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나는,

양 주먹으로 파카를 팡팡 두드려 쓸쓸해지려는 감상을 먼지와 함께 털어낸 후 정류장 표지판이 있는 곳을 찾아갔을 때 그 곳에서 만난 한 처자 이야기를 하려고 해. 마지막으로 그날 최후의 묻기도전이 남아 있을 때 그 처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 나는 얼른^^ 이 쪽에서 타면 B동으로 가는 거 맞나요?하고 물었어. 그러자 그녀는 살갑게 눈웃음을 지으며 네, 3번 타시면 되요, 하더라. 그런데 그녀의 미소가 너무도 깊은 안도감을 던져주는 거야. 겨울 추위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엔 뼈가 시린다잖아.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오슬거리는데 그녀가 작은 불씨 하나를 건네준 것처럼 급히 따뜻해졌지.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가 왔을 때 말이야 (한국은 이제 누군가를 위해서 양보하는 모습이 적어졌어. 다들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산다는 인상을 던져주지), 사람들이 버스에 먼저 타려고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 처자는 뒤에서 미동을 않더라. 나는 원래 능기적거리는 편이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어. 결국 그녀는 가장 마지막으로 버스에 타서는 한참동안 서서 갔지. 그러다 내 옆 창가 쪽 자리가 비자 저 좀, 들어갈게요,라고 양해를 구한 후 자리에 앉았어. 그리고는 곧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더라구. 그녀가 들어갈 수 있도록 다리를 한껏 오므려 주었지만 그런 인사를 받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지. 이젠 꽤 적응이 되어서 그러려니 한다고 했잖아. 낮에 너랑 차 마시고 있을 때 내 다리 밑으로 누군가 고개를 쑤욱 들이밀었던 거 생각나니? 그 사람은 내 종아리 뒤에 있는 콘센트를 사용하려는 의도였는데, 나는 깜짝 놀라서 한참동안 헛웃음을 웃을 수 밖에 없었잖아. 그런 대다수의 사람 속에서 발견된 그녀가 내겐 희망이라는 단어로 다가왔다면…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아, 분명 있구나! 내가 많이 만나지 못 했을 뿐 희망은 여기저기 있겠구나…

그녀의 모든 행동은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향수였다. 너무도 갈망하던 상식의 메뉴얼이었고. 원하던 선진문화였어. 선진의식이라는 것, 알고보면 별 거 아닌데 말이야.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를 적절한 타이밍에 말하고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도 배려를 하고, 눈 맞추고 상대를 응시하며 대화하고, 조금 양보하고… 뭐 그런 예절이 자리잡고 있는 사회일 뿐이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