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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이후 - 딸아이의 성공담

그동안 나는 이 글을 쓸까말까 정말 망설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밝힐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과, 내가 과거에 했던 고민을 현재 하시는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자는 마음이 서로 티격태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주변의 많은 분들이 딸아이의 상황을 궁금해 하셔서 한번쯤 상세히 밝혀도 좋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딸아이는 10위권 안의 리버럴 아트 칼리지에 풀 스칼라십을 받고 진학했다. 기대 하지도 않았던 National merit scholarship finallist에도 들었다. 후에 대학측으로부터는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입학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고 자의에 의해 미국 검정고시도 보았다. 이는 딸아이도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행운이다. 풀스칼라십이 아니라면 딸아이는 미국으로 진학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문득 딸아이의 지난 생일날이 생각난다. 딸아이는 얼굴에 달빛을 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드름 투성이인 얼굴에서 맨들맨들 윤이 났다. 눈빛은 촉촉하게 반짝였다. 딸아이는 그날이 제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전날에는 1,2 학년 자매동생들로부터 선물과 생일축하 카드를 받아왔는데 당일날에는 친구들이 서프라이즈 파티까지 열어준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가슴에는 선물과 카드와 케익이 한더미였다. 그날 우리 부부는 다시한번 딸아이가 한국에 온 일은 대박이었음을 확인했다. 딸아이에게는 학교를 떠나는 마지막 날의 교무실 풍경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소규모로 나뉘어 있는 교무실이긴 하지만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이 모두 다가오셔서 담임선생님과 딸아이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인사와 덕담을 나누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할 때에도 딸아이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다.

이처럼 딸아이의 한국학교 생활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와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처음부터 자나깨나 신경을 썼던 부분이다. 귀국직후 최종적으로 범위를 좁힌 다섯군데의 학교를 온 가족이 함께 방문했었다. 외국인/국제 학교는 제외시켰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지만 부담이 덜한 학교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국이라는 강물 안에서 한번 제대로 헤엄쳐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언젠가 밝혔던 바대로 딸들이 적응력이 뛰어난 편이기 때문에 감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성정이라면 삼고(세번의 고려)는 해보아야 할 터프한 도전이다. 아시다시피 미국학교와 한국학교는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방문한 다섯 학교는 모두 특목고이거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특수학교였지만 딸아이는 특례로 입학이 가능한 입장이었다. 그런 학교만 탐방한 것은 재학생들의 성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에대해 관심을 보이기 보다는 영어에대한 관심과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이 모인 곳이 적당하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친구들은 딸아이의 영어실력을 동경하면서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그리고 친구를 매우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이런 환영은 행복의 필수조건을 채우고도 남았다.

딸아이 학교는 천주교 재단의 일반고였이지만 (비평준화지역의) 우등생들만 모인 곳이었다. 가르치는 수준과 배우는 능력이 매우 높은 곳이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딸아이에겐 성적이 하위권을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내신을 고려했다면 들어가서는 안 되는 학교였고 우리는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우리의 노선은 학교성적과는 거리가 먼 여정이었기에, 성취동기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인성이 훌륭한 친구들이 있는 곳이야말로 최우선 고려대상이었다. 딸아이의 한국생활 성공기는 바로 그 잘 꿰어진 첫 단추에 있었을 것이다. 영어에 관련된 모든 활동에서 리더를 맡으면서 딸아이는 학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성취감도 듬뿍 맛볼 수 있었다. 봉사활동과 운동, 음악활동도 병행하면서 자신만의 생활패턴으로 한국 생활을 알차게 꾸려나갔고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자신있게 내보이며 혼자의 힘으로 대입을 치루었다. 물론 미국에서의 2년간의 성적과 활동, AP, SAT1 & 2의 점수가 최우선으로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이 느낀 바대로 딸아이는 어려운 시간을 슬기롭게 극복한 힘으로 앞으로 닥칠 어떤 난관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한국에서의 2년간의 내신이 하위권이었지만 좋은 대학에서 학비보조를 많이 받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학이 꼭 실패의 예정된 수순은 아니란 사실을 증빙한다. 한국생활에서 얻은 것을 생각하자면 랭킹 몇 위 정도 떨어진 대학에 들어간 것이 절대 실패일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오히려 딸아이의 미래는 앞으로의 분발이 좌우할 것이다. 고등학생 때 전학하는 일이 대학입학에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족사에서 불가피하게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더 우선시 될 무언가가 입시때문에 뒷전이 되어서는 안 될 거라는 메시지를 나는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다. 모든 일에는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