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친구  희주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열어보지 않는다. 시차를 감안한다해도 이틀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식당을 경영하는지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친구였다.  자정이 지나서도 내 문자에 즉각 답을 했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팔이 아파서 수술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목숨과는 관계없는 수술이라고는 했지만 혹시 수술이 잘 못되었나, 수술받으러 병원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나....

‘걱정이 팔자’ 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나는 만 가지 상상을 하면서 마음을 조렸다.

사흘 째 되던 날, 그때까지 내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음을 안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희주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희주가 연락이 안 되네요. 거기 괜찮아요? 아무일 없습니까?"

1분도 안 돼 희주남편으로부터 답신이 돌아왔는데 희주가 보낸 거였다.

“친구야. 전화를 물에 빠트리는 바람에 전부 불통이다. 나 살아있으니 염려 말아라”

아이고, 다행이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거의 일 주일만에  전화가 복원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희주가 말했다.

“말 마라. 나랑 연락 안 된다고  천지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이번에 알았다, 친구야. 내가 그동안 참 잘 살았다는  것을.”

암, 잘 살았고 말고.

지난 번 봄, 몇십년만에 동창회에 참석했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 하나같이 희주를 칭찬했다. 인심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나누고  베푸는데 일등이라고. 손도 커서 배 고픈 사람에게 후하게 하니 식당도 늘 손님들로 만원이라고.

희주의 전화를 계기로 ‘진정한 친구’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내가 어느날 갑자기 연락두절이 된다면 누가  제일 안타까와 할까. 누가 진심으로 내 신변을 걱정해줄까.

예전에  내 친한 할배의 전화가 갑자기 며칠동안 안 되던 일이 있었다.

통화 안 돼 음성녹음을 남기면 몇 시간을 넘기지 않고 리턴 콜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몇 번이나 전화하고 녹음을 남겼는데 연락이 없었다. 

혹시 내 전화가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른 사람을 시켜보았는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깜깜무소식이었다. 정말로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본인은 끄덕없다고 큰 소리치지만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쇠약하고 위태로와 보이는 할배였는지라.  혹시 위독한 건 아닐까. 세상을 떠나버린 건 아닐까.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장례식에서 내가 대표로(그 할배랑 내가 제일 친했기에) 조사(弔詞) 를 하는 상상까지 했다.

도저히 안 되겠길래 집으로 전화를 했다. 부인이 받아서 전화를 바꾸어주었다. 멀쩡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할배. 수영장 청소를 하다가 전화를 물에 빠트렸단다. 타 지역에 사는 아들이 주말에 온다고 해서 아들이 얼른 와서 고쳐주기만 기다리고 있단다.

몇 년전, 옆에 포진해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진정으로 날 생각해주는 친구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하는 글을 쓴 적 있다. 이런저런 방법이 있었는데 차가 고장났다는 핑계를 대고 새벽 두세시에 픽업을 부탁해서 두말 않고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 진정한 친구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요즘은 방법을 다르게 써야겠다. 전화가 갑자기 불통됐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판단하면 되겠다. 요즘 늙어가느라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은데 에라, 모르겠다하고 잠수나 한 번 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