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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사원증사진을 새로 찍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런 건 미리 좀 얘기를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그날따라 차림새가 엉망이었던 나는 좀 황당했다. '파마'기가 풀려 부시시한 머리와 손질하지 않아 엉망으로 자라서 뻗친 눈썹은 그렇다치고 하필이면 목 늘어진 스웨터를 입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옆 동료한테 스카프를 빌려 목에 두르고 립스틱을 빌려 바른 후 사진을 찍었다.

오후에 새 사진이 붙은 사원증을 받았는데 어머나, 이게 누구?! 도저히 나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아리따운 여자 하나가 거기 있었다.

나는 새 사원증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화장도 전혀 안 하고 립스틱 하나 달랑 바른 얼굴이 이렇게 괜찮을 수 있다니.

조명, 각도, 사진기, 그리고 사진사의 기술은 단연코 아니었다. 휴게실 한쪽 벽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손바닥 반 만한 싸구려 카메라로, 회사에서 막일 하는 할배가 포즈잡으라는 얘기도 없이 그냥 한방에 팍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필요했다. 그래서 친한 아줌마에게 새 사원증을 보여줬다. 그녀가 사진이 아주 잘 나왔네, 하더니 덧붙혔다.

“아니야. 사진이 잘 나온 게 아니야. 언제부터인지 이계숙씨가 많이 예뻐졌어”

지난번 한 할배의 팔순잔치에서 내가 한 말씀했다. 마이크 잡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할배와 내가 보통 인연인가. 내 결혼식 때 아버지대신 같이 입장(入場)해 준 할배 아닌가. 그래서 꼭 한마디 하고 싶었다.

백여명의 하객들이 자리를 한 가운데 단상에 오르는만큼 차림새에 신경을 좀 썼다. 머리야 손질 할 줄 모르니 그냥 빗기만 했지만 분도 좀 많이 찍어바르고 옷도 가장 드레시한 것으로 골라 입었다.

역시 여자는 꾸민 만큼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그날 예쁘다, 멋있다는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특히 하객들중에는 십년만에, 그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 만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입모아 하는 말이 와아, 이계숙씨 참 많이 예뻐졌네. 예전 모습이 하나도 없어졌네였다.

마침 그 자리에는 식당업하는 K씨도 있었다. 이 못 생긴 얼굴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민폐이니 신문지를 덮고 다니라고 늘 나를 놀렸던 장본인. 나는 K씨에게 회심의 미소를 날리면서 일갈했다.

“지금 다 들었지? 앞으로 신문지 필요없겠지?”

내가 보기엔 이제 신문지를 덮고 다녀야 할 사람은 식당업하는 K씨다. 육십고개를 1년 앞에 두니까 한살이라도 어려보이려고 발악을 하는데 그 방편의 하나로 머리 스타일을 바꾸었다. 그런데 그 스타일이 어려보이는데는 일조를 할런지는 몰라도 ‘삼돌이’가 따로 없는 것이다. 꺼벙하고 모자라 보인다. 보기 싫다고 내가 몇 번 얘기를 해주었는데도 꿋꿋이 그 머리를 고수한다. 머리 스타일만 예전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훤한 인물인데 말을 영 안 듣네.

젊었을 땐 한 인물하던 사람들이 나이들면서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본다. 얼마전에 이 동네에서 손꼽히게 잘 생겼다던 Q씨를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와, 저렇게 늙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경각심이 저절로 들었다. 완전 범죄형이 되어 있는 거였다. 밤에 보면 무서울 정도로. 거의 평생을 좋지않은 일에 연루돼 있어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맡아놓고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늙으면서 외모까지 이상해지는 경우였다.

또한 나이 들면서 점점 준수한 외모로 바뀌는 사람이 두엇 있다. J씨가 그렇고 C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특히 몇년만에 만났던 S씨는 눈 나쁜 내가 못 알아볼 정도로 멋있어져 있었다.

이제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동안 살면서 행했던 행동들과 말과 생각과 소양이 굳어져 외면에 나타나 있으니까. 항상 남을 시기하고 못잡아먹어 안달복달하던 사람들은 맹수같이 흉폭하게 변해 있고 반면 자기것 손해보고 한결같이 남에게 베풀고 선하게 착하게 살던 사람은 부처님같이 인자하게 변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거울을 본다. 솔직히 여전히 못 생긴 얼굴이다. 세월흘렀다고 갑자기 예뻐졌을리 없는 얼굴이다. 그러나 편안하고 안정스런 분위기로 변해 있는 건 사실이다. 한마디로 부드러워 보인다. 왜냐면 나 역시 착하고 선하게 사느라 애썼으므로. 적어도 누구처럼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남 뒷통수 치고 배신하지는 않았으므로. 신의와 믿음을 중요시하며 살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