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친구 희주로부터 국제소포로 받은 화장품은 '진설'이었다. 아모레 퍼시픽에서 나온 최고급품.  크림 하나에 한국돈으로 45만원. 여기돈으로 5백불이다!  그 비싼 게 다섯개나 들어 있었다. 거기다 나랑 딱 어울리는 밤색 숄도 들어 있었다. 내가 숄 잘 두르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가격을 합산해보니 부치는 삯까지 모두 2백 7십만원, 여기 돈으로  3천불 가까운 돈이었다.

웬걸 이렇게 보냈냐는 내 문자에 희주가 대답했다.

“아직 두 번 더 보내줄 게 있어.  너 몸 차니까 인삼이랑 대추랑 보내 줄께. 그리고 집에서 직접 짠 참기름과 깨소금도. 물품이 많으면 너한테 세금이 떨어진다해서 두어번에 나누어 부치려고...”

희주가 덧붙였다.

"화장품, 절대 남 주지말고 너 써라. 바르면 벌써 피부색깔부터 달라진다. 우리 나이때는 좋은 걸 발라야 해..."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났다. 내가 한 때 좋아했던 노래, 가수 김연숙의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불교관련 노래인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부모 빼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희주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인 것 같다. 열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나 스스로는 살 생각조차 못 하는 화장품을 보내주었으니. 평생동안 슈퍼마켓에서 파는 몇불짜리가 고작이던 내 피부를 위해서. 내가 천대하는 내 피부를 위해서.

그래서 희주가 보내준 화장품을 나를 위해 썼냐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맞았다. 손떨려서 죽어도 쓸 수가 없었다. 찬장에 넣어두고 오며가며 꺼내서 바라보기만 했다. 두어달을 그러다가 주위에 나누어주었다. 마침 몇몇  주위사람들의 생일이 다가왔기에 생일선물로.

희주가 보내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사양했지만 나는 말했다.

"언감생심 이런 비싼 화장품은 나한테 무리인 것 같아. 한번 바르기시작하면 앞으로 계속 발라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자신이 없네, 나는..."

티셔츠가 필요하다는 남편을 따라 동네근처 할인의류매장에 갔다. 거기서 맘에 꼭 드는 구두를 발견했다. 그런데 가격이 좀 세다. $49.99.

몇번이고 구두를 들었다 놓았다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는 비싼 것 같아 그냥 나왔다. 그런데 웬걸, 밤에 자리에 누웠는데 구두가 눈에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좀 비싸더라도 사 올걸. 아니야,  그 돈 주고 사기엔 너무 아까와. 좀 기다리면 가격이 떨어질지 몰라. 그러다가 누가 확 채가버리면?그럼 어떠지?..'

도저히 잠이 안 왔다. 그러기를 나흘 째,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퇴근길에 구두를 사러 갔다. 가면서 빌었다. 누가 벌써 집어가버렸기를. 그러면 더 이상 미련이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구두는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반년을 벼르던 ‘홍삼 엑기스’를 한 병 샀다. 2백여불. 정말로 큰 맘 먹었다.

지난 봄, 한국나갔을 때 큰동생이 사준 홍삼 엑기스가 제법 효과있었기에(사흘들이였던 감기가 지난 반년동안 한 번도 안 걸렸다)조금 더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 비싸야지. 한국마켓 갈 때마다 살까말까 망설이기만 했었는데 겨울도 다가오고해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눈 질끈 감았다. 사실 마음이 좀 안 편하긴하다. 날 위해 그런 거금을 썼다는 게.

자신한테는 돈을 죽어도 안 쓰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아니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쓴다. 남을 위해서는 최고 좋은 것, 비싼 것을 덥썩덥썩 잘 사면서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왜 그리 아까운지.

위의 글에 쓴 구두며 홍삼 엑기스도  남 주기 위한 거였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선뜻 샀을 거다. 예전에도 비싼 화장품을 선물받은 적 있지만 내 얼굴에는 아까와서 못 바르고 남을 다 줬었다.

기초화장품이 떨어졌다는 지인을 위해  한국화장품 가게에 들렀다. 위에 쓴 진설보다는 한단계 낮다는 스킨과 로션 세트를 샀다. 고맙게도 샘플을 한웅쿰이나 준다.  스킨로션은 지인에게 주고  얻어 온 샘플을 써봤더니 역시 비싼 화장품이 돈값을 하는 것 같다. 얼굴에서 윤이 난다. 직장사람들도 모두 한 마디씩 한다. 갑자기 피부가 달라졌다고.

최근에 몸살을 된통 앓고나서 나 스스로 다짐했었다. 내 몸을 좀 위하기로. 나 스스로를 좀 돌보기로. 운동을 좀 적당히하고(예전엔 피곤해서 죽게 생겼어도 운동을 빼먹지 않았었다) 라면과 밥 외에 억지로라도 고기 등 영양가 있는 음식을 좀 먹으려고.

그렇다. 내가  적은 나이가 아니다. 오십 중반이다. 이제는 나를 사랑해야 할 때. 남 챙기기보다 나부터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할 때. 날 위해 비싼 것도, 고급품도 좀 사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