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꼭 만나고 싶다는 독자가 있었다. 사는 곳은 나랑 한참 떨어진 데지만 가끔 일때문에 이쪽으로 올라온다고 했다.나를 보고싶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나. 단골로 가는 '민츠' 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자그마하고 마른 체구의 독자,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 말을 잘 못한다. 농아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어릴 때 열병을 앓아서 청력을 잃게 된 거였다. 일단 말을 배우고 난 뒤 농아가 된 경우라 손짓과  필담으로 얘기를 나누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열심히, 그리고 씩씩하게 사는, 매우 똑똑하고 영민한 여성이었다. 직장도 있었다.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러 전 가주를 누비는 일. 

나는 그 여성의 이야기를 중앙일보 칼럼에 썼다. 남편 역시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는 장애인이라 하나뿐인 아들을 한국의 친정에 맡겨 양육하고 있다는, 유방암 투병 등 녹록치 않은 현실속에서도 종달새처럼 밝고 환한 웃음을 가졌더라는 그 여성의 이야기를.

얼마후 한국 MBC 방송국의 ‘사랑’ 이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칼럼을 감동깊게 읽었다며 그 여성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다고.

현재 방송국과 그 여성은 촬영 스케쥴과 기타 제반 사항을 조율하고 있다. 

처음, 나는  별 생각없이 그녀와의 만남을 칼럼에 썼다.  한두번 만난 후 그냥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버릴 가벼운 인연으로 생각하면서. 그랬는데 내 칼럼으로 인해 그 여성의 인생에 그렇게 특별하고 획기적인 일이 생긴 것이다.

우리집과 가까운데 내 단골 식당이 있다.  위의 독자랑 만났던 민츠이다. 주인이 한국인인 베트남 퓨전 식당인데 분위기, 맛, 서비스, 청결도 등 어느 것 하나 맘에 들지 않은 게 없다. 오지랍 넓으라면 이 동네서 손꼽히는 내가 가만 있을소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식당을 소개했다.

그리고 주인에게 일렀다. 한류 열풍이 만만찮으니 외국인들에게 김치를 팔아보라고. 주인은 내 조언에 따라 김치를 담가 팔기 시작했는데 이게 대박을 쳤다. 얼마나 잘 팔리는지 일주일에  큰 박스의 배추가 모자랄 때도 있단다. 

며칠전 그 식당에를 갔더니 주인이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데려갔던 지인들이  다른 손님을 데려가고  그 손님들이 또 다른 손님들을 소개해  30% 이상  매상이 늘었다고. 그중  P씨와는 더할 수 없이 가까와져서 와인 선별도 해주며 식당 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단다.

나로 인해 그 식당이 그렇게 문전성시를 이룰 줄 몰랐다. 나는 다만 혼자 그 보물같은 식당을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4년 넘어 내게 친필 편지를 보내오는 독자는 간호원이다. 평소 짜게 먹는 식습관이 있다는 나를 걱정해 그게 얼마나 건강에 나쁜지 줄줄 적은 편지를  보내왔다. 그녀는 끝에 적었다. 

"제발 좀 짜게 드시지 마세요"

평소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짠 음식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나였지만 그녀의 편지를 읽고 반성을 많이 했다. ‘제발’이란 간곡한 단어가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지금부터 짠 음식을 줄이고 천년만년 내가 장수한다면 다 그 친필독자 덕분일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떤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탈선한 자녀를 둔 부모들이 늘 하는 말, 우리 아이는 착하디 착한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비뚤어졌다는 푸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노름에 빠진 친구가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노름장에 동행하게 된다.

당신은 주위에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인가. 당신은 그들에게 좋은 인연인가, 나쁜 인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