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독자로서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던 아랫동네의 한 할배가 나를 만나러 왔다.  일부러 온 건 아니고 이쪽 지역으로 골프를 치러온 김에  잠깐 시간을 냈다고 했다.

어쨌든 날 보러 온 독자를 그냥 보내서 되겠나. 이 근처에서 제일 괜찮다는 일식집, ‘사무라이’에서 저녁대접을  해 보냈다. 주문을 마친 후 할배가 한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식당의 밝은 불빛 아래서 이리저리 내 얼굴을 살펴보던 할배가  말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자학합니까. 빼어난 미인은 아니더라도 뭐 그만하면 대충 괜찮구만요...."

 왜 늘 못생겼다, 못생겼다 중앙일보 칼럼에다 줄기차게 자기비하를 하냐는 얘기였다.

위에 쓴 할배와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지난 여름, 출간한 자신의 책을 내게 전해주려고 일부러 한인회장 이취임식에 왔다는 신예선 선생도 그랬다. 선생은 몇번이고  되뇌어 말했다.

“몸매고 얼굴이고 의상이고 다 멋있기만 하구만. 어딜 내놔도 빠지지 않을 거야. 못생겼다는 얘기 이제 그만 좀 해”

 박래일씨 등 옆의 일행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신 선생님 말이 맞아요….”

그날 한인회장에 취임하는 인사가 나랑 가까운 사람이었다. 신경써서 옷을 입었고  얼굴에도 이것저것 찍어발랐다. 그래서 좀 나아보였나보지. 맨얼굴을 봤으면 그렇게 말 안 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요리책 출판을 계기로  장선용 선생과 ‘카톡’을 하게 됐다. 카톡에 깔린 내 프로필 사진을 본 선생이 말했다.  

"40 세 지난 얼굴은 자기가 만든 거라는 얘기들었지? 늘 웃으며 재미있게 살아서인지 이계숙씨 모습이 나이들면서 몰라보게 달라졌네. 참 편안하고 좋은 얼굴이야. 못생겼다는 글 그만 써도 될 것 같아"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났는데 세월간다고 갑자기 달라질리가 있나. 나는 여전히 못생겼다. 무심코 거울보다가 놀라서 헉, 하고 뒤로 물러날 정도로. 그런데  아니라고, 쓸만해졌다고  주위사람들이 입을 모으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미의 관점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꼽는 미인형과  여기는 좀 다르다는  거다. 한국은 아직도 가는 선(線)과 연약한 외모를 선호한다. 이를테면 계란형 얼굴, 백옥같이 하얀 피부, 도톰하고 작은 입술, 갸늘갸늘한 팔다리, 쌍커풀 진 눈 등.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못생기고 이상하게 생긴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처럼 일정하게 정해진 미인의 틀이 따로 없는 것 같다. 토인같이 두툼한 입술, 빗이 들어가지않을 것 같은 곱슬머리, 풍선같이 큰 엉덩이, 장대같이 큰 키, 까만 피부, 하얀 피부 등  온갖 독특한 외모를 가진 수백가지 인종이 모여 살기에. 그래서 한국사람들의 눈들이 ‘다름’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건강미와 개성미를  더 쳐준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과  튀어나온 광대뼈, 큰 입술. 내가 그렇게 생겼다!

둘째는  내 외모에 대한  얘기를 하도 칼럼에 많이 써놔서다. 도대체 얼마나 못생겼길래, 하고  최대한으로 기대치를 낮추고 나를 보게 된 사람들이다.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안 하는 법이니까. 

한국의 한 여배우는 죽어도 바지만 고수한단다. 부득이 치마를 입어야 할 경우에는 한 여름에도 두꺼운 스타킹을 신는단다. 다리에 흉터가 있어서 그런단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생긴 흉터인지 몰라도 그걸 감추려 애쓰는 게 얼마나 큰 고역인가. 그 흉터는  본인의 실수로 인한 게 아닐 것이다. 아니, 본인의 실수로 생긴 거라해도  그게 뭐 그리 감출 일인가. 흉터있는 게 죄도 아닌데.

한국의 방송의 상대방 외모비하가 도를 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못생긴 사람들을 대놓고 놀려대고 웃음거리를 만들면서 사람취급을 아예 안 한다는. 죄인 대하듯 한다는.

예전에 어떤  여성출연자가 말했단다. 키 180 이하의 남자들은 모두 루저(실패자)라고.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분개했다. 저런 싸가지를 봤나!

나는 생각한다. 내 노력으로 개선시킬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건 ‘내 죄가 아니다’ 라고.

작은 키를 늘릴 수 없고 짤뚱한 팔다리를 길게 할 수 없고 유전으로 빠진 머리를 다시 나게 할 수 없고 검은 피부를 희게 할 수 없고 둔탁하게 짧은 목을 기린처럼 뺄 수 없다.

인위적인 방법을 쓰면 조금 나아지긴 하겠지만  순전히 내 노력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타고난 외모는 죽었다 깨어나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못생긴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죄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움추려들지 않는다. 감추지 않는다. 당당하게 말한다. 나 못생겼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