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 방송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의 제작팀이라면서 얼마 전,  중앙일보 칼럼에 쓴 한 장애여성을 소개해 달란다. 자기네 프로그램에 딱 맞을 것 같아서 출연시키고 싶다고 한다. 눈앞이 캄캄했다. 왜냐면 그녀의 연락처가 내게 남아있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냥 스쳐가는 인연일 줄 알고 그녀의 이메일 주소와  미씨유에스에이의 ‘쪽지 아이디’ 를 싹 다 지워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단 몇 달이라도 남겨둘 걸....

홀랑 연락처를 지워버린 나를 원망했다. 그것  좀 남겨둔다고 어디 덧나는 것도 아닌데 자주 접촉하지 않는 사람들의 리스트는 다 없애버린다. 그래야 개운하고 속이 시원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난감해하다가 부랴부랴 미씨유에스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사유설명을 하며 어떻게든 그녀의 아이디를 찾아 달라고(다행히 나는 그녀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간곡히 요청했다.  담당자가 처음엔 난색을 표하더니 어쨌든 좋은 일이니 알아봐주겠단다. 그리고 금방 연락이 왔다.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이  다섯명 있는데 그 중 네 명은 다른 주에 사는 여성이고 한 명만 캘리포니아에 산단다. 지역을 보니 내가 찾고 있는 그녀가 맞는 것 같았다. 담당자가 말했다. 

"자주 로그인을 안 하는 것 같은데요"

자주 접속을 안 한다니 실망이었지만 어쨌든 담당자가 가르쳐준 아이디로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매시간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녀가 쪽지를 열어보는지, 그리고 답장을 보내왔는지 확인했다. 내 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쪽에서는 쪽지를 열어보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감감무소식이었다. 방송국에서는 매일  그녀한테 연락이 닿았냐는 이메일이 오지, 정말로 애가 탔다. 마침내, 드디어 보름만에 그녀가 내 쪽지를 확인했다. 보름만에! 그녀는 보름만에 미씨유에스에이  사이트에 접속을 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미씨 사이트를 멀리하고 견딜 수 있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크게 반성을 좀 했다. 인터넷을 좀 멀리해야겠구나, 하는 반성.

 TV 앞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남편을 욕창 생기겠다고 엄청 흉을 봤는데 사실은 남편 흉보고 욕 할 게 아니다. 나야말로 밥 먹고 잠 자는 시간 외에는 ‘중독’수준으로 인터넷만 한다. 서너개 되는 내 단골 사이트에 분(分) 단위로 번갈아가며 들어가서 업데이트 되는 글을 다 읽는다.그리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내가 지금까지 셀폰이 없어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컴퓨터 앞에 껌처럼 붙어서 실시간 이메일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새 메일이 도착하면 0.5초내로 읽고 0.5초내에 답장하니까.

직장에서도 틈만 나면 인터넷을 한다. 맡은 업무만 끝내면 내 자유로 시간을 쓰는 게  가능하기에. 어떤 때는 일하는 시간보다 인터넷하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다. 다른 일에 이 정도로 매진했으면 벌써 큰 성과를 이루었을 텐데. 

그러고보니 하루 중 영어를 접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직장에서 일에 관계된 것, 그게 다다.

예전에 기자일을 할 때는 억지로라도 미국TV를 보았다. 그리고 운전할 때도 시사방송을 들으며 미국내 동향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지금은 TV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워낙 TV 보는 걸 싫어했기에. 운전할 때도 클래식만 듣는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어서가 아니라 가사있는 음악이나 사람 말소리는  운전에 방해가 되기에. 미국 라디오라도 들으면 단어 몇 개라도 건질 건데 그것도 안 하고 있다. 남편하고도 밥 먹을래, 잘래, 하는 생활영어가 고작이다. 그러니까 직장에서 일에 관계된 것 외에는 하루종일 한국 인터넷 안에서 한국어만 접하고 있는 것이다. 

많이 듣고 읽고 말해야 하거늘 그걸 안 하니 영어가 늘 턱이 있나. 올해로 미국 온지 27년 째인데 처음 몇년, 기를 쓰고 배운 그 영어를 가지고 지금까지 버틴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세월을 미국에 살았으니, 그리고 남편이 미국인이니 웬만큼 영어를 해야 하는데  아이고, 정말로 창피하다. 진짜로 나는 영어를 못한다.

또한 발음도 엉망이다. 작년, 사고난 후 구입한 차는 최신형이다. 사람 음성으로 모든 계기를 조절할 수 있는. 그런데 웃돈 내고 구입한 이 모든 기능들이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그 빌어먹을  기계가 내 발음을 못 알아 듣는 것이다! 발음이 워낙  나빠야 말이지.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데는 남편의 책임도 크다. 남편이 다 알아서 해 주니까(하다못해 식당가서 음식 주문도 남편이 한다) 내가 굳이 나서서 영어를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미국 살면서 영어를 못한다는 것, 얼마나 큰 문제인가. 문제도 큰 문제인데 그 문제를 자각은 하고 있지만 개선하려고 노력은 안 하고 나태하게만 살고 있으니 그게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