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어릴 적 친구를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만났다.

같은 동네 살면서 무척 친했었는데 이사를 가면서 헤어졌던 친구라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놀랍게도 그 친구는 우리집과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그날로 친구의 얼굴을 보러 갔다. 돌아온 남편이 말했다.

“워낙 오랜 세월이 흐른 후라 좀  서먹서먹할 줄 알았더니 금방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가더라”

그런 것 같다. 몇십년 흐른 세월의 강을 단 몇분만에 건널 수 있는 사람들이 옛친구들이다.

나도 한국에 어릴적 친구가 몇명 있다.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일년 열두달 가도 서로 전화를 안 하는지라  오랫동안 소식없이 지낼 때도 있다. 그러다가 내가 한국에 나가면 연락해서 얼굴을 보는데  몇년동안 소식없이 지냈던 게 무색할 정도다.  여전히 반갑고 정답기 그지없는 것이다. 전혀 어색한 기분이 없는 것이다.

내 친구 할배들도 말했다. 한국가서 옛친구들을 만나면 바로 ‘이 새끼’ ‘저새끼’하는 당시의 말투가 그대로 나온다고. 툭툭치면서 장난하던 예전의 행동들이 그대로 나온다고. 

옛친구란 그런 것이다. 욕을 해도, 흉허물을 들춰도 하하 웃을 수가 있다. 여기 친구들하고는 그럴 수가 없다. 조금만 섭섭하면  돌아선다. 안 보게 된다. 왜 그럴까.

모두 불러서 식사라도 같이 해야겠다고 연락하면 그 중 한둘이 꼭 묻는다.

“누구누구 오는데?”

 꼴보기 싫은 놈 있는 자리면 안 오겠다는 거다. 한 동네 살면서 왜들 그러는지. 나이나 어리면 내가 말을 안 한다. 갈 날이 멀지않은 사람들이 걸핏하면 삐치고 싸운다. 어제까지만 해도 형제같이 자매같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금방 원수가 되어 서로 비방하고 미워한다.

모두 어울리게 하려고 그동안은 내가 중간역활을 참 많이 했다. 그게 내 임무인 줄 알았으니까. ‘여왕벌’이네, 보스 기질이 있네 치켜세우는 말에 혹해서 말이지. 또한 여왕벌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해야 신나는 법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제 지쳤다. 싸우든지 말든지 그냥 놔둔다.

최근 우연히  옛친구들의 '밴드'에 가입했다. 밴드에 어릴 적 사진이 몇장 올려져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한동안 추억에  잠겨지냈다.

옛친구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한 존재들 아닌가. 같이 보냈던 척박한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상대의 가정환경과 형편을 유리알처럼 다 알고 있기에  속이거나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고 잘 보이려 노력할 필요 또한 없는 옛친구들.

그에 비해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의 배경을 잘 모른다. 한국에서 뭘 하다 왔는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어떤 여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출신 대학을 다 다르게 얘기한다.  그렇게 뭐가 확실하지 않으니까 마음을 완전하게 터 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결속이 잘 안 되고 수틀리면 금방 돌아서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잘해야 몇 년에 한번 만나는 한국의 친구들과는 달리 여기 친구들은 지지고 볶더라도 죽을 때까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인데.

K씨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독특한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말년이 외롭지 않으려면 옆에 있는 친구들한테 잘 하라고.  K씨가 말했다.

"나이를 먹으니까  멀리 있는 옛친구보다는 눈만 뜨면 바로 볼 수 있는 여기 친구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이  정말 옳다는 걸 느끼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