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동네의 친하게 지내는  한 아자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기 친구 중   '조 사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내 글을 아주아주 좋아한단다. 그 조사장을 마침 만났는데 내 목소리를 한번 듣고 싶어하니 인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사양할 틈도 없이 기습적으로 전화를 바꾸어주었다.

지인들과 수다떨며 저녁을 먹고 있던  나는 입속에 있던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조 사장이란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뭐라고 말했는지 지금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항상 자기를 낮추는 글이라 좋다’ 는 그의 말에 '낮추는 게 아니고 원래 생기길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깔깔대고 웃은 기억밖에.

평소에도  조리있고 차분하게 말을 하는 편이 아니지만  갑자기 받은 전화라 무척 놀라고 당황했던 것 같다. 더구나 나는  칭찬을 매우  어색해 하는 사람이다. 과분한 칭찬에 몸둘 바 몰라  마구 횡설수설한 것이다.

전화를 끊고나니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아, 그렇습니까. 이거 참으로 영광입니다 하고 겸손하고 차분하게 대답했으면 좋았을 걸. 더구나 알고보니 조 사장은 일흔이 넘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이많은 양반한테 ‘원래 생기길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촐랑거리며 까불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건방지고  버릇없는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내 칼럼이 있는 '미시 유에스 에이'라는 여성 사이트에서. 새 글을 올릴 때마다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주던  '미미'라는 이름의 독자한테 마구 실수한 것이다.

어느날 미미라는 그 독자가  이런저런  인사를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신세대 이름을 가진 여성이니 당연히  한참 어린 여성으로 지레짐작한 나는 대뜸 반말로 답장을 보냈다.  그녀와 몇번 편지를 주고받다가 알은 사실이었는데  나보다 열살이나 나이가 많은 여성이었다.  아이고,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백배사죄를 한 건 두 말할 것도 없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반말하고  앞뒤 확인없이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는 이 버릇때문에  솔직하고 꾸밈없다는 칭찬도 듣지만 욕을 더 많이 먹는다. 건방지고 오만하다고.

나라는 사람이 정말로 건방지고 오만한 사람일까. 건방과 오만은 남보다 내가 월등하다는 우월감에서 나오는 건데 내가 정말로 우월감이 많은 사람일까.

최근 직장에서 새 프로그램의 트레이닝을 받았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는 입사한지 얼마 안 되는 이십대 초반의 남자였다.  귀퉁이가 다 해진 싸구려 비닐 가방에 담아 온 점심이 '시리얼'한 봉지였다. 우유도 없이 물에 타서 하루종일 그것만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오지랖 넓은 내가 가만 있을 수 있나. 사정을 물어봤더니 아주 딱했다. 양친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혼자 사는데 버는 돈은 학비(대학생이었다!)대기도  빠듯해서  거의 매일을  시리얼로  끼니를 떼울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이 갖고 있는 몇 개의 ‘백 팩’ 중  상표도 떼지 않은 새 것이 있길래  뺏아다가 그에게 갖다 주었다. 그리고  남편 밥을 하면서 맛있겠다 싶은 것이 있으면 좀 덜어다가 갖다주고 있다. 나는 나보다 형편이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면 어떻게해서든지 도와준다. 그렇지않으면 내 마음이 불편해서 살 수가 없으니. 

주위에 나랑 완전 상반되는 여자가 있다. 아무리 어린 사람에게도 존대말을 하는. 누구에게나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는 여자다. 적어도 나처럼 말투때문에 남한테 욕 먹을 일은 전혀 없는 여자다.  그녀와 나는 늘 비교된다. 몇몇 할배들은 말한다. 제발 좀 보고 배워라.  

그러나 나는 그녀를  절대 닮고 싶지 않다. 그녀는 예의는 바를 지언정 가슴이 차가운 사람이다. 여지껏 그녀가  남을 위해 커피 한잔을 사는 걸 본 적이 없다.  말 함부로 해서 건방지다는 소리는 들을 지언정 남의 힘든 사정을 보면 같이 가슴 아파하고  조금이라도 도와주려 애쓰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