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일 관계로 콜로라도 볼더에서 2013년 여름 한 달여를 지냈습니다. 지내면서 와이오밍, 사우스다코타 등 북쪽으로도 가 봤고, 남쪽으로는 콜로라도 남쪽의 Great Sand Dunes국립공원까지 가 보았습니다. (뉴멕시코 쪽은 아쉽게도 못 가봤구요) 미국의 대자연을 온 몸으로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전에 한 번 여행기를 여기에 올려보니 이 곳 여행을  계획 중이신 분들께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람이 있고, 제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 더 늦기 전에 기록을 남겨봅니다. 이 여행은 콜로라도에서 캘리포니아까지의 자동차 여행기입니다.

자동차 여행기다 보니 렌터카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할 듯 싶어 이에 대해 잠시 말씀드릴게요.

저희는 애가 셋인데다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떠나는 상황이었고, 캠핑용품, 식량 등까지 있다보니 짐이 기본적으로 많았어요. 거기에다가 ONE WAY로 렌트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가격이 상당히 높았구요. 고르고 고르다가 미니밴은 너무 비싸 포기했고,일단 full size로 제일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FOX에 예약을 해 놓고 덴버 공항에 픽업하러 갔더니 아주 약간만 돈을 더 내고 SUV로 업그레이드해 주겠다고 해서 여러 차를 비교하다가 짐 공간이 제일 넉넉한 jeep을 선택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렌트하실 때  일단 작은 사이즈로 예약을 해 두시고 차를 픽업하러 가실 때 딜을 잘 하시면 매우 적은 요금만 내거나 아예 추가요금 없이 다음 사이즈의 차로 업그레이드 해 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가령 economy로 예약을 해도 그 날 그 사이즈의 차가 없으면 다음 사이즈의 차량을 제공받는 것이지요.  그리고, 덴버에서 LA까지 (아니면 그 반대로) one-way 로 렌트하시는 경우 FOX가 다른 업체에 비해 저렴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DEN (덴버공항)픽업 LAX (LA공항) 리턴으로 하기 보다 DEN픽업 LAS (라스베가스 공항)리턴으로 하고 LAS픽업 LAX리턴으로 따로 예약하는 것이 더 저렴했습니다. 아마 근거리로 예약하는 것이 더 저렴해서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라스베가스에 가면 타던 차로 계속 renew할 지 다른 차로 바꿔 탈 지 물어보는데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여행 중에 음식 등이 계속 줄었고, 라스베가스 이후부터는 캠핑이 필요 없어서 담요 등 캠핑용품들을 다 처분하고 라스베가스에 가서 좀 더 작은 차로 갈아탔습니다.

<Day 1>

볼더에서 출발하여 한시간여 가다가 70번  하이웨이를 타고 Grand Junction이 나올 때까지 계속 달렸습니다. 중간에 스키장으로 유명한 Vail도 지나고, 큼지막한 온천풀이 있는 Glenwood Springs도 지났구요. 초록색 산악지형이 점점 갈색 황무지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콜로라도에서 유타로 넘어갈 때는 이렇게 70번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제일 빠르고도 쉬운 길이겠지만 그만큼 콜로라도의 묘미를 만끽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유가 있으시다면 국도로 가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저희가 이전에 다녀온 루트를 잠깐 소개해 드릴게요. Estes Park에서 Rocky Mountain National Park를 관통하는34번 국도로 가다 보면 한여름에도 눈덮인 산 바로 옆을 드라이브하며 엘크, 무스를 만나는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지도 받으셔서 군데군데 나오는 트레일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잠깐씩 하이킹 하면서 가도 좋구요. 이렇게 34번으로 계속 가면 공원을 빠져나오게 되고 바로 Granby에서 40번으로 갈아타서 조금만 서쪽으로 가면 Hot Sulphur Springs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 곳 온천이 아주 유명해요. 미국의 대부분의 Hot Spring이 따뜻한 물 나오는 큰 풀장 하나 갖춘 시설인데 비해 이 곳은 노천온천탕이 10개가 넘고, 탕마다 나름 테마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입니다. 여기 저기 탕에 옮겨 앉아 바깥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보면 가끔씩 기차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예전에 일본에서 살던 시절의 노천온천이 떠올랐어요.가격은 어른 한 사람당 $18로 약간 비싼 편이며 (애들은 반값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10세인가 미만 아이들은 입구에 있는 탕 3개만 이용할 수 있는데요, 온천을 좋아하시면 가보실만 합니다. 온천수 자체를 그대로 흘러보내고 있으며 유황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보기드문 하이 퀄리티의 온천입니다.  보기엔 때가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황성분이 고체화 된 것으로, 일본에서는 유노하나 (탕의 꽃)이라고 해서 바닥에 가라앉은 이 성분을 파우더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거든요. 한 가지 더 좋았던 건 주변에 식당이 마땅치 않았는데 반갑게도 우리나라 사발면을 팔더군요. 물도 끓여 주구요.. 맛나게 먹었습니다.

 온천 얘기가 길어졌는데요, 40번으로 계속 서쪽으로 가다가 Kremmling이라는 곳에서 9번 South로 갈아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70번 하이웨이와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바로 하이웨이를 타고 가셔도 되구요, 좀 더 시간이 있으시다면 91 south, 24 south로 가시다가 82번 국도로 바꿔타시고 Aspen까지 가는 길도 장관입니다. 콜로라도의 깊은 숲 속의 청량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단, 이 길은 높은 산을 하나 넘어야 하고 도로 폭이 좁아 안전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날씨도 급변해서 저희가 갔을 때에는 갑자기 우박이 떨어져 마치 온 세상이 눈이 온 것처럼 변하기도 했습니다. Aspen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니까 설명은 생략하구요, 저희는 Maroon Bell이 참 좋았었습니다. 입장료가 $5인가 있는데, 국립공원 annual pass있으면 그냥 들어가실 수 있어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계속 70W로 가다보니 Grand Junction에 도착했습니다. 아담한 Grand junction visitor center에 잠깐 들렀구요… 저희는 출발 자체를 늦게 해서 여기 도착하니 오후 5시 정도가 되었습니다. 가까이에 무슨 공룡 센터도 있었는데 이미 문을 닫은 뒤라 가지는 못했어요. 저희 여섯 살 아들이 무지 아쉬워했답니다.

저희가 여기에 온 목적은 하나, Colorado National Monument를 보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곳이 그렇듯, 이 곳 역시 차로 한 바퀴 휙 돌아볼 수 있는 곳이구요, 저희도 입구에서 지도 하나 받아서 한 바퀴 돌고 메인 스팟에 내려 사진도 좀 찍었습니다. 상당한 깊이의 절벽을 바로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데 한 번 꼭 가 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부지런히 차를 몰아 70W로 가니 곧 유타 주 표지판이 나오고 이내 나오는 황무지. 어쩜 주 하나 달라졌다고 풍경이 이렇게 바뀌냐… 신기해 하며 128번 국도를 탔습니다.  191번 국도가 길 자체는 더 좋을 것 같은데, 128번은 scenic route로 지정되어 있어 그런지 유타의 각종 황량한 지형들이 매우 장관이었어요.

한 시간 정도 돌 무더기산을 헤치고 가자 오늘 우리가 묶을 Moab에 도착했습니다. 이 도시는 유타 남동부의 각종 국립공원들의 관문역할을 하는 도시로 생각보다 꽤 컸고, 각종 숙박시설, 식당 등도 거리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문제는 비용. 어지간한 곳들은 다 100불은 넘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캠핑을 하기로 해서 호텔거리는 다 스킵하고 미리 예약해 둔 KOA에 가서 바로 텐트를 쳤어요. 이번 미국 생활 동안 캠핑을 새로 접하게 되어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길가다 맘에 드는 캠핑장 나오면 바로 하루 거할 곳이 뚝딱 완성되는 동시에 각종 부대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매력입니다. 호텔비의 반도 안 되다 보니 호텔대신 캠핑숙박을 며칠만 해도 장비구입하는 비용을 뽑고도 남습니다. Moab은 날씨도 춥지 않아 더욱 좋았고 KOA캠핑장 내에는 작으나마 수영장도 있었습니다. 밤이 늦어 텐트 치면  어두워져 텐트치기가 많이 힘들기 때문에 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텐트치고 좀 놀다가 다음날의 긴 여정을 기약하며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Day 2>

  5시에 기상. 텐트며 이불은 내버려두고 자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부지런히 떠납니다. 어디로? 유타 plate에도 나와있는 유타의 아이콘 아치를 보러… Arches 국립공원에서 일출을 볼 계획입니다. 그런데 지도에서 볼 때는 작아보였는데 입구에서부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구요. 이 공원에는 수도 없이 많은 아치들이 있는데, 그 중 제일 유명하다는 Delicate Arch를 제일 먼저 보려고 부랴부랴 갔습니다. 어슴프레 동이 터오려 할 때 주변 풍경이 바뀌는 장관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드디어 Delicate Arch주차장까지 왔는데 아뿔싸. 차에서 내려서 1.5마일을 걸어가야 한답니다. 어른들이야 어떻게든 가겠지만 애들이 걷기엔 너무 멀고, 이제 곧 뙤약볕이 쏟아질 거 같기도 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다른 루트로 돌아가면 멀리서나마 이 아치를 볼 수 있긴 길이 있긴 한데 가 보니 손톱만하게만 보이고, 그나마 여기 올라가는 것도 어린이가 있다면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Devils Garden에 갔다가 Window쪽으로 해서 돌아 나왔는데, 아이들과 여행하신다면 이 쪽으로 가시는 것이 많은 아치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비지터 센터로 와서 늘 하듯이 work book을 받아 작성하고 제출을 해서 주니어 레인저 배지도 받고 국립공원에 대한 지질학적 설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를 먼저 들르시고 공원에 가 보시면 왜 아치가 생기는 지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하면 시간적으로 좀 늦게 될 것 가타고, 제일 좋기로는 인터넷 등에서 미리 학습을 하시고 공원에 해 뜨기 전에 도착하셔서 적막의 아치 사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이 공원은 최소한 반나절은 잡으셔야 여유있을 것 같아요. 심지어 공원안에서 캠핑하면서 느긋하게 보내도 좋을 것 같구요. 저희는 대충 2시간이면 되겠지… 했는데 오전이 여기에서 거의 다 가 버렸습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그랜드캐년까지 가야 해서 바로 옆에 있는 Canyonlands National Park는 다음을 기약하며 패스해 버렸습니다.

 다시 캠핑장까지 와서 텐트 걷고 출발을 하니 11시가 되어 버렸네요.. 밥 먹을 시간도 없고 가지고 있는 식빵에다가 잼, 치즈등으로 샌드위치를 급조해 먹고 출발. 191번 타고 계속 가다가 160번으로 갈아타고 가면 제일 쉬울텐데 가다보니 scenic route라는 데에 급 호기심 발동하여 Blending이란 마을에서 95번으로 타고 유유히 가 봤습니다. 이 길로 가면서 얻은 최대 소득은 Natural Bridges National Monument를 볼 수 있다는 것. 아치스국립공원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사이즈이지만 그만큼 한 시간가량 부담없이 일주하면서 natural bridge들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질학적 원리는 아치스랑은 판이하지만 저 같은 문외한에게는 그게 그것인 것처럼 보이고 아치스보다 가까운 위치에서 조망이 가능하여 훨씬 생동감 넘쳤습니다. 비지터 센터에서는 배지는 물론 주니어 레인저 certificate도 받았구요. 가족들이랑 간다면, 그리고 시간이 얼마 없다면 차라리 여기를 보시는 것이 더 알찬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또 다시 길을 떠납니다. 갈아탄 261번 국도는 가장 유타다운 풍경을 자아내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풍경들의 연속입니다. 단, 깎아지른듯한 돌산을 굽이굽이 내려와야 하고 길 옆은 낭떠러지라 운전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희가 렌트한 jeep이 톡톡히 한 몫 했던 구간입니다. 한 시간쯤 달렸을 때 만난 또 다른 명소는 바로 Goosenecks State Park입니다. 보시면 왜 이름이 그러한 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구불구불 곡류의 강이 수억년동안 만들어낸 협곡엔 그 동안의 세월이 오롯이 새겨져 있습니다. 소리도 안 내고 천천히 흐르는 강물 (그랜드캐년의 콜로라도 강과는 또 다른 강입니다)이 어떻게 이렇게 깊게 땅을 깎아내릴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랜드캐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사람도 거의 없고 해서 훨씬 조용하게 장엄함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더 오래 있으면서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지만 일정이 많아 이만 작별. 또 한 시간 가량 가니 나오는 곳은 바로 포레스트 검프가 한참을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서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던 Monumenet Valley입니다. 유튜브에서 이 장면을 보고 가시면 더 와 닿습니다. 이 장면에 나왔던 곳 바로 입구에 나바호 부족 마을 자치구 입구가 있는데 여기에는 three mittens가 정말 글러브 세 개 처럼 우뚝 솟아있습니다. 저희는 혹시나 해서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가 그냥 사진만 찍고 다시 나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어차피 밖에서 다 보이기 때문에 굳이 돈 내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안의 비포장길을 달리면서 더 깊게 보고 싶다면 들어가는 것이 맞을 것 같구요. 입장료 받는 사람부터 해서 나바호족으로 추정되는 용모의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의 슬픈 역사를 미리 알고 가면 느끼는 바가 더 클 것 같습니다.

   저희는 또 길을 재촉합니다. 곧바로 주경계를 넘어 아리조나에 들어섰습니다.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주를 넘어서는 순간 돌산의 장엄한 황량함이 좀 밋밋해 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콜로라도에서 유타 넘어갈 때도 뭔가 풍경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런 건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63번, 160번, 89번 국도를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좀 지루하게 달려 64번 국도로 접어드니 또 다른 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바로 숲이었습니다. 콜로라도를 떠나면서 사라졌던 녹색이 다시 보이고 고도는 점점 높아지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오늘의 종착점인 Grand Canyon국립공원의 동쪽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어디서나 빛을 발하는 annual pass를 보여주고 통과. 여기에서 또 한 시간을 여유있게 달립니다. 군데군데 point가 있어서 가끔 내리면서 해 지기 직전의 그랜드 캐년 맛배기도 보고, 종종 출몰하는 꽤 큰 뿔사슴도 보면서 Grand Canyon Village안에 예약해둔 Mather Campground 에 등록하고159번 site로 가서 부지런히 텐트를 칩니다. 이미 어두워져서 차량 라이트를 이용해서 텐트를 치니 밤 8시가 되었습니다. 그랜드캐년에서 캠핑자리 구하기 어렵다고들 하던데 저희는 일주일 전에 인터넷 들어가서 보니 두 자리가 있더라구요. 지도상으로는 큰 길 근처라 밤에 시끄러우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길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 매우 조용했어요. 앞 분간도 제대로 안 되는 칠흙 같은 어둠에도 배는 꼬로록.. 가져온 짜파게티를 어떻게든 커피포트에 넣어 끓여먹겠다는 일념으로 남편에게 애들을 맡겨두고 간신히 전기나오는 곳(화장실)을 찾아 물을 끓였는데 너무 깜깜해서 도저히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어요. 거의 40분 걸려 어느 분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가족과 상봉하고 다섯식구가 불어터진, 하지만 너무너무 맛있는 면발로 요기를 했습니다. 배 고플 땐 아무 것도 안 보이더니 배가 차니 문득 하늘에 별이 정말로 많다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 이래서 캠핑을 하는 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딱 로맨틱한 분위긴데? 말만 하고는 그대로 쓰러져 잤습니다. 유타에서 아리조나로 넘어가면서 벌어두었던 한시간까지 더해서 하루를 완전 풀로 사용한 날이었어요.

<Day 3>

   5시 기상. 텐트에서 잠을 자면 깨우지 않아도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눈이 떠집니다. 아직 한밤중인 애들을 깨워서 차에 태워서 5분 거리의 Yavapai Point로 갔습니다. 서서히 낮이 밝아오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랜드캐년은 백문이 불여 일견이었습니다. 멋진 캐년을 배경으로 이틀간 제대로 세수도 못한 우리 가족의 몰골을 담은 사진은 매우 드라마틱한 대조를 이루었구요. 사람도 없는 조용한 캐년에서 명상하듯 앉아 있다 보니 속속 관광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저희는 다시 캠핑사이트로 돌아갔습니다. 어제 밤에는 깜깜해서 잘 몰랐는데 알고보니 우리가 완전히 숲 속에서 잤던 것이었어요. 그동안 캠핑해 봤던 곳과는 차원이 다른 빽빽한 숲 사이였고, 이런 곳에서 20불을 내고 머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RV카에서 TV를 보며 우리의 부러움을 자아냈던 옆 사이트의 가족은 이 곳에서만 열흘을 머문다고 하더군요. 차 렌트비의 압박을 느끼는 우리 가족으로서는 언감생심. 빨리 자리를 정리하고 오늘의 종착지인 라스베가스로 출발했습니다. 서둘렀던 또 하나의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덴버에서 라스베가스까지의 처음 렌트계약 48시간을 라스베가스에 가서 갱신하기로 되어 있는데, 아무리 같은 차로 갱신한다고 하더라도 48시간을 초과하면 (Grace Period해서 49시간) fee가 많이 붙는다고 해서였습니다. 여행하다보면 이런 제약들이 성가실 때가 많지만 집 떠나온 순간부터 제약이라는 것은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것 같고, 오히려 제약은 추억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일단 출발하면서 빌리지의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마죽을 먹고 (가루에 물 부어 먹는 것으로 오트밀과 비슷) 정문으로 나가서 64번 국도를 타고 40번 하이웨이를 지나 하이웨이 같은 93번 국도를 타고 네바다주 진입. 유타의 돌들이 아리조나를 거치면서 입자가 점점 작아지고 네바다에 가서는 더 작어져 사막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새파랗게 나타난 Lake Mead는 주변 풍경과 대비 되어 더욱 파랬습니다.

딱 49시간만인 오후 1시에 라스베가스 Fox렌트카 오피스에 도착하여 계약을 리뉴하고 여러 차량을 본 결과 한 사이즈 작은 full size세단으로 바꿔도 될 것 같아 과감히 짐을 줄였어요. 앞으로 캠핑할 일이 없어 부피를 차지하고 있던 담요, 매트를 아쉽지만 버렸습니다. 새로운 차로 바꿔타니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네요~ 바로 호텔로 갔어요. Vdara를 할까 고민하다가 위치가 좀 안 좋지만 가족단위 여행객에게 평이 좋았던 Hilton Grand Vacations Suites을 선택했습니다. 스트립 중심지에서 좀 멀다는 단점을 빼고는 (그래도 스트립에 있긴 합니다!) 매우 좋은 호텔이었습니다. 수영장도 좋고, 카지노가 아예 없고, 무엇보다 모든 객실이 1 bedroom suite인데, 거실의 소파도 sofabed이고, TV도 거실, 침실 (침대 매우 안락)에 각각 있고, 세탁기 및 간단한 조리 기구가 완비되어 있는 매우 훌륭한 주거공간이 80불입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틀간 식빵과 마죽, 그리고 과일과 과자등으로만 연명했던 저희들에게는밥과 국과 김치가 눈에 아른거렸어요. 어떤 호텔의 무슨무슨 부페가 유명하다 해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침 호텔과 가까이 있던 김치식당에 가서 3시에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하여 중간에 저녁식사로 마인드를 바꿔 5시까지 먹었습니다. 이 식당도 세미부페여서 몇 가지 음식 및 샐러드, 디저트는 무한리필이 가능했습니다. 굳이 고기를 구워먹지 않아도 음식이 정갈하고 깨끗했습니다. 유명 호텔의 부페에 가는 것 보다 값도 저렴했구요. 주린 배가 산처럼 불러져서 나오니 이제 호텔시설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얼른 돌아가 수영복을 갈아입고 신나게 수영을 했죠. 콜로라도에서는 한여름에도 해 떨어지면 서늘했는데 네바다에 오니 적도에 온 것 같이 밤에도 후끈거려 수영하기엔 제격이었어요.

  이틀간 캠핑을 해서 몹시 피곤했지만 라스베가스의 야경을 놓칠 수 없어 한 바퀴 스트립을 돌기로 하고 차에 탔으나 1분도 안 되어 모든 아이들이 떡실신하는 바람에 남편이랑만 조용하게 한 바퀴 돌았습니다. 8년만에 가 본 라스베가스는 여전히 수많은 인파들로 붐볐고 스트립 거리는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호텔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벨라지오의 분수쇼는 여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매우 감사하게도 저희가 머문 호텔은 카지노가 없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호텔에 도착하는 순간 띠리링~ 슬랏머신 소리를 들으면 어느 새 앉고 보게 되는 라스베가스의 일반적인 호텔과는 달리 유혹(?)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 너무 좋았습니다.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 시트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자마자 그대로 뻗었습니다.

<Day 4>

이 날은 하루 종일 라스베가스. 같은 호텔에 계속 있으면 편하겠건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남편의 철학(?)으로 다른 호텔로 옮겼습니다. Tuscany Suites and Casino. 이 호텔은 26불이라는 어메이징한 가격 대비 괜찮은 호텔이었습니다. 위치는 플라밍고 뒤쪽으로 세 블록 정도인데 아이들은 걷기 좀 힘들지만 어른들은 걸어서 벨라지오까지  10~15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이름이 Suite가 들어가서 인지 거실 소파는 sofabed여서 다섯 식구가 다 같이 자기 좋았고, 수영장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이 날 했던 것은 별 거 없구요, 토다이에 가서 늦은 점심 먹고 (음식 퀄리티는 솔직히 좀…) 베네치안에 가서 곤돌라 타기 (너무 비싸고 아이들 할인 절대 없으며 네 명까지만 탈 수 있어 아빠는 못 탔다는… 게다가 뱃사공 아저씨의 피날레 노래가 하이라이트인데 아저씨가 장시간 배를 저으신 탓인지 몹시 피곤하신 듯 목소리도 잠김), 호텔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해 떨어지고 나서 스트립 걸으며 야경 및 쇼 감상 등 이 도시에서 흔히 할 수 있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호텔에서 스트립까지 거리가 애매하게 멀어 남편이 저와 애들을 미라지 호텔 근처에 내려주고 벨라지오 앞에서 픽업하느라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래서 스트립 중심의 비싼 호텔들은 비싼 이유가 있나봅니다.

<Day 5-7>

여기서부터는 캘리얘기이기 때문에 후기도 수없이 올라와 있고, 저희 일정이 딱히 특별한 것도 없고 해서 간단하게만 쓰겠습니다. Tuscany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기름 가득 채운 뒤 LA까지 무정차로 가서 오랜만에 BCD순두부를 맛 보았습니다. 한국에 역수출까지 하기도 한 이 음식은 솔직히 한국의 어느 순두부보다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체인점이 있는데 이 맛이 안 나요. 가득 배를 채우고 남편이 전에 잠깐 몸담았던 UCLA를 둘러 본 뒤 바로 Irvine으로 내려 가서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고 Buena Park의 한 모텔에서 취침.

다음 날엔 Beach Blvd를 따라 주욱 내려가 헌팅턴 비치, 뉴포트비치에 가서 놀았습니다. 콜로라도의 산악지대에서 출발하여 드디어 태평양에 다다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대륙횡단까지는 아니어도 애들 셋 데리고 작게나마 뭔가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서퍼들 사이에서 물에도 좀 들어가 봤는데, 이상저온 때문이었는지 물 온도가 너무 낮아 오래는 못 있었어요. 이제 여행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고 LAX공항으로 가서 차를 반납하고 근처 호텔에 머물며 쉬었습니다. 참고로, Fox렌트카 바로 앞에는 Travelodge가 있는데, 여기를 예약하시면 차 반납하고 공항까지 셔틀로 가서 다시 호텔 셔틀을 타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반납뒤에 길만 건너면 바로 모텔이 나옵니다. 수영장도 아담한 것이 좋고, Denny’s도 딸려 있어 식사하기도 편해요. 호텔 셔틀이 24시간 있어서 다음 날 공항 가기도 좋구요.

이 다음 날에는 5시에 기상하여 (유독 이번 여행엔 5시 기상이 많네요^^) 호텔 셔틀타고 공항에 갔고, 이로서 일주일 간의 이번 여행은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