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 놀며 생각하기

 

1) 올랜도에 가는 이유 아닌 이유

 

올랜도는 며칠 있어야 할 곳이지만, 어른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 핑계로 어른도 같이 노는 시설이지만, 어른들은 한두가지 놀이기구 타면 그게 그것일 수 있다.

 

한국의 유명놀이공원이나 올랜도나 놀이기구들의 원리는 비슷하지만, 올랜도는 더 다양화하고 더 대형화해서 세계최고의 놀이시설로 차별화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명성이 쌓이고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다. 유명한 곳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니 누구나 가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 구조’이다. 또 갔다 왔을 경우 유명한 곳을 갔다 왔다는 만족감이 크니 불편함을 상쇄하게 된다.

 

2) 미국의 꿈, 미국의 모순

 

올랜도의 엄청난 놀이시설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영화 록키4와 스파이더맨2가 생각났다. 선과 악의 대립구도라는 헐리우드 영화의 흔한 구도 말고 록키4와 스파이더맨2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선과 악의 대립구조 속에서 악은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게 된다. 즉 과학기술이 강함의 상징이 되고 악은 이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최강의 힘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악은 강한 힘을 가지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다.

 

반면에 선은 인간적인 감성과 의지에 의존한다. 록키4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이 기술문명을 이용해서 강한 능력을 갖추게 된 악에 저항하는 힘은 기술문명이 아닌 자연의 원리에서 나온다. 스파이더맨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자연의 상태는 선이고 과학기술을 이용한 인공적인 힘은 악으로 묘사된다.

 

이런 영화를 만든 미국 사람들이 현대기술문명을 집대성하여 올랜도에 거대한 인공 놀이기구를 만든 심리는 무엇일까? 적과 싸울 때 자신들은 인공과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인간의 감성과 자연의 원리에 충실한 것 처럼 묘사한다. 록키4와 스파이더맨의 선악구조는 사실상 적과 아의 구조이고, 여기서 선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실제 생활에서 자신들은 거대한 인공물에서 인공적인 쾌감을 즐기는 이 이중심리를 무엇으로 설명할까? 누군가가 영화를 만들어서 악은 인공놀이시설에서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쾌감을 느끼는 비인간적인 세력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선은 천연의 산과 들과 바다에서 자연과 어울리며 인간의 감성을 따뜻하게 키워 나간다. 이렇다면 올랜도의 인공시설을 즐기지만 자연은 외면하는 미국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실제로 세계최대의 놀이시설인 올랜도에는 숨막힐 듯이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만, 미국최대의 습지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에버글랜즈는 파리, 모기만 날리고 있다. 미국의 꿈을 묘사하는 영화와 비교해보면 현실에서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꿈은 정반대이다. 월트디즈니는 디즈니월드를 꿈이 이루어지는 곳(Dream comes true.)이라고 묘사했지만 미국인의 진정한 꿈은 무엇인가? 과연 꿈은 이루어졌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월트디즈니의 말대로 미국인들의 꿈이 디즈니월드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헐리우드는 앞으로 록키4나 스파이더맨2와 같은 영화를 만들 때 미국이 추구하는 선을 인공의 상징으로 대체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록키4 만들고 나서 미국사람들이 올랜도에서 즐길게 아니라 에버글래이즈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래야 모순이 안생긴다.

 

 

3) 스토리와 캐릭터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에 참가한 NGO들이 유명한 인어공주 동상 앞에 얼음 팽귄을 설치해놓았다. 북극의 팽귄이 녹는 모습으로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작품인데, 한국의 설치 미술가인 최병수씨의 작품이다. 미국 사람들 가운데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궁굼해졌다.

 

미국이 만들어낸 캐릭터와 스토리가 세계 어린이들의 꿈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안델센이 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델센을 대체한 사람은 바로 월트디즈니이다. 그 점만으로도 월트디지니는 어린이들의 꿈을 현실화시키는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업에 성공했다는 점이 안델센과는 다르다고나 할까?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 퍼레이드에도 수많은 미국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것을 보며 자란 세대들은 그 퍼레이드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나도 유니버설올랜도에서 ET를 보며 가슴 뭉클해졌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킹콩 사진을 보며 흥분했으니까.

 

우리 아이들에 우리는 어떤 꿈을 심어주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어낼 것인가? 우리의 설화, 신화, 민담, 전설, 동화, 역사 등에서 스토리를 재창조하고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동이족 신화와 고구려 벽화가 떠올랐다. 고구려벽화에는 상상력의 보고이다. 온갖 동이족 신들이 고구려벽화속에 살아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 하고 동이족의 범주에 여진까지를 다 포함시키지 않았던가?

 

고대에 지금과 같은 국경선이 어디 있었겠는가? 동아시아 일대의 수많은 종족들이 서로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역사를 만들어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이족의 신화를 과감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미 고구려 벽화에 올림푸스의 신 못지 않은 많은 신들이 있지 않는가?

 

이 상상력의 보고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러던 터에 유니버설 스투디오에 있는 Hollywood Ride Rockit이라는 롤러 코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에 철로로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는데 어떻게 저 동그란 철로를 탈까 유심히 보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비꼬인 철로를 따라 하늘에서 비비꿔며 한바퀴 도는데, 강서대묘의 현무도와 똑 같았다.

 

현무도는 거북과 뱀이 뒤엉켜 있는 유명한 그림이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4신 가운데 현무는 북방을 수호한다. 현무도에서 뱀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는 형상을 직접 보지 못한 일본 미술가들은 입체감이 없는 그림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1985년도에 동경에서 고구려전시회가 열렸을 때 현무도를 본 일본 미술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6세기 고구려 벽화에서 이렇게 입체감이 뛰어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일본 미술가들이 놀란 그 입체감이란 다름 아닌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원리이다.

 

Hollywood Ride Rockit이라는 롤러 코스터가 현무도와 아무 관련이 없이 만들어진 놀이기구이겠지만, 우리의 경우 Hollywood Ride Rockit 과 같은 원리의 롤러 코스터를 만들면서 이를 현무도처럼 꾸밀 수 있지 않을까?

 

 

강서대묘의 현무도, 뱀 모양 동물의 몸통이 겹치는 곳은 원근법으로 처리하고 있고, 감기는 곳은 뫼비우스 띠처럼 입체감이 있다.

청룡도, 강서중묘의 주작도와 함께 당대 최고의 동아시아 걸작품이다.

 

 

 공중에서 꼬인 철로를 따라 기차가 돌고 있어서 짜릿함이 극치를 이룬다.

이 롤러코스터를 응영한 현무도 롤러코스터를 한번 만들어 봄직하다.

   

 

 

스토리와 캐릭터의 창작이 꿈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서울에서는 쥐잡기에 열심이지만 디즈니는 쥐를 훌륭한 캐릭터로 만들었다. 이걸 가지고 한국쥐는 밉상이지만 미국쥐는 이쁘다고 할 수 없다. 올랜도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