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산다는 한 남자독자의 전화를 받았다.

오랫동안 나의 글을 좋아했다면서 한참 칭찬을 하더니 ‘글값’ 으로 점심을 사겠다고 한다. 공짜 좋아하는 나다. 우리 동네였으면 얼씨구나, 이게 웬 떡이냐하고 신바람나서 나갔을 거다. 그러나 집에서 20마일이상 벗어나는 걸 싫어하는 나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그가 재촉했다.

 “잠깐만 나오세요. 잠깐이면 되잖아요”

잠깐이라니, 반나절은 걸릴 거리를 잠깐이라니. 아무래도 내 사는 지역을 모르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내가 말했다. 여기 새크라멘토인데요.  전화기속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

“새크라멘토라고요? 아니, 사시는 데가 이쪽이 아니었습니까?”

내 친구 할배들이었으면  분명 한마디 해주었을 거다. 눈을 뜨고 다니요? 감고 다니요? 그러나 나는 상냥하게 일러주었다. 칼럼 사진 바로 밑에 제 사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는데요, 새크라멘토라고. 그가 탄식의 한숨을 내뿜으며 말했다.

“지난 십년동안 이계숙씨 칼럼을 한 자도 빼지않고 꼼꼼하게 읽었지만 새크라멘토라는 글자는 못 봤습니다….”

참 재미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해석이 안 된다, 남자라는 생물체는. 위의 독자와 같은 상황을 수시로 만들어 내는 남자가 있다. 바로 내 남편이다. 모자라는 건지 멍청한 건지 아이큐가 낮은 건지 어떤 땐 내가 막 헷갈린다.  IT계통에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는 걸 보면 머리는 비상한 것 같은데.  

스토브에서 뭐가 끓어 넘치거나 타고 있는 걸 봤을 때 누구나 먼저 하는 일은 얼른 달려들어 불을 줄이거나 끄는 일일 것이다. 남편은 그런 걸 할 생각을 않는다(못하는 것 같다). 그냥 소리를 지른다. 그 상황을 내게 알려만 줄 뿐이다.그 상황을 알려줄 때에 꼭 들어가는 말 '니'라는 말. '니 김치찌개가 타고 있다' '니 곰국이 끓어 넘친다'.... 

화장지를 다썼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 새 걸로 갈아놓아야 한다는 건 아주 기본적인 일인데 그걸 못한다. 심만 덜렁 걸려 있는 걸 발견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비가 와서 밖에 널어 둔 빨래가 젖고 있어도 밤이 돼 허연 빨래들이 귀신처럼 어둠에 잠겨있어도 보고만 있다. 요즘은 내가 전화가 있으니 빨래 걷으라고 문자를 보내는데 유치원생처럼 시킨 일은 또 잘 한다.

며칠전 아침에 자동청소기를 돌리면서 식탁과 의자를 옆으로 밀어놓은 채로 출근했다. 퇴근하고 오니 의자 한 개와 식탁만 제 자리에 와 있다. 나머지 세 개 의자는 아침에 내가 해놓은대로다. 저녁밥을 먹어야하니 자기 앉을 의자 하나만 달랑 원위치로 갖다 놓은 거다.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오늘은 그냥 넘기지 않으리라, 전투태세를 취하는데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으니 일단은 왜 그러는지 심리상태를 알아 보자는 생각. 나를 열받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 게 아니라면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화부터 내지 않고 물어보길 잘했지. 이왕 끌어다 놓는 의자라면 네 개를 다 제 자리에 갖다놓는 게 맞지 않냐는 내 말에 남편의 진지한 대답인즉슨 그런 사소한 게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단다. 저녁밥을 먹어야 하니 한 개는 끌어다가 앉았지만 나머지 의자들은 눈에 들어오지가 않더란다.

컴퓨터랑 연관된 일에는 금방 눈이 반짝 떠지고 아이디어가 마구 생기고 신바람이 저절로 나지만 먹고 자는, 일상생활과 어우러진 일에는 아예 손톱만큼의 관심조차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보는 아닌 것 같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 보면. 소소한 것들이 그냥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뿐인 것 같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일을 강제로 들게 할 수는 없는 일. 어쩔 수가 없구나. 눈에 잘 들어오는 내가 해야지. 내가 다 하면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