 않았습니다. 수염도 안 길렀습니다.  청바지에 셔츠, 검은색 쟈켓을 입고 있었습니다. 세련된 차림은 아니지만  아쉬운대로 그만하면 됐습니다. 일단 겉모습은 합격이었어요.

우리는 통성명을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회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교회안에선  무슨 큰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저기 기웃대면서 구경을 했습니다.

 남자에 대한 느낌은 굉장히 차분하고 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점수를 많이 주었지요. 내가 천방지축으로 설치는 성격이니 좀 진중한 사람이, 내가 수다스러우니 말이 좀 없는 사람을 만났으면 싶었는데.

그렇게 교회에서 첫 만남을 가지고 두번 짼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고 세번 째엔 영화를 봤습니다. 

그는 와코비아  은행의  IT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몇 달이 지날 때까지도 나는 그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IT 계통에 무지한 까닭이었지요.  집안도 좋았고  학벌도 좋았고 무엇보다 인물이 좋았습니다. 그 직장에서  일한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벌써 좋아한다고 데이트신청을 하는 여자가 서너명이나 되었답니다. 

그런 훌륭한 조건의 사람이 왜 싱글페이지에서 여자를 찾고 있었냐구요? 운명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세 시간 떨어진 곳에서부터 이사온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곳 카운티에서 일하다가  와코비아 은행으로부터 더 많은 연봉 제의를 받고 옮겨 온 것이지요.

그는 엔티크깡통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이사를 하면서 그동안 모아놨던 깡통 중 몇 개를 팔아치워야겠단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벼룩시장에 광고를  낼 생각에 신문사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교환원이 싱글페이지 라인으로 잘못 연결해 준 겁니다.

싱글페이지 담당자가  전화를  다시 벼룩시장으로 연결해주겠다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묻더랍니다. 혹시 싱글이냐고. 그렇다고 하니까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나더니 반값으로 할인을 해 줄테니 싱글페이지에 데이트 상대찾는 광고를 내보지않겠냐고 하더랍니다. 남편이  좀 망설이니까 효과는 자기가 보장한다면서 자기를 믿고 딱 일 주일만 내 보라고 강권하더래요. 그래서 남편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광고를 냈고 그 첫 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이 바로 나였다는 것입니다. 나 외엔 아무도 전화를 해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말로 운명같은 만남이지요? 신문사에서 전화를 잘 못 연결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약 내가 남편한테 전화를 하지않았다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인연 아닙니까.

그날 내가 잽싸게 전화를 하지않았다면 남편은 자신한테  눈독 들이는 회사의  여자들과 데이트를 나갔을 겁니다. 그래서 그 여자들 중 하나와 어떤 식으로든 엮어졌을 겁니다. 주말이면 금 캐러 산에 가고 주중에는 직장일 하느라 오랜 생활 싱글로 남아 있던 남편은 나이도 있고해서 하루빨리 좋은 가정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라했거든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남편은 내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릴 때부터 동양여자랑 결혼할 것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내 전화 메세지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싱글페이지란  매체를 통해 남자를 만난다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행동을 취한 내가 너무나 대견스러웠습니다.

만약 그때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컴컴한 아파트 방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짚신도 짝이 있으니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어도 누굴 만났어도 만났었을 거라고요? 아니요. 짚신의 짝은 그저 짚신일 뿐이지 않겠어요. 비록 난 짚신일지언정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를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노력했고 마침내 결실을 얻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