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0일

난 초등학교때 부터 유난히 시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노천명 시인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라는 시는 소녀에서 숙녀로 그리고 아내에서 엄마로 거듭 나는 동안 은은히 나의 앞길을 밝혀주던 불빛과도 같았다. 공부하면서 집이 그리울때, 아파트의 답답함이 가슴을 조여올때, 엄마가 된다는 기쁨으로 만취해 있을때도, 난 이 시를 마음속으로 읊으며 시인이 노래한 삶을 열망해 왔다.

나에게는 이런 소박한 삶. 내 좋은 사람들과 달과 별을 바라볼수 있는 여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 나눌수 있는 여유. 그리고 작은 텃밭을 가꾸며 맨발로 뛰어노는 내 아이를 바라볼수 있는 여유. 아침 나절 놀러온 다람쥐나 새들을 구경하며 차 한잔 즐길수 있는 여유. 따뜻한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고, 올해는 어떤 꽃을 심을까 고민할수 있는 여유. 이 모든것들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요 사치이기도 하다.

난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노천명 시인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으셨고, 고독과 자학속에서 오로지 시작에만 정진하셨다고 한다. 나는 시인처럼 고독과 맞장을 뜰수 있을만큼의 대담함도 의지도없다. 그래서 나는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현세의 삶을 꾸려나갈수 있는게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9월의 마지막 날이다. 랄라는 다가올 10월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으며 학교로 향했다. 10월은 내가 태어나고 나의 아기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을을 맘껏 느낄수 있는 달이기도 하고,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할로윈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오늘도 이렇게 숨쉴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애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