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어떤 이가 냅킨을 한장밖에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스트 푸드점을 상대로 백만불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별 거지같은 이유로 소송을 남발하는 나라니까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 쯪쯪, 하고 저절로 혀가 차졌었다.
그 얼간이는 정말로 자기가 승소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일까. 그냥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켜서 스타로 떠보겠다고 작정한 건 아닌지.
작년 3월 말에 차 사고가 났다. 이달로 일 년째가 되었다.
사고일로 부터 2년이 신체부상에 대한 배상금 청구소송을 할 수 있는 유효기간이라는데 시간이 왜 이리 더디 가는지. 상대로부터 소송을 당할 만한 가능성이 별로 없긴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얼토당토않는 이유로 고소를 해 올 수도 있는 일이기에 마음이 안 놓인다.
사고난 후 얼마나 걱정을 했었던지. 거의 한달을 잠을 못 자다시피 했다. 내가 뒤에서 앞차를 들이받은 사고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찰 리포트에도 100% 내 과실로 책정되어 있었다. 사고난 후 경찰이 왔었는데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는 사고경위를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었다. 그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 같았다.
남편은 ‘양쪽 차의 파손된 부분을 보면 누구 잘못인지 명백하게 나타나는데 전적으로 이쪽 과실로만 치부하는 것은 편파적이다’ 면서 경찰서로 보험회사로 쫒아다녔다.
사실 남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 사고는 주행 중 갑자기 앞차가 끼어들기를 하는 바람에 일어난 것이다. 내가 뒤에서 받은 것은 맞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내 차의 앞편 왼쪽 모서리 부분으로 앞차의 오른쪽 모서리 뒷편을 치고 만 것이다.
주위에서 툭툭 함부로 던지는 말들이 내 걱정을 배가시켰다.
"이유야 어찌됐든 뒤에서 받은 사람이 무조건 잘못이야. 상대쪽이 때는 이때다 하고 마구 소송을 걸어올 걸, 아마?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며 치료를 받고는 한 사람이 십만불씩만 소송을 걸어와도 오십만불(건장한 어른 다섯명이 타고 있었다)이네?재수도 더럽게 없군. 이계숙씨는 잘 못 걸렸어...."
아이구야, 큰일 났다 싶었다. 차는 양쪽 다 심각하게 파손되었지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 한방울 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말대로 여기 아프네 저기 아프네 소송을 걸어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할 판이었다. 내 과실이 100%이니 소송을 걸어오면 꼼짝달싹 못하고 덮어써야 할 터였다.
내 주위에도 교통사고 배상금을 받아 팔자를 고친 사람이 두엇 있기에. 또한 우리도 직접 경험했기에.
십 몇년전, 남편 과실로 인한 차사고가 있었다. 별로 큰 사고가 아니었다. 차는 파손되었지만 그때도 아무 부상없는 사고였었다.
우리 보험에서 치료비랑 차량에 대한 보상을 다 해주었다기에 안심하고 있는데 소송이 들어왔다. 사고의 충격때문에 부인이랑 섹스를 못해 부부관계가 위기에 처했으니 그 배상을 하라는. 신나게 섹스를 하고도 못했다고 하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어쨌든 우리 보험회사는 청구 전액을 지급해 주었다.
그런 좋지 않은 기억때문에 나는 무척 걱정 했다.
그런데 놀랍기도 해라. 양쪽 보험에서 조사 후 최종결과를 냈는데 이게 뒤집혀 있었다. 내 과실이 30%밖에 안 되는 것으로!
우와, 살았다, 하고 기뻐하는 내게 누가 옆에서 말했다.
"이제 이계숙씨가 그쪽을 소송하면 되겠네?"
몇년전 여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한국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또한 탑승자 일부분이 사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후속 기사를 읽으면서 또 한번 안도의 숨을 쉬었었다. 그러나 몇달 후 엄청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며 소송을 종용하는 변호사들의 광고가 신문을 뒤덮는 걸 보면서는 배가 슬슬 아팠다.
야아. 잘만하면 돈을 다발로 받는 사람이 있겠구나……
성경에 ‘송사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딴 건 몰라도 그 성경말씀에는 충실하며 살고 싶다. 생명에 지장을 받는 일을 당하지 않는 이상 손해보고 용서하면서. 그게 참된 삶의 자세라 생각하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