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몇달에 걸쳐 집안을 싹 바꾸었다.

바닥을 인조자기(porcelain)로, 카운터톱을 대리석으로, 그리고 캐비닛을 하얀색으로 대대적인 교체작업을 한 것이다.

역시 돈을 좀 들이길 잘했다.  몇 달만에  반짝반짝 빛나는 새 집이 되었다.

손바닥만한  샘플만 보고 색깔이랑 재질을  골랐는데 (한두푼짜리가 아니라  완공한 후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엄청 걱정이 되었었다!)세 곳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역시 이계숙이다.  내 마누라  미적(美的)감각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고  남편도 감탄해마지 않는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인테리어 디자이너쪽으로 나가보란다.

자랑 잘하는 내가 가만 있을소냐.  '월남국수' 먹으러 오라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집안을 둘러본 사람들이  '여자와 집은 돈을 들여야 한다더니 그 말이 맞다',  '모델 하우스가 따로 없다', 입모아 덕담들을 했다. 그런데  D 씨는 다르게 말했다.  

“집이란 그냥 잠만 자는 곳인데 왜 돈을 쳐들여(D 씨는 분명히 그렇게 표현했다)멀쩡한 자재를 다시 바꾸는데? 나라면 현찰을 가지고 있든지 투자를 해서 돈을 불리겠다….”

나는 대답했다.

"내가 바깥출입을 잘 안 하고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잘 알잖아?  내겐 실내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D 씨가 또 말했다. 

"그렇다해도 집에 돈 너무 많이 썼다. 난 절대 내가 사는 집엔 돈 안 들여. 비 안 새는 지붕하고 바람 막을 벽만 성하면 되지..."  

D 씨로 인해 크게 느낀 게 있었다.

부부에겐  인생의 중점을 어디다 두는가가, 즉 가치관이 같은 게 참 중요하구나 하는 것.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그게 맞구나, 하는 것.

사실은  카운터톱과 마루, 그리고 캐비닛 교체 공사를 꼭 할 필요는 없었다. 지은지  12년밖엔 안 된 집이라  어디 부서지거나 흠이 난 것은 아니었기에. 그러나  교체한 이유는 단지 기존 것들의 색깔및 재질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었다. 집 내부시설도 유행을 타는지  처음 집을 사면서 웃돈을 주고 '업그레이드' 한 것들이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구형으로 변해갔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싫증이 났기에.

만약 남편이 위의  D 씨처럼 집에 돈 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거나 근검절약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아직도 멀쩡한 것들을 왜 갈아치워? 여펜네가 어떻게든 돈 쓸 궁리만 하고 앉았네, 하는 남편이었다면 말이다.  따라서 나는 불만과 불평이 넘쳤겠지.

그러나 이번 집공사를 함에 있어 우리는 일체 이견이 없었다. 아둥바둥 아껴 내일을 대비하기보다는, 여행을 하기보다는,  투자를 해 돈을 불리기보다는  오늘의 풍요롭고 윤택한  ‘의식주’ 를 누리는 일이 더 가치와 의미있다는 게 남편과 나의  일치한 생각이었다. 집안을 내 맘에 들게 꾸미는 일이 우리들 삶에 있어 제일 우선이라는.  

남녀가 ‘부부’란 이름으로 만나 한평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많은 대답들이 있을 것이다. 대화가 통해야 하고 성격이 맞아야 하고 취향이 같아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하고 등등. 한 할배한테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코드’가 맞아야 할 것 같다고.

코드라, 참 막연하다. 광범위하다. 코드란 말 속에는 위에 말한 성격, 취향에다 취미,습관, 입맛, 하다못해 취침과 기상시간까지 다 포함되는 것 같으니까.

어쨌든 맞는 말이다. 부부는 반대로 만나야 잘 산다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반대로 만나 잘 사는 부부는 거의 없다. 어느정도는 비슷해야 한다. 할배 말대로 코드가 잘 맞아야 한다. 그중 가장 잘 맞아야하는 것은 인생의 우선 순위 코드.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지에서 봉사하며 사는 부부들을 잡지나 신문에서 종종 본다. 우리가 보기엔 고생을 사서 한다 싶은데 정작 그들은 무척 행복하고 보람차 한다. 왜냐면 그들은 ‘남을 위한 삶’이란 코드가 맞기에. 그런 삶을 인생의 우선 순위에 두었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부부의 인생 우선 순위 코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