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는 자리에 W씨가 멋진 '튜닉'을 입고 나타났다. 시중에서 볼 수 없는 모양같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W씨가 직접 디자인하고 재단하고 바느질해서 만든 거란다.

떨어진 단추 하나도 제대로 달지 못해 남의 손을 빌어야 하는 나는 W씨가 존경스럽다 못해 경외스럽다.

W씨는 정말로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다. 요리도 잘하고 꽃꽂이도 잘하고 머리도 잘 만지고 옷도 잘 입고 집안도 잘 꾸미고. 게다가 노래도 가수만큼 잘 한다. 시대를 잘 타고났으면 아주 인기많은 가수가 되었을 거다.

오랜만에 P할배를 만났는데 보자마자 또 날 구박했다.

"네 글은 왜 항상 거기서 거기냐. 세계정세나 한국정치 상황 등 주제가 얼마나 많은데 집 청소하는 얘기, 네 주위 사람 얘기밖에 못 쓰는데?"

 내가 반론을 폈다.

"나의 주특기가 주변의 자잘한 일들, 남들이 무심하게 지나칠 만한 사연들을 옆에서 수다떠는 것처럼 풀어내는 것인데 그걸 하지 말라면 글 그만 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죠. 또한 할배가 말한 내용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 쓰고 있는데 거기에 내 목소리까지 보탤 필요가 없고요. 물론 그런 고차원적인 글을 쓸 실력이 없으니까 못 쓰는 거지만요" 

정말로 나는 주위의 자잘한 신변잡기같은 일은 글로 잘 표현할 수 있는데 무겁거나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의 글은 쉽고 재미는 있으나 철학과 감동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볼멘 소리를 한다. 젠장, 인생을 논하려면 철학책이나 성경을 읽으면 되지.....

지인 한 사람은 또 내가 운전을 잘 못 하는 걸 늘 걸고 넘어진다.

"지가 무슨 귀부인이야? 공주야? 왜 스스로 운전할 생각을 안 하고 데려와라, 데려가라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데?"

나는 또 항변한다.

"못 하는 걸 어쩌라고. 노력해도 안 되는 데 어쩌라고."

눈이 지독히 나쁜데다 밤에는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직진은 겨우겨우 좀 하겠는데 후진은 죽어도 안 된다. 뒤로 하다가 남의 차나 나무나 차고 기둥을 들이받은 일이 수십번이다. 또한 방향감각이 없어서 길을 한번 잘 못 들었다하면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엄청 걸린다. 차에 GPS가 있어도 쓸 줄 몰라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한번은 다운타운 갔다가 길을 잘 못들어 한시간을 헤맸다. 헤매다가 헤매다가 도저히 출구를 못 찾아 지나가는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 경찰 차의 뒤를 쫒아서 겨우 빠져나온 것이다. 그래서 직장 외에 다른 데 갈 데는 지인들의 차를 얻어 탄다.  

사람은 제각각 잘 하는 게 있는 법이다. 또한 온갖 죽을 애를 써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운전이 식은 죽 먹기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년 운전대를 잡고서도 벌벌 기는 나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2009년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맬컴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빌 게이츠, 비틀스, 모차르트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의 공통점으로 '1만 시간의 법칙'을 꼽았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선천적 재능보다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총 10년 동안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잭 햄브릭 미시간주립대 교수 연구팀은 노력과 선천적 재능의 관계를 조사한 88개 논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4%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음악, 스포츠, 체스 등 어떤 분야든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수 있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결론이다. 햄브릭 교수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선천적 재능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이 내게 많은 위로가 된다. 못 오를 나무는 아예 처음부터 쳐다보지를 말고 열번 찍어도 안 넘어갈 나무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게 시간과 정력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길이라고 혼자 안도한다.

앞으로 내 주위 사람들은 왜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하냐고 날 기죽이지 말기 바란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거니까. 타고나지 않아서 못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를 잘 관찰하면 잘 하는 것이 한 두 가지 정도는 있다. 순 맹탕은 아니다. 못 하는 것만 가지고 걸고 넘어지지 말고 잘 하는 것을 격려하고 칭찬해주면 더욱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