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남편이 카페에 올린 글을 펌합니다.

 

지난 10월 10일에 웨스트 버지니아(W. VA)에 있는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에 다녀왔습니다. 하퍼스 페리는 웨스트버지니아와 버지니아 그리고 메릴랜드 3개주가 만나는 곳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경상남도가 만나는 지리산 삼도봉과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요. 뿐만 아니라 하퍼스 페리는 세난도우강과 포토맥강이 만나는 두물머리(the Confluence)이기도 합니다. 한국으로치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같은 곳이지요.

 

 (하퍼스페리 국립공원 사이트에 실린 사진)

 

 

한국에서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양수리가 제일 유명하지요. 양수리 뿐만 아니라 임진강과 한탕강이 만나는 파주 적성,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머리도 있습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마나는 두물머리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보면 잘 보입니다.

 

양수리는 안개와 가을햇살 그리고 낙엽이 어울어져서 가을 이 맘때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래서 가을의 양수리는 실연을 당해 상처입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우울한 청춘들을 위로해줍니다. 구스타포 크림트의 ‘입맞춤’(the Kiss) 같은 몽환적인 사랑을 꿈꾸고 싶은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을 꼬맹이 시절의 아르무스와 자주 찾았으니 제 정서가 다소 엽기적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다들 그렇듯이 양수리에서 막걸리에 파전 먹던 추억이 있고, 제가 좋아하는 다산선생의 사당에서 그분의 실사구시의 정신을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연의 아픔 같은 것을 느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초딩인 아르무스과 거기를 가곤 했지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강과 임진강의 두물머리는 한국의 서해의 위용을 자랑하는 정말 멋진 곳입니다. 광개토태왕이 영토확장을 위해 남진해서 거점으로 삼고, 이후 삼국이 다퉜을만한 지정학적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입니다. 전세계에서 두 강이 만나서 이렇게 장관을 만들어 내는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거기에는 슬픈 우리 역사가 개입한 흔적이 있습니다. 수난 속의 축복인지 몰라도 분단 때문에 수십년간 통제된 공간이라 자연은 스스로 장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두 강의 강폭이 서해로 흐르면서 넓어질 대로 넓어진데다가 두강에서 흘러내린 모래가 수십년간 강바닥에 쌓여서 원시의 강물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마구 자라난 갈대는 황혼의 달빛과 어울리면서 넓은 강물의 출렁거림에 어렴풋이 보일듯 말듯하는 모래바닥으로 오라 손짓하는 듯합니다. 새들은 자유럽게 넘나드는데, 우리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이 분단의 현장을 수난속의 축복이라 여기는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힐 뿐입니다.

 

넓고 넓은 미국 땅인지라 쉐난도우강과 포토맥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보다 더한 장관을 연출할 줄 알았습니다. 쉐난도우강과 포토맥강 그리고 그 옆을 지나는 블루릿지 산맥은 존 덴버에게 속았다는 느낌이 들게 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하지만 하퍼스페리는 비록 강의 규모는 작지만 쉐난도우강와 포토맥강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인 것만은 분명한가봅니다. 두 강이 만나니 사람들이 모이게되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모였으니 그곳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지요.

 

 (제퍼슨 바위, 나중에 보니 올라가지 말라는 글구가 있다. 난 그걸 그림으로 봐서 그냥 지나쳤다.) 

 

미국 노예해방의 역사에서 ‘하퍼스페리’를 빼놓을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이 보스톤의 사무엘 에담스 같은 급진파가 촉발시킨 것처럼, 남북전쟁은 과격한 노예해방론자인 존 브라운(John Brown)의 하퍼스페리 공격에서 연유된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존 브라운이라는 급진적 노예해방론자는 1859년 10월 15일 저녁, 그가 믿는 신의 명령에 따라 ‘모든 흑인노예에게 자유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하퍼스페리를 공격합니다. 그는 하퍼스페리는 지키는 경비대를 사살하고 무기고를 털었으나, 나중에 남북전쟁

에서 남군의 사령관이 된 리(Robert E. Lee)장군부대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존 브라운은 사형장에 끌려가면서 “노예제를 실시하는 범죄행위는 피를 부르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며 남북전쟁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존 브라운이 자유의 투사인가, 테러리스트인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네요. (이 대목에서 갑자기 삐딱해지기 시작한 저는 사무엘 아담스가 독립운동가인지 테러리스트인지에 대한 논란이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보스톤 학살을 과장해서 선동하고 보스톤 티파티꾸민 사무엘 아담스에 대한 논란은 없는데, 존브라운에 대한 논란만 여전한 것은 혹시 그가 흑인 편을 들어서?)

  

하지만 하퍼스페리가 존 브라운의 급진투쟁의 자취만 있다면 제가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존 브라운의 급진주의 대신 남북전쟁의 패장이지만 존경받는 리장군의 통합과 포용의 정신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퍼스페리에는 미국건국 무렵 최고의 르네상스형 인간인 토머스 제퍼슨의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Jefferson Rock이라 해서 뭔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위는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의 두물머리를 감상한 자리더군요. 역시 토마스 제퍼슨이다며 감탄을 했습니다. 그 바위를 보면서 버지니아 샬롯츠빌 근처의 별 것도 아닌 독립문 같이 생긴 그만한 크기의 바위에 대해 Natural Bridge라며 애정을 쏟은 이유를 추정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바위들에 일화를 남김으로써 토마스 제퍼슨은 짧은 미국의 역사에 스토리를 불어넣은 것입니다.

 

 

제퍼슨은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을 내려다보며 바위에 않아서 조망합니다. 그리고 ‘두강물이 만나 블루릿지 산맥을 가를 듯한 기개가 서리는 멋진 곳’이라고 한마디 던집니다. 이로서 밋밋하기만 하던 미국의 두물머리가 산맥을 가를 듯이 돌진하는 웅장한 곳으로 변합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참으로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의 양수리에 다산 선생이 있다면, 미국이 하퍼스페리에는 토마스제퍼슨이 있습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갔던 두사람 사이에 이런 공통점이 있네요.(억지로 찾은 것이지만...)

 

 

 

지금 하퍼스페리에서 존 브라운의 투쟁을 15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http://www.nps.gov/hafe/historyculture/john-brown-150th-commemoration.htm

http://www.johnbrownraid.org/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