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1일 

3월의 마지막 날.

라일락 나무를 사러 스톰과 근교의 묘목 농원에 다녀왔다. 얼마 전부터 할머니께서 봄이 오면 라일락 나무를 꼭 사다 뒤뜰에 심으라고 말씀하셨는데, 3월이 가기 전에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스톰과 데이트하는 겸 농원의 수많은 꽃들과 나무들을 둘러본 뒤, 건강해 보이는 라일락 한 그루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스톰이 밧줄로 꽁꽁 묶인 나무를 차에서 힘겹게 내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싸- - - 해 지면서, 할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어 졌다. 

유난히 꽃과 나무를 사랑하시는 할머니. 

건강하셨을 때는 집안의 모든 화초와 정원의 나무들을 손수 가꾸시던 분인데, 고관절 수술을 받으신 뒤로는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으시는 것도 힘들어하신다. 이제는 봄날의 꽃구경도 할머니께는 사치스러운 나들이가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 집 안 팍으로 핀 꽃나무들이 아름답기 그지없건만, 함께 즐길 할머니가 곁에 안 계시니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끄러미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석류나무, 대추나무, 라일락 나무, 배롱나무, 벚꽃나무, 분꽃, 깨꽃, 코스모스, 동백, 진달래, 유채꽃, 수국, 치자, 철쭉들이 이내 불처럼 피어났다 사그라진다. 

할머니께서 빨리 건강이 회복되셔서, 다시 내 손을 잡고 들길을 걸으며 꽃에 대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쳐 주시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의 모든 병이 말끔히 사라져서 미국 우리 집에도 오시고, 나와 함께 동네 산책도 가시고, 오늘 같이 볕 좋은 날은 꽃이나 나무를 사러 농원 나들이도 하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그럴 기력조차 없으시다면, 그냥 내가 지어드리는 진지 한 끼라도 잡수시고 내 얼굴 한번 쓰다듬어 주셨으면 정말 바람이 없겠다. 

라일락을 보면 자꾸 할머니 생각이 난다. 

밧줄에 꽁꽁 묶인 라일락의 몸뚱이가, 병마와 싸우시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할머니의 육신같이 느껴져서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