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아침을 먹고 우리는 Exit Glacier를 향했다. 바다나 강으로 흘러내리는 빙하를 멀찌감치서 본 적은 많지만 이렇게 걸어서 바로 앞까지 간 것은 알라스카에서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거기에는 1951년부터 빙하가 어느 위치까지 있었다가 녹아서 지금의 그 위치로 가게 되었는지 표지판이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빙하가 50년 넘게 걸어간 길을 우리가 단 몇 십분 만에 걷고 있는 거야 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타임머신을 탄 거 같다며 재미있어 했다.
그곳을 떠나 두 시간을 달려 앵커리지로 와서 인터넷으로 찾아둔 한국식당을 갔다.(3301 Spenard Bl.) 선뜻 들어서고 싶지 않을 만큼 허름해서 망설이다가 들어간 이곳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맛있게 한국음식을 먹고 프라이스 라인으로 예약해둔 쉐라톤 호텔에 일찍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곧장 10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Alaska Native Heritage Center로 향했다. 트리플 에이 책자로 앵커리지의 갈만한 곳을 뒤지다가 찾아낸 곳이었는데 워싱턴 디씨에서 이미 근사한 인디언 박물관을 봤던 우리에게는 사실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인디언 민속춤 공연은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숙련된 무용수들의 춤을 기대한 내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동네에서 뛰어 놀다 쫒아 왔을 것 같은 아이들과 아무 하는 일 없이 앉아만 있던 나이 많은 할아버지, 갓난아기가 누운 유모차를 무대 옆에 세워 놓은 아줌마 등등이었다. 그들의 그 다듬어지지 않고 단조로운 노래와 춤을 보면서 문뜩 정말 저런 게 진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들의 재미를 위한 과장되고 현란한 몸동작이 아닌 저런 모습으로 저네들은 신나면 춤을 추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이국 땅에서 뜻밖에도 그들은 우리 동네어귀 어디쯤에서 한번쯤 마주쳤음직한 낯익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몇 년전 중국 신장의 위구르 자치구역을 여행하면서 파란 눈에 높은 코의 서양인 같은 민족들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중국인임을 알고 느꼈던 그런 충격과 혼란을 여기에서도 느끼게 되었다.

일곱째 날

이 날 우리는 총 32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