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씨가 새 집으로 입주한 후 집들이를 했다.

집들이의 가장 큰 묘미는 그 집만의 특별하고 고유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엘에이서 공수해왔다는 순대에다 아구찜에다 평소에 구경할 수 없는 산해진미가 잔뜩 차려져있었다.

모두들  접시에 각자 원하는 음식들을 가득가득 담은 후 자리를 잡았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홍해바다 갈라지듯이 갈라져서. 남녀칠세 부동석도 아닌데 늘 그렇게들 따로 앉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냐? 당연히 남자들이지. 할배들, 아자씨들 틈으로 천연덕스럽게 비집고 들어간다.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라는데 가끔은 이게 틀릴 때가 있다. 옆에서 누가 지적을 해주거나 일깨어줘야  깨닫거나  상기하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가 남자들하고만 자리를 같이하는 걸 몰랐다.  한 지인이 얘기를 해주기 전까지는.

 어느날 그녀가 말했다.

“이계숙씨는  참 용감해. 어떻게  그렇게 스스럼없이 남자들만 모여있는 쪽으로 혼자 척척 걸어가서 끼어들 수 있는지.”

 그녀의 말인즉슨  보통 한국여자들은  수줍어서 그렇게 못 한다나? 여자들이 모인 쪽으로 가서 앉는 게 더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말이다. 

예전에 나를 보고싶다고  저녁 초대를 했던 몇몇 독자들도 같은 말을 했었다. 내 칼럼에 나오는 사람들을,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다 데리고 오라고 해서 무리를 지어 갔더니 모두들 깜짝 놀라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다들 남자들뿐이네?그리고 어떻게 다 나이많은 사람들이네?"  

그렇다.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거의 남자들이다. 왜 그럴까. 10년 넘게 신문기자 일을 해서이다. 그때 만났던 단체장들이 모두 다 남자들이다. 그렇게 일로 엮어진 인연은 일이 끝나게 되면 자연히 흐지부지되기 마련인데 나는 아직도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나의 이 따뜻한 인간미를 바탕으로 말이다.

 독자들은  많이 의아하고  궁금할 것이다. 어찌됐던 남자와 여잔데, 아무리 나이많은 사람들이라해도 어쨌든 남자와  여자사이에는 ‘친구관계’라는 게 절대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호기심으로 물을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섬씽’이 없었냐고. 아이고, 내 인물을 봐라. 그럴 일이 있게 생겼나.

인물도 인물이지만  어떻게 다른 일이 생길 수가 없는 게 남자들이 나를 여자로 안 봐주니까. 거기에는 내 성격과 목소리가 큰 몫을 한다. 기차 화통 삶아먹은 것 처럼 큰 목소리,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분잡하고 수선스런 성격. 보통 한국남자들은 참하고 다소곳하고 얌전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와는 완전히 상반대인 내가 그들 눈에 들겠나.

남자들이 나를 여자로 안 보는 것 처럼 나 역시 그들을 남자로 안 본다. ‘동성’사이에서만 가능한  ‘바이아그라’에 대한 얘기도 같이 하니까. 오랜 세월을 같이 지지고 볶다보니 형제들 사이에서만 가질 수 있는 '우애'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하고 놀면 좋은 게 있다. 웬만한 내 흉허물이 다 덮어진다는 것이다. 여자들속에서라면 왕따를 당했어도 열 번은 당했을 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아무래도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사사건건 덜 따지니까. 덜 예민하니까.  

또한 남자들은 대화의 폭이 넓어서 좋다. 가족, 의식주, 그리고 한국연속극등  여자들이 입에 올리는 화제가 거기서 거긴데 비해 남자들은 아무래도 사회경험이 많으니까 대화의 주제가 다양하다. 한국서의 직장, 사업부터 시작해 군대생활,월남참전,정치, 현재의 한인사회등 무궁무진하다.

늙으니까 더더욱 그들과 나 사이에 남자와 여자라는 경계가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성이란 관계를  넘어선 동지이자 동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