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가 왔는지 허망하네, 살 맛 안 나네 발광을  해대니까 남편이 저 멀리 북 캐롤라이나에서 쉽핑비를  물어가며(캘리포니아에는  내가 원하는 색깔이 없어서)사 주었다.

타주에서 차를 사는 만큼  꽤 많은 기간이 소요됐다. 이메일과  전화로 가격을 흥정하고 이런저런 서류가 왔다갔다해야했다.

차를 기다리며 나는  참 많이 행복했었다. 하루하루 손가락을 꼽아가며 마냥 들떠 있었다.  마침내 우리집 대문앞에 쨘, 하고  차가 배달됐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기쁨이 오래 안 가는 것이었다. 마치 풍선에 바람빠지는 것처럼  슬슬 줄어들었다. 내가 원했던 차가 차고에 서 있다는 생각만으로 안 먹어도 배 부르더니 한 달이 넘으니까 그런 마음이 없어지고 그저 덤덤하고 시시해졌다. 새 마누라를 얻으면 3년이 좋고 새 집과 새 차를 사면  1년이 좋더라는 말이 있던데 나의 경우는 한 달, 딱 한 달이었다.

지금은 좀 쉬고 있지만 장편소설을 연재할 때마다 재밌는 일이 생긴다.

내 주위의 지인들을 비롯한 몇몇 독자들의 요청이 들어 오는 것이다. 지지부진하지말고  빨리 남녀 주인공들을 동침하게 하라고. 또한 이왕이면 좀 진하고 화끈하게 자는 장면을 묘사해 달라고.

글쎄, 어느 할배 말마따나 ‘포르노 작가’인 나인데 쓰라면  못 쓸소냐. 그렇지만 나는 수많은 요청이 들어와도 그들을 자게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완결까지  그런 장면을 안 나오게 한다.  

좀 모자라는 건지 어쩐지 나는 이 나이에도 ‘플라토닉 러브’를 믿기 때문이다. 내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사랑하지만 그저 바라만 보는 관계’를 끝까지 고수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굳이 같이 잠을 자지 않아도 행복으로 충만하고 만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누구는 말한다. 남녀간의 사랑은 몸을 합칠 때라야 정점(頂點)이 되는 것이라고.  정점이란 말은 산 정상이란 말이다.  그럼 그후에는? 몸을 합치고 난 후에는? 그렇다. 산 꼭대기에 오르고 나면 더 이상이 없다. 그걸로 끝이다.  내려갈 일만 남은 것이다.

남녀관계에 있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목소리만 들어도 좋고  이 세상 하늘 아래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황홀할 때, 그러니까 서로를 잘 모를 때, 육체의 접촉이 없을 때이다.  그래서 나는 연애의 과정만 쓴다. 결과도 쓰고 그 후에 일어난 일도 쓰려면  후속편이 있어야 하는데  뻔하지 않은가. 불같은 사랑을 했지만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서로 실증이 나기 시작해서 그동안 안 보이던 결점들을 가지고 지지고 볶고 싸우고 울고 불고 하더라는 이야기밖에 쓸 게 없으니까.  

얼마전, 쇼핑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들은 대부분  물품을 사기까지의 과정에 중독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쇼핑몰까지 운전해 가는 과정 혹은 인터넷에 접속하는 과정, 물건을 고르고 대금을 치르는 과정에서  노름꾼들이 도박을 할 때와 같은 흥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물건을 손에 딱 넣는 순간 그 기분이 사라지고 만단다.

보통 그런 사람들의 집에는 상표도 뜯지않은 물품들이 산처럼 쌓여있기 마련인데  필요해서 구입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세익스피어가 말했단다. ‘얻은 것은 이미 끝난 것이다. 기쁨의 본질은 그 과정에 있으므로’ 라고.

조급해하고 지루해하면서 결과만 기다리는 우리 현대인들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우리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