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래 살면서도 적응이 잘 안 되던 게 있었다. 파자마바람으로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사람들, 그리고 한겨울에 앙말을 신지않고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다.

파자마는 잘 때나 입는 옷이며  겨울에는 반드시 양말로 발을 보온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나는 파자마 위에 외투를 걸치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 패스트푸드점이나 마켓안을 활보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을 마음놓고 흉봤다. 아무리 게을러터져도 그렇지, 옷 갈아입고 양말 신는데 한 시간이 걸리나 두 시간이 걸리나, 그저 두어번 꿈지럭거리면 될 것을, 하고.

 그도 그럴 것이 못생긴 얼굴을 옷으로라도  잘 커버를 해야 했던 나는 동네  편의점에 가는 데도 의관정제를  했었으니까.  아무리 남의 눈을 의식 안 하는 미국이라하지만  제대로 차려입지 않으면 대문 밖을 나서지 못하는 줄 알았으니까.  

 사돈 남 말 할 게 아니다. 요즘은 내가 그렇게 되었다. 몇 번 얘기했지만 갈수록 게을러진다. '아이고, 귀찮아'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휴일 아침, 예전같으면 춥거나 덥거나 창문 활활 열어제치고 청소부터 했지만 요즘은 보이는 데만 대충대충 치운다. 예전에는 죽어도 화장실 청소는 휴일에 날 잡아 했지만 지금은 쓰윽 봐서 더럽지 않다 싶으면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소파에서 뒹굴거린다.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친 차림새로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머리라도 대강 빗어 묶지만 그렇지않을 때는 양치질만하고  머리는 사자같이 산발한 채.

 문제는 배가 고플 때다. 하도 라면만 먹어서 이제는 그것도 질리고 햄버거라도 사러 나가야 하는데 움직이는 게 싫어 버틸 때까지 버텨본다. 나중에 아사할 지경에 이르면 할 수 없이  나간다. 옷을 갈아입기 싫으니 입은 채로.

차고로 나가는 벽에 대형거울이 걸려 있다. 애써 외면한다. 만약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을 봤다간 우울증이 올 지도 모르니까.  느릿느릿 운전하고 나가서 드라이브 뚜루(그 차림새로 식당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으니. 미국엔 나같이 게으른 사람이 많아 드라이브 뚜루란 게  생겼나 보다!)를 통해  햄버거를 시켜 온다.

어느 날. 아줌마들 몇이 모여 저녁 먹는 자리에  ‘분이 언니’라는 여성이 합류했다.  분이라는  이름이 별명인지 본명인지 모르지만 이름처럼  고운 여성이다.  일흔이 넘었다는데  분화장에다  예쁜 옷에다 귀걸이, 목걸이까지  달고 있다. 옆에서 누가 그런다. 옷이 하루에 두세번 바뀔 때도 있다고.

은퇴해서 집에만 있는 사람이라면서 뭘 그렇게 꾸며대요, 하고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분이 언니가 말했다.

“나도 한 게으름 하던 사람이었지. 아침에 일어난 차림 그대로 눈꼽도 안 떼고 하루종일 곰처럼 뒹굴거리던. 그런 생활을 한 몇년 했나? 첨에는 정말 편했지. 평생을 일만 하다가 이제야 맘대로 게으름 피우고 살아 좋구나. 그런데 그 생활이 계속 되니까 나중에는 삶의 의욕이 없어지면서 너무 무기력해지더라고. 외출할 일이 생겨도 옷 갈아입기 귀찮으니까 자꾸 뒤로 미루게 되고.  또한 저녁이 되면 죄책감이 든단 말이야.  아, 오늘 하루를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또 무의미하게 보냈구나…”

사실 나도 그렇다. 하루를 아무 하는 일 없이 뒹굴거리며 보낸 날 저녁이면 허무함으로 가슴이 저린다. 값지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할 일은 했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때문에.

그러면서도 벌떡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눈 뜨자마자 몸에 걸치는 가운때문인 것 같다. 솜털처럼 가볍고 편안하고 따뜻한 가운. 나랑 한몸처럼 밀착돼 있는. 이 가운을 벗어던지지 못 하는 한 나는 매 휴일을 폐인같이 보낼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