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내 뒷 자리에 있는  Q가 동성연애자란 사실을 알게됐다. 결혼을 전제로 남자와 살고 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회사에서 두 사람밖에 없다.  나, 그리고  Q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R.  

Q와 친하게 지내는  몇몇  동료들조차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도그럴 것이  Q가 남미쪽 사람답게  수염도 많고  워낙 우락부락하게 생겨서.  여자쪽 성향을 가진 남자라고는  꿈에서라도  상상을 못해서.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 처럼.  

Q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놀랍기도 했지만 궁금도 했다.  왜 내게 그런 일급비밀을  털어놓을까.  말 안 하면 끝까지 내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Q가 말했다.  

“누구에게나 믿고 말 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 바로 너 같았어.한 일년 지켜보니까  믿음이 생겼거든. 널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

고맙기도 해라. 누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 참 감격스럽고 특별한 기분이었다.

얼마전 휴일 아침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돌아왔더니 한 지인으로부터 부재 중 전화가  대여섯통 와 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이렇게 발발이 전화를 했을까. 리턴 콜을 하려고 전화기를 드는데 다시 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대뜸  폭포처럼 급하게 흘러나오는 첫 마디.

 “자기 들었어?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놀라운 일이 다 있네!”

자초지종 들어보니 친하게 지내는 이의 동생에게 생겼던 좀 불미스런 일에 관한 얘기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돼 상대방의 치명적인 결점을 알게 되어 헤어졌다는 얘기. 그  결점이라는 게 입에 올리기도 좀 뭐한 거여서 가족들이 많이 당혹해했었다.

이제야 소문이 다 났구나….

사실 나는 진즉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족으로부터 직접 그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응, 난 알고 있었는데..."

같이 펄쩍 뛰며 놀래주어야 하는데 대수롭지않은 목소리로  심드렁하게 말하자 지인이 서운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다.

"그으래? 근데 왜 내게 말 안 했어?"

가족이 신신당부를 했었다. 당분간은 비밀로 해달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그집 어머니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친한 이웃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 소문이 퍼져서 지인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미안해요. 말하지 말라는 부탁을 받아서 말이지..." 

표면적으로는 별 문제없이 잘 사는 것 같아보이던 한 커플이 최근, 깨졌다. 결혼을 전제로 같이 살던 사람들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경악했다. 나는 경악하지 않았다.  그들이 깨질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얼마 전, 그러니까 깨지기 전, 그들 둘을 만났었다. 심각한 사안이 생겨 몇날며칠을 싸웠는데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단다. 누구 말이 맞는지 나보고 판단 해달란다.

판사도 아니면서 둘을 앉혀놓고 장시간동안 양쪽 얘기를 들었다. 서로의 주장이 바위처럼 단단하고 강했고 전혀 양보하고 굽힐 생각들이 없었다.

나는  ‘역지사지’를 들먹여가며 나름대로 설득하고 중재를 했다.  내 설득이 먹혔는지 대충은 납득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때 내가 받은 느낌. 이 커플은 오래 안 가겠구나, 곧 헤어지겠구나, 하는 느낌.

그들에 관한 얘기 역시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나를 믿고 서로의 치부를 털어놓은 것이므로.  

내가 예상한 대로 그들은 헤어졌다. 헤어지고 난 후 그들을 둘러싸고  온갖 루머가 난무했다. 얼토당토않은 루머들이었다. 나는 그 루머들을 정정해 줄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를 참고해서.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하고 대단한 게 있다. 말 많고 수다스럽기로 이 동네서 버금가는데 하지 말아야 할 얘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안 한다는 것이다.하지말라는 당부를 받은 얘기는 그 누구에게도 입을 다문다는 것이다. 

 나랑 사이가 틀어진 사람이 하나 있다. 나름 친하게 지냈는데  어떤 일로 내 뒷통수를 친 인간이다. 자기가 불리한 입장에 처하니까 그동안의 신의고 나발이고 다 던져버리고 나를 모함하고 배신한 인간이다. 그녀에 관해 동네방네 떠들고 싶은(나한테 한 걸로 봐서는 정말로 소문내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러나 나는 조개처럼 입 다물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고 한 얘기들이기에. 입이 근질거려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는 일이 있어도  나는,나는 끝까지 신의를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