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배가 식식거린다. 집에 냉장고가 네 대나 있는데 부인이  한 대를 더 산다고 해서 대판 싸웠다나. 식구나 많으면 말을 안 한단다. 할배와 부인, 달랑 두 식구. 

할배가 말했다.

“전쟁나도   우린 아무 걱정 없어. 몇 년은 거뜬없이 먹을 만큼의 음식들이 쌓여있어서 말이야.  10년 전 한국갔다 오면서 사온 멸치가, 그리고   5년 전에 만들어 넣어 놓은 깻잎 장아찌가  개봉도 못 한채  그냥 냉장고에 있다면 말 다했다니까”

못 먹고 못 살던 민족이라  먹는 데 포한이 져서 그런가. 우리 한국 여자들은 다람쥐가 도토리 쌓아놓듯 온갖 식료품들을  가득가득 쟁여놓아야  안심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장아찌나 절임등 온갖 저장식품들을 만들어 놓는데 갖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 같다.

문제는 자녀들은 다 출가해 나가고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 많은 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먹지도 않을 것, 제발 그만 좀 사들이고 그만 좀 만들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고.

반 갤런짜리 우유 한 통 들어 갈 틈 없이 꽉꽉 들어 차 있는 냉장고가  만약 고장이라도 나면?생각하기도 끔찍하단다.

그리고 돌덩이같이 딱딱하게 언 정체모를 식품들이 터질듯 들어 있는 냉동고는 웬만하면 열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가 굴러떨어져 나와서 발등 깨기 쉽상이니까.

우리집은 냉장고가 한 대다. 누구나 다 있는 김치 냉장고도 없다. 그나마 있는 냉장고도 거의 비어있다시피 하다.  나는 음식을  만들면 약간 모자라게 한다. ‘조막손’이라고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 놓는 게 싫어서다.

코스코나 한국마켓에 다녀온 날부터 나는 스트레스 수치가 는다. 뭐가 가득 차 있거나 쌓여있는 걸 보면 숨이 막혀서.   

대신 나는 다른 욕심이 있다. 바로 거울이다.

 옷이나 구두나 핸드백이나 장신구등은 그래도 절제가 가능하다. 꼭 마음에 드는 게 있더라도 아이고, 저걸 또 사서 뭐하노.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입고 거칠 건데 하며 돌아설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거울만큼은  안 된다.

이 못난 인물, 비춰 볼 게 뭐가 있다고 거울만 보면 환장을 하는지.

며칠전에 거울을 또 하나 샀다. 스프링쿨러 부속품을 산다는 남편을 따라 '홈디포'에 갔다가 전신 거울을 발견했다.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에다 가격도 괜찮았다. 앞뒤 잴 것 없이 거울을 카트에 턱 실었더니  남편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놓을 데나 있냐? 나는 대답했다. 만들면 되지.

집에 가져와서 보니 정말로 둘 데가 없다. 알맞은 자리에는 이미 다른 거울이 걸려있고 놓여 있었으므로. 그렇지만 환불을 하러 갈 생각은 없었다. 억지로 자리를 만들어 끼워 넣었다.

지난 토요일. 동네의 아는 할매가 그라지 세일을 한다기에 구경하러 갔다. 칠십 평생 모은 살림살이, 많기도 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싶은 잡동사니부터 40년전에 한국에서 가져왔다는 자개장까지. 더욱 놀라운 건' 골드 스타'란 브랜드명이 선명한 전자렌지. '금성'에서 '골드스타'에서 'LG'로 바뀐 세월이 얼만데!

할매가 말했다. 

"이 전자렌지는 30불은 받아야 혀. 그동안 몇 번 쓰지도 않았던 새 거여"

속으로 혀를 차면서 내가 말했다.

"쓰지도 않으면서 강산이 몇 번 변할 세월동안 뭣하러 끼고 있었어요?"

물론 아까와서였겠지. 한 때는 찬란하게 빛나며 제 몫을 하던 가치있던 것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낱 고물과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들. 그러나 우리는 못버린다. 아깝다는 이유로. 언젠가는 쓸 데가 있을 거란 이유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 결심했다. 버리는 거야 나만큼 잘 버리는 사람이 세상에 없을 정도이니 됐고 이제는 그만 사들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