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주위에 사랑에 빠진 남녀가 있다.

둘다 싱글이었고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지만   별로 서로를 의식하지 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어찌어찌하다 ‘눈이 맞았다’는 두 사람.

둘 다 나이는 꽤 되었다. 내일모레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니, 사랑할 날이 얼마 남지않았기에, 어쩌면 생애 마지막 사랑이 될 지도 모르기에 더욱 애틋하고 소중한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들은 뜨겁게 사랑한다. 옆에서 보는 내가 배 아플 정도로.

직장에서 신입사원들이 대거 입사했다. 내 책상 옆으로 이십대의 여자가 새로 왔다. 같은 또래의  신입남자가 그 여자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린다. 처음엔 친오빠인 줄 알았다. 먹을 것 갖다주고 뜨거운 물도 갖다주면서 동생 챙기듯 연신 챙겨주길래. 알고보니 애인이었다.

재미있는 게 여자는 날씬한 몸매와 인형같은 얼굴로 어딜 갖다놔도 빠지지 않을 외모인데 남자는 아주 못생겼다. 키도 작고 몸도 땅달하고 얼굴에 여드름까지 숭숭 나있다. 어딜봐도 잘 생긴데라고는  없다. 그런데도 둘은 죽고 못산다. 어쩌다 고개를 빼고 보면 둘이 껴안고 만지고 쓰다듬느라 정신없다.  

이것들아. 대강들 좀 해라, 하고 어느날 내가 짖궃게 소리질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의 사랑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아랫동네에 육십대 초반의 싱글남자가 있다. 식당을 두 개나 갖고 있고 외모도 괜찮고  성격도 좋고  뭐 조건이 그만하면  좋다. 양복 한 벌 얻어 입을 욕심에 내가 나섰다. 이 동네 여자들 몇 명을 찍어다 부쳤다. 그런데 뭐가 제대로 안 된다. 나이가 안 맞단다.  외모가 자기 스타일이 아니란다.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단다. 취미가 같지 않단다. 아이고, 중매라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포기했다. 양복은 물 건너 갔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사는 이치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지만 아직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정말로 신비롭고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 남녀가 서로 좋아한다는 거다.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 중 서로에게 ‘필이 꽃힌다’는 일이, 서로를 맘에 들어한다는 일이.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쪽에서 좋아하면 저쪽이 싫어하고 저쪽은 날 좋아하는데 또 이쪽이 싫으니까. 양쪽에서 50대 50으로 서로 맘에 들어 좋아하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 '인연'을 주관하는 신(神 )이 나서야만 되는 일 일것 같다. 

내 싱글시절을 돌아보아도 그런 것 같다.

내 남자보는 눈은 아주 단순했다. 유식하고(내 머리가 텅텅 비었으니), 좀 세련되고(철딱서니없게도), 이지적(理智的)이고 샤프한(내가 촌스럽게 생겼으니)외모를 갖춘 남자에다 나처럼 독서를 좋아하면 족했다. 직업이나 재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없으면 같이 벌면 되니까. 

지금 생각해도 별로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남자를 만나는 게 참 힘들었다. 오랜동안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봐도 그런 남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운좋게 그 비스무리한 남자를 만난다해도 그 쪽에서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한다. 그러니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나!

가수 이선희가 부른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란 노래가 있다.

그 가사 중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부분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옆에 있는 남편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  72억 인구 중  서로를 알아보고 좋아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일은 기적중의 기적같은 일이다. 우리는 기적을 이룬 사람들이다. 서로를 알아보았으니.  서로 사랑했으니.  그리고 결혼까지 했으니까.  

수세미같이 헝크러진 꼴로 퍼져앉아 양푼에 밥 비벼 먹고 있는 아내, 올챙이같은 배를 내밀고 코 후비면서 텔레비젼만 보고 있는 남편, 정말로 꼴보기 싫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저절로 솟구친다. 그렇지만 잊지말자. 우리는 한때 불같은 사랑에 빠졌던 사람들이었음을. 그 중에 그대를 만난 사람들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