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째>
새벽 5시30분에 일어난 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여행 중 가장 아침이 잘 나온 필라의 숙소를 떠나 워싱턴으로 향했다. 먼저 알링턴에 예약해 놓은 숙소로 가서 차를 주차해 놓겠다 고 양해를 구한 뒤에 가방을 챙겨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숙소 바로 앞에 로실린 역이어서 디씨로 나가는 것은 아주 편했다. 지하철을 타기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그 깊이가 아주 대단했다. 공상 과학 영화를 찍었다면 분명히 여기서 찍었을 만한 곳이었다. 지하철도 이용하기에 아주 편리했고 시설도 아주 좋았다. 치안이 가장 안전하다는 워싱턴은 계획 도시답게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먼저 미국 역사 박물관을 구경했다. 실물의 아주 옛날 자동차, 마차, 전차, 증기 기관차, 트럭, 컨테이너 차들과 여러 농기계들을 보고 있으려니 도대체 이 박물관은 어느 정도 크기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 다음은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서 동물과 공룡뼈, 여러 가지 보석, 지구의 역사를 보고 느끼다 보니 아이들이 질문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공룡이 멸종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곳에서는 아주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을 보니 재미가 새록새록 나는 것이었다. 공룡이 지금도 살아 있으면 좋겠다고 얘길 하다가는 만일 그렇다면 인간이 모두 잡아 먹힐지도 모르니까 없었으면 좋겠다고 애길 했다가 진짜 공룡을 타 봤으면 좋겠다느니 하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 해가며 재미나게 구경을 했다. 다시 그곳을 나온 우리는 사이언스 박물관으로 가서 비행기와 우주선을 구경했다. 별똥별에 관한 애기, 지구, 달, 태양에 관한 애기도 하게 되다 보니 아들 녀석한테서 모르던 사실을 배우게도 되었다. 역시 책의 힘은 위대한 것이야 라고 생각을 하면서 후덥지근한 워싱턴의 날씨를 헤치며 백악관으로 향했다. 9.11 이 일어난 후로 경계가 삼엄해져서인지 곳곳에 바리케이트들이 쳐 있고 경찰들이 많이 있었다. 백악관 앞에서 사진을 찍고 라파예트 광장을 거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12일째>
오늘은 하루 동안 횟수에 관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6불 50하는 일일 패스권을 끊어서 먼저 펜타곤으로 향했다. 왠지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다 싶더니만 역시 투어는 안 된다고 했다. 국회 의사당은 오전 8시에 줄을 서서 9시에 표를 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또 다시 사진만 찍는 수밖에 없었다. FBI, 조폐국 등 모든 공공 기관들이 9.11 이후 접근도 어려워지고 투어도 없어진 상태였다. 걸으면서 본 또 다른 박물관 하나, 허쉬혼 뮤지움. 정말 건물의 모양이 도넛 모양으로 아주 특이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내린 곳은 알링턴 국립 묘지. 우리는 이 알링턴 국립 묘지에서 케네디 기념관과 30분마다 거행되는 위병 교대식을 보고 나오면서 아이들과 전쟁이며 국립묘지에 있는 이름 없는 병사들의 묘지에 관한 애기를 나누었는데 말을 타고 가는 검은 제복을 입은 군인과 마차를 보게 되었다. 지켜 보던 사람들이 모두 애도를 표하고 그 넋을 위로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디씨로 나가서 워싱턴 기념탑, 세계 제 2차 대전 기념관, 그리고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왔던 Reflecting Pool을 지나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상상했던 그런 곳이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링컨 기념관에서 바라본 광경은 참 시원하고 멋이 있었다. 계단에 앉아서 선선히 부는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니 피로가 확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 옆의 한국전 참전 용사비를 보면서는 숙연해지는 느낌이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비는 공사 중이어서 보질 못했다.
아인슈타인 동상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아인슈타인 과학 아카데미에서 비를 피하는데 이 비가 아주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억수 같이 내리더니 갑자기 우박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 우박을 만져 보면서 서로 왜 우박이 내리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이번 여행의 아쉬워하면서 링컨 기념관의 야경을 보러 나갔다.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기념관에는 해가 진 후 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우리 부부와 며칠 더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과 입씨름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나면 꼭 계획을 세워 여행을 하자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집으로를 외치면 숙소로 돌아왔다.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고 아이들과도 더 친해지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여행을 마치면서 아이들이 여행하면서 쓴 일기장에 그동안 모은 지도와 안내 책자들을 붙이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운전을 하면서 오다보니 저 멀리 시카고의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반가웠다. 13일 만에 온 우리 집, 몰려오는 피로감에 푹 쉬는 것만 남아 있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여행을 한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이번 여행 후 아이들은 더욱더 열심히 책을 보게 되었고 큰 아이는 영화를 보는 것에 더 푹 빠져 버렸다. 여행하면서 본 것들이 나오면 너무 반가워하고 먼 나라 이웃나라를 여행하면서 열심히 보더니 이제는 역사책을 구해서 읽혀야 할 것 같다. 여행을 다녀와서 학교가 개학을 해서 아이들이 새 학기를 맞이 했는데 수업 시간에 여행 중에 보았던 곳에 대한 것을 많이 보고 얘기를 들었다며 서로 떠들때는 여행의 기쁨이 한층 배가 되는 느낌이다. 더 밝아지고 건강해진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공부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할일이 하나 생긴 것 같다. 아이들을 데리고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새벽에 일출을 보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보았던 그 장관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