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어김없이 돌고돌아
또 다시 시원한 팥빙수가 그리워지는 여름입니다.
시원한 호숫가 그늘에서 에메랄드 색깔의 호수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없이 한 나절쯤 빈둥거리고 싶은 계절입니다.
호수 둘레를 산이 에워싸고
산 정상엔 보기만 해도 청량감이 느껴지는 빙하가 있다면...
호수가에는 이름모을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리고
야생화 옆으로 산양과 엘크 따위가 어슬렁거린다면...

 

캐나다 서부 로키산맥에 자리잡은 밴프 국립공원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밴프시 북동쪽에 위치한 미네완카 호수.
'미네완카'는 인디언 말로 '물의 정령이 깃든 호수'라는 뜻이랍니다.
20세기 초 댐으로 막아 호수가 더 커졌습니다.
송어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밴프 호수나 강들, 특히 보우강 등지에는 물고기들 천지인데
보다 북쪽의 호수들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군요.

호수가 너무 깊이 언 나머지

산소 결핍으로 물고기가 떼죽음당하는
이른바 'winter kill' 현상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이 찾았을 때는 시끄러운 모터보트도,
낚시꾼들도 보이지 않아
물의 요정이란게 있다면
거처로 삼을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수기인 7월인데도 생각보다 한산.
문명이 인간들을 이 곳에 불러들이기 전까지는
더욱 한갓진 곳이었겠지요.

 

밴프시에서 그 유명한 루이스 호수까지는
곧장 질러가는 TransCanada HIghway 대신
쉬엄쉬엄갈 수 있는 Bow Valley Parkway(HIghway 1A)가 운치가 있습니다.
중간 중간 쉼터와 캠핑 그라운드가 있고
존스턴 협곡으로 이어진 산책로도 있거든요.
잠시 차를 세워놓고
이 산책로를 따라 걷습니다.

야생화가 피어있는 오솔길도 지나고
계곡 비탈 절벽에 설치된 아슬아슬한 난간도 지나갑니다.
3km 쯤 걸어가면 조그만 폭포도 만날 수 있습니다.
폭포 밑 웅덩이는 비취색으로
항상 수온이 4도 안팎이라는군요.

 

트레일을 마치고 다시 북쪽으로 가다보면
밴프와 레이크 루이스 중간 지점에
마치 중세시대 성채를 닮은 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름도 Castle Mountain입니다.

한 때 미국 대통령 이름을 따서 아이젠하워산으로 불렸습니다.
쿠트니 국립곡원의 라디윰 온천을 찾아 몸을 풀고 싶다면

이 산 아래에서 93번 도로로 갈아타실 수 있습니다.

 

대개 레이크 루이스를 찾는 여행객들은
에피타이저나 디저트로 모레인 호수를 찾습니다.

호수 주위로 머리 위에 빙하를 인 10개의 봉우리가 호위하고 있어 이채롭습니다.
이 봉우리들은 20달러 짜리 캐나다 지폐에 배경 화면으로 사용된 적도 있답니다.
가장 높은 델타폼 봉우리 높이가 무려 3424m에 이릅니다.
산에서 굴러내린 돌이 자연제방이 돼서
만들어진 호수라는군요.

 

드디어 세계 10대 절경의 하나라는
레이크 루이스 도착.

호수 뒤 빅토리아 산이 구름에 덮혀있어 답답하시죠?

저도 아쉬워서 그 다음날 아침 다시 찾았습니다.

한결 시원한 전망입니다.
호수 위로 카누들이 점점이 떠있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 이름을 딴 이 호수는
빅토리아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려 고인 것으로,
그 때문에 호수는 눈이 시릴 정도의 청록색을 띠고 있고
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인 6도 안팎의 수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밴프 호수들 특유의 청록색은

빙하 녹은 물 속에 가는 모래(微砂)나 침적토 같은 암분(岩粉)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빛을 받아 반사시키면서

우리들의 눈을 황홀케하는 것이지요.
시간과 빛의 양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나오지만

대개는 청록색입니다.
터키옥 빛, 에머랄드 빛, 비취 빛 등등의 표현들이 있는데,

glacial-green이라는 표현이 사실적이어서 제일 맘에 듭니다.

정면의 빅토리아 산 양 옆으로는

르프로이산과 페어뷰산이 호위하듯 서 있습니다.
좌우 대칭이 완벽한 산을 배경으로

파란 하늘과 흰 빙하, 비취색 호수가 놓인 이 풍광은
사진발 좋기로 유명한 곳 중 한 곳입니다.

호수가를 끼고 도는 산책로가 인기입니다.
호수 전망을 보다 확장시키려면
호수 왼쪽 산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이마에 땀이 송글거리릴 즈음
시원한 바람이 이는 전망대가 반깁니다.

호수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페어몽 샤또 호텔.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세계로부터 예약이 폭주,
1년 전부터 서둘러야 이 곳에 묵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군요.

경비절감 차원에서 캠핑 그라운드만 찾아다닌 저희 가족도
레이크 루이스에서 만큼은 나름대로 운치있는 레이크루이스 인을 예약했습니다.
캠피장의 통나무 오두막만 찾아다닌 우리 가족에게는 샤또 부럽지 않은 숙소.

길은,
호수 전망대까지입니다.
더 높이 오르시려면 단단히 무장하고 도전하셔야 할 듯.

예고없이 나타나는 야생 동물들과의 조우는
밴프 여행이 안겨주는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