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 때부터 나는 텔레비젼 드라마를 일절 안 봤다. 미국와서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두 열광하는 드라마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그런 내가 몇년 전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미씨 사이트에 이 드라마 이야기로 매일 도배가 되는 걸 보고서.

더구나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여자들이 ‘칠봉이파’와  ‘쓰레기파’로  편이 갈려 싸움까지 하는 걸 보고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 난리법석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어느 주말, 큰맘먹고 날잡아서  이 드라마를 찾아서 보았다.  

역시 나는 드라마 체질이 아니었다. 겨우 한 편 보고 집어치웠다. 그 한 편 보는데도 지루해서 하품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거기서 내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으니. 흐뭇한 마음으로 들여다본 장면이 있었으니. 극중 경상도 출신인 여자 주인공이 한 남자에게 오빠야, 오빠야 하고 부르는 장면이었다.

내 고향 경상도에서는 오빠를 ‘오빠야’로 부른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 ‘오빠야’를 한번도 불러보지 못했다.오빠야로 부를 사람이 없었기에. 사촌, 육촌을 통털어 내가 제일 맏이였던 것이다.

자라면서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오빠야가 있는 사람이었다. 머리통을  쥐어박히더라도, 풀방구리 쥐 드나들게 온갖 심부름을 하더라도 듬직하고 잘생긴 오빠야가 있었으면.기타도 치고 어려운 영어노래도 잘 부르고 동네처녀들이 흠모해서 연애편지를 배달할 수 있는 오빠야가 있었으면. 

재미있게도 지금에야  내게는 오빠야가 생겼다. 한명도 아니고 대여섯명이나.

칼럼에다 할배들 얘기만 줄창 써대서 사람들은 내 친구들이 모두 칠십 팔십 먹은 할배뿐인 줄 안다.그래서 주위에서 아주 대놓고 그런다. 

"오갈 데 없는 할배들이니 당신같이 못 생긴 여자하고 놀아주지 젊은 사람들이 미쳤냐, 시간 아깝게?"

뭔 말씀을!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사십대도 한 명 있고 오십대들도 두엇 있다. 그리고 육십대도 서넛있다. 내가 ‘오빠야’로 부르는 사람들이다. 대충 소개를 하자면 석효 오빠야, 두찬이 오빠야, 태훈이 오빠야, 정기 오빠야, 사무라이 오빠야등이다.

그들은 나보다 대여섯살에서  열살 정도 많은데 어째 하다보니 오빠야라고 부르게 되었다. 뭐 룸살롱도 아닌데 남의 남편한테 오빠야라니, 징그럽다고 얼굴 찡그리지 말아주기 바란다. 그 사람들을 알게 된 건 미국오자마자였으니. 그때만해도 다들 젊었고 그야말로'동네오빠야들'이었다.  싫으나 좋으나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 마땅한 호칭이 없다는 것이다.  할배들이야 전직, 현직 단체장이 태반이니 ‘정 회장님’ ‘박 이사장님’ ‘권 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되지만 이들은 그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아무개씨’라고 불렀다가는 건방지다고 한대 얻어맞을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아자씨’로 부를 수는 더더욱 없는 게  아자씨라고 부르기엔 우리들이 너무 친하다.  

오빠라는 호칭만큼 정겹고 다정스러운 호칭이 또 있을까.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 호칭의 이미지가 많이 변질되고 훼손되어진 것 같다. 애인 사이에도 오빠, 부부 사이에도 오빠, 술집 여자들과 손님 사이에도 오빠, 마구  불러젖히니까.  그래서 친 오누이 사이가 아니면 이 호칭이 썩 산뜻하지 않고 예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친오누이가 아니면 뭔가 이상야릇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다.

그런데 '오빠'말고 경상도식의  ‘오빠야’에는 그 이상야릇한 기운이 좀 덜한 것 같다. 그래서 맘놓고 부를 수 있다. 

위에 쓴 그 오빠야들이 나를 두고 말한다. 생긴 것도 '헉' 소리 나는데 행동도 남자처럼 거칠고 말투는 투박하고 게다가 목소리마저 괄괄하기 이를 데 없어  여동생으로 봐 주기 힘들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그들이 나를 여동생으로 보든 말든  상관 없다. 나는 다만 오빠야라고 부를 사람이 있는 게 중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